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비삼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평소 교만하고 방자한 행동을 모두 봐줬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을 하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여동생을 째려보며 꾸짖었다.
“그 입 다물라! 누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아씨는 이 오라비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감사를 드리지 못할망정 욕설을 퍼붓다니, 얼른 사과드리거라!!”
이에 안비월은 꼬리 밟힌 고양이마냥 펄쩍 뛰었다.
“오라버니, 사과라니요? 이 여인한테 사과하라는 말이 옵니까? 닥치는 대로 아무 남자와 밀회하는 이 비천한 것한테 사과하라는 말이 옵니까? 이 천한 것이 진짜로 오라버니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옵니까? 절대 아니옵니다! 분명히 오라버니의 고운 심성을 이용해 우리의 신분을 넘보는 것이 옵니다!”
뭣이? 낯선 남자랑 밀회했단 말인가?
모든 이의 눈길이 또다시 소지유한테로 쏠렸다. 소지유는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을 쥐기 시작했다.
‘아까 연지에서 발생한 일을 봤나?’
‘그런데 왜 아까 연지에서 날 까발리지 않고 인제 와서 이러는 거지?’
‘안 돼, 황녀가 보았든 보지 못했든 난 무조건 잡아떼야 해!’
소지유는 이를 깨물고 말했다.
“황녀님의 말이 지당하시옵니다. 소녀 신분이 비천하여 황녀와 언니 동생 사이가 될 수 없사옵니다. 소녀 자기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고 한 번도 왕족 가문을 넘본 적 없사옵니다. 하오나 공주도 소녀의 동기를 공주 생각대로 추측하면 아니 되옵니다. 가령 소녀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공주께서 아마 곡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하니 소녀를 궁지에 몰지 말아 주시옵소서!”
주변 사람들의 눈에 경악과 놀라움이 가득 차 있었다. 종일 남자들과 붙어 다니며 소심하고 나약한 얼간이가 언제 이렇게 날카롭게 변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얼굴에 분칠도 알록달록하고 옷차림도 저속했지만, 그녀의 기질은 분명 주변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무범 대군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소지유를 탐색하듯 쳐다봤다.
무염 대군도 고개를 살짝 들고 도도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주변의 구경꾼들은 호기심과 놀라움에 웅성웅성했다.
소지유의 말을 들은 안친 왕비는 얼굴이 살짝 굳었다. 비록 안비월이 안하무인이긴 했지만 소지유의 말도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어찌 … 그런 말을 하느냐. 월이가 명백히 말했으니 여식의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소지유는 경멸하듯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안친 왕비는 당연히 안비월의 편을 들었다. 시비가 분명한 안 세자가 오히려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죄를 씌우려고 한다면 어찌 구실이 없음을 걱정하오리까?”
‘황녀의 말을 들어볼 것도 없어!’
안비월은 뚜껑이 열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뜻이냐? 내가 너한테 오명을 씌웠다는 게냐? 오늘 너의 죄를 다 까발려서 아주 혼을 내줄 테다!”
안비월은 다시 고개를 돌려 황후를 쳐다봤다.
“황후마마, 대략 일 시 전에 저 여인이 호위무사와 밀회하고 있는 걸 소녀가 두 눈으로 직접 봤사옵니다. 하녀의 옷차림을 하고 있어 외로움을 참지 못한 하인이 금위군을 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녀는 못 본 척했사옵니다. 하오나 소녀가 갓 발길을 돌리려 할 때 저 여인이 갑자기 금위군과 다툼이 일어났고 금위군이 저 사악한 여인한테 밀려 연지에 빠졌사옵니다. 그 금위군이 허우적거리다가 저 여인을 잡고 연지 속으로 잡아당겼사옵니다. 소녀는 위급한 상황에 바로 황후마마한테 고하려고 했으나 소녀가 연석에 도착했을 때 황후마마는 이미 계시지 않으셨사옵니다.”
안비월이 말을 끝내자마자 뭇사람들이 반응도 하기 전에 소지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치고 들어갔다.
“뭣이? 넌 어머니의 유물을 찾으러 간 게 아니라 금위군과 밀회를 하다가 물에 빠진 것이로구나! 아버지, 셋째가 우리 집안에 먹칠하고 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