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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시체

  • 영의정은 엎친 놈 위에 덮치는 식으로 딸을 꾸짖었다.
  • “서얼이로구나, 서얼이야. 어찌 이리 망측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얼른 네 죄를 고하거라!”
  • 소지유는 한숨을 길게 뱉으며 저도 모르게 이 몸 주인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생존 환경이 떠올랐다. 보아하니 주변에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군자의 패기가 넘치는 안비삼도 경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그가 안비월의 확신에 가득 찬 말을 듣고 마음이 동요했다는 증거였다.
  • 소지유는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다행히 그녀는 단 한 번도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본 적이 없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 하지만 지금 현재 상황은 그녀한테 너무 불리했다. 게다가 그녀 본인도 물에 빠지기 전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아마 몸 주인이 큰 충격을 받고 일부분 기억을 지운 듯했다.
  • 소지유가 어떻게 곤경을 벗어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더 큰 문제가 다가왔다.
  • “저걸 보시오. 수면 위로 뭔가가 떠있소!”
  •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를 질러 모두의 눈길이 연지로 향했다.
  • 높이 솟은 연잎 밑에서 어렴풋이 반사하는 은색의 빛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은빛은 금위군이 허리에 찬 물품에서 반사된 빛이었다.
  • 수면 위에 금위군이 떠 있었다!
  •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금위군의 시체가 떠 있었다.
  • “아아악!”
  • “어찌 이런 일이!”
  • “사람이 죽었다!”
  • 높은 가문의 귀녀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지 소지유가 걸려 넘어지길 바랐던 안비월과 소지연 두 사람만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기대에 찬 눈빛을 드러냈다.
  • 안비월은 큰소리로 외쳤다.
  • “이리 오너라! 이 시체를 끌어내거라! 증거가 이렇듯 확실한 조건에서 이 비천한 것이 어찌 빠져나가는지 한번 보고 싶구나!”
  • 소지유는 입을 꾹 다물고 일의 경과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 잠시 후, 호위무사들은 시체를 물 밖으로 끌어냈다. 시체의 외모는 평범했지만 확실히 궁중의 호위무사가 틀림이 없었다.
  • 안비월은 시체를 보고도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도리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황후마마, 소녀 말이 맞았사옵니다. 저 여인은 심통이 사나운 독종이옵니다!”
  • 황후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진실이 어떠하든 소지유가 오늘 저지른 일만으로도 황후의 심정을 사납게 만들었다.
  • 황후마마가 입을 열었다.
  •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일이 발생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구나. 이리 오너라, 경조 부윤 조장흥한테 이 소식을 알리거라.”
  • 호위무사가 경조 부윤 대감 보고하러 갔을 때 황후마마가 소지유한테 물었다.
  • “소지유, 오늘 밤 연지에 온 목적이 무엇이더냐? 하녀로 위장해 언니와 궁에 입성했으면 한 발짝 한 발짝 언니를 따라가면 될 것이지, 어찌하여 혼자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것이냐?”
  • 소지유는 곰곰이 회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노력해도 무범 대군이 연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지연의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의 일은 기억 속에서 완벽히 지워졌다. 그러니 황후마마의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 무범 대군이 그녀와 약조를 했다고 말하면 아마 그녀가 미친 줄 알고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 소지연이 거짓말 했다고 하면 소지연도 가만히 있지 않고 아마 다시 반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매가 서로 모함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 더군다나 증거가 없으니 믿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 그리하여 소지유는 다른 사람이 엮이지 않는 선에서 그녀 자신이 알고 있는 동시에 그녀와 연관된 일만 고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다른 사람의 속임수에 넘어갈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 “황후마마께 아뢰오나 소녀는 궁에 처음으로 입성해 단지 궁중의 풍경이 아름다워 연석(宴席)을 떠나 어화원까지 왔사옵니다. 그러다가 순시하고 있는 금위군을 보고 두려움에 허겁지겁 움직이다가 어머니의 유물을 분실했사옵니다. 이 과정을 목격한 사람이 없어 소녀가 증인을 내세울 수 없지만, 소녀는 진실만을 고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이옵니다.”
  • “네가 사실이라고 하면 그게 사실이 되는 것이냐?”
  • 소지연은 동생을 모함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잡았다.
  • 이에 소지유는 의문에 찬 어투로 물었다.
  • “그럼 언니가 사실을 아뢰어 보셔요.”
  • 그러자 소지연은 멈칫하더니 당황한 듯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코웃음을 쳤다.
  • “흥, 내가 어찌 안단 말이냐?”
  • 소지유도 코웃음을 쳤다.
  • “언니가 사실을 모른다면 내 말이 거짓인 건 어찌 아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