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이로구나, 서얼이야. 어찌 이리 망측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얼른 네 죄를 고하거라!”
소지유는 한숨을 길게 뱉으며 저도 모르게 이 몸 주인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생존 환경이 떠올랐다. 보아하니 주변에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군자의 패기가 넘치는 안비삼도 경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그가 안비월의 확신에 가득 찬 말을 듣고 마음이 동요했다는 증거였다.
소지유는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다행히 그녀는 단 한 번도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본 적이 없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현재 상황은 그녀한테 너무 불리했다. 게다가 그녀 본인도 물에 빠지기 전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아마 몸 주인이 큰 충격을 받고 일부분 기억을 지운 듯했다.
소지유가 어떻게 곤경을 벗어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더 큰 문제가 다가왔다.
“저걸 보시오. 수면 위로 뭔가가 떠있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를 질러 모두의 눈길이 연지로 향했다.
높이 솟은 연잎 밑에서 어렴풋이 반사하는 은색의 빛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은빛은 금위군이 허리에 찬 물품에서 반사된 빛이었다.
수면 위에 금위군이 떠 있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금위군의 시체가 떠 있었다.
“아아악!”
“어찌 이런 일이!”
“사람이 죽었다!”
높은 가문의 귀녀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지 소지유가 걸려 넘어지길 바랐던 안비월과 소지연 두 사람만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기대에 찬 눈빛을 드러냈다.
안비월은 큰소리로 외쳤다.
“이리 오너라! 이 시체를 끌어내거라! 증거가 이렇듯 확실한 조건에서 이 비천한 것이 어찌 빠져나가는지 한번 보고 싶구나!”
소지유는 입을 꾹 다물고 일의 경과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호위무사들은 시체를 물 밖으로 끌어냈다. 시체의 외모는 평범했지만 확실히 궁중의 호위무사가 틀림이 없었다.
안비월은 시체를 보고도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도리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황후마마, 소녀 말이 맞았사옵니다. 저 여인은 심통이 사나운 독종이옵니다!”
황후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진실이 어떠하든 소지유가 오늘 저지른 일만으로도 황후의 심정을 사납게 만들었다.
황후마마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일이 발생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구나. 이리 오너라, 경조 부윤 조장흥한테 이 소식을 알리거라.”
…
호위무사가 경조 부윤 대감 보고하러 갔을 때 황후마마가 소지유한테 물었다.
“소지유, 오늘 밤 연지에 온 목적이 무엇이더냐? 하녀로 위장해 언니와 궁에 입성했으면 한 발짝 한 발짝 언니를 따라가면 될 것이지, 어찌하여 혼자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것이냐?”
소지유는 곰곰이 회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노력해도 무범 대군이 연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지연의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의 일은 기억 속에서 완벽히 지워졌다. 그러니 황후마마의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무범 대군이 그녀와 약조를 했다고 말하면 아마 그녀가 미친 줄 알고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소지연이 거짓말 했다고 하면 소지연도 가만히 있지 않고 아마 다시 반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매가 서로 모함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증거가 없으니 믿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소지유는 다른 사람이 엮이지 않는 선에서 그녀 자신이 알고 있는 동시에 그녀와 연관된 일만 고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다른 사람의 속임수에 넘어갈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황후마마께 아뢰오나 소녀는 궁에 처음으로 입성해 단지 궁중의 풍경이 아름다워 연석(宴席)을 떠나 어화원까지 왔사옵니다. 그러다가 순시하고 있는 금위군을 보고 두려움에 허겁지겁 움직이다가 어머니의 유물을 분실했사옵니다. 이 과정을 목격한 사람이 없어 소녀가 증인을 내세울 수 없지만, 소녀는 진실만을 고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