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사옵니다. 소녀는 위독한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절대 지나치지 않사옵니다. 오늘은 그 사람이 나리였을 뿐이옵니다. 하오나 그래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으시다면 엽전을 지불하는 건 어떻겠사옵니까?”
그러자 방금까지 홍조를 띠고 있던 안비삼의 얼굴은 순간 차갑게 돌변했다.
‘내…내가 그 금은보화들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냐?’
황후마마와 안친 왕비는 그녀의 말을 듣고 도리어 얼굴 표정이 풀렸다.
소지유가 사리가 밝고 자기 주제도 알고 눈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안친 왕비는 웃으며 말했다.
“젊은 아이가 참 총명하구나. 목숨을 구한 은혜를 어찌 엽전과 맞바꿀 수 있겠느냐. 네가 모친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나도 너랑 비슷한 딸이 있느니라. 불편하지 않다면 내 수양딸이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앞으로 네 일은 곧 우리 안친왕 가문이 일이 되느니라.”
세상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보기엔 안친왕 가문의 사람들은 인정이 넘쳤다. 신분이 하늘처럼 높았지만, 의리도 중요시 여긴다고 생각했다. 안 세자는 혼담을 꺼냈고 왕비는 수양딸로 들이겠다고 했다.
상황이 점점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가자 사람들은 점차 소지유의 행위를 잊고 도리어 비천한 그녀가 이런 큰 혜택을 받은 것에 질투를 느꼈다.
그러나 소지유는 왕비의 제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경악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는 소문풍과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소지연의 표정을 보니 왕비의 제의에 점차 혹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답했다.
“받자니 부끄럽고, 거절하자니 실…”
하지만 “실례”라는 단어를 뱉기 전에 한 여인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안 된다! 비천한 것이 감히 이 황녀랑 언니 동생 사이가 되겠다는 말이냐?”
모든 이의 눈길이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안비삼의 여동생, 즉 황제 폐하가 직접 북월 황녀의 작위를 봉한 안비월이었다. 그녀는 화가 잔뜩 나 씩씩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소지유는 북월 황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그녀를 보자마자 소지유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 사람은 아까 연지에서 사람을 찾던 그 사람이잖아?’
비록 북월 황녀와 직접 안면을 튼 적이 없었지만 소지유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비월이 연지에서 자기를 진짜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못 본 척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을 때 안비월은 안친 왕비한테 쪼르르 달려가 팔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어마마마, 이런 비천한 여인한테 은냥을 주면 되지 않사옵니까? 안친왕 가문에 들이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옵니다!”
안친 왕비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안비월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안비월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눈이 가득한 이곳에서 여식의 체면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안비삼은 참을 수 없어 차가운 말투로 꾸짖었다.
“월아, 그만하거라. 지유 아씨는 이 오라비의 은인이니라.”
안비월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한 듯 안비삼을 쳐다봤다. 하지만 안비삼은 아까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안비삼의 시종인 청단이가 입을 열었다.
안비월은 그의 설명을 듣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분노를 터뜨렸다.
“염치없고 비천한 것! 우리 오라버니를 구한 게 아니라 이 기회를 빌어 오라버니와 연을 맺으려고 한 것 아니냐! 청천백일에 남자와 접문하다니, 넌 분명히 우리 오라버니의 고운 심성 때문에 너한테 혼담을 꺼낼 걸 알고 그런 것 아니냐? 천한 것, 보통 사람들은 너같이 천한 일을 절대 생각지도 못할 것이야! 안친왕 가문에 들어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