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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해, 유혹하지 말고

후회해, 유혹하지 말고

미드나잇블루

Last update: 2024-05-09

제1화 여자 알레르기

  • ‘괴로워!’
  • 잠에서 깬 소연우는 무언가에 두드려 맞기라도 한 듯 온몸이 쑤셔왔다. 습관적으로 돌아누우려다 눈앞의 날카롭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의 얼굴과 마주한 그녀는 순간 놀라 멈칫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몇 초간 하얘진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그녀는 문득 전날 밤 졸업 파티에서 누군가 약을 타 놓은 술을 마시고 급히 자리를 피하던 중에 이 남자의 방으로 잘못 들어왔던 것을 기억해 냈다.
  • 남자는 아직 깨지 않은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밀려오는 고통을 참아가며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온 연우는 갈가리 찢긴 채 대충 보기에도 잔뜩 어질러진 바닥 위에 내던져져 있던 자신의 옷가지들을 발견하고는 어쩔 수 없이 남자의 하얀 셔츠를 바닥에서 집어 들어 몸 위에 걸치고는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갔다.
  • 연우가 호텔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시혁이 눈을 떴는데 옆에 있던 사람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어질러진 방안과 시트 위의 붉은 자국만이 그가 지난밤 분명 한 여자와 밤을 보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 5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여자에게 알레르기가 생겨버린 뒤로 지금까지 그 어떤 여자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터라 그는 항상 추문에 휩싸여 있어야 했다. 더 골치 아픈 문제는 이로 인해 그가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밤 갑자기 들이닥친 그 여자는 그에게 있어서는 의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시혁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휴대폰을 집어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당장 호텔로 와.”
  •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무렵 비서인 강산이 스위트 룸 안으로 들어왔다.
  • “감시카메라 돌려서 내 방에 쳐들어온 여자가 누군지 알아봐.”
  • 말끔하게 차려입은 시혁이 몸을 돌려 강산에게 지시를 내렸다.
  • “여자요?”
  • “왜? 문제 있나?”
  • 시혁의 말투가 순간 차가워졌다. 그가 여자 알레르기 때문에 여자만 가까이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을 알고 있던 강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해외에서 3년 동안 치료를 받았어도 소용없었는데, 무슨 일로 귀국하자마자 여자를 찾으시는 거지?’
  • “알겠습니다.”
  • 강산이 대표 앞에서 감히 어떠한 의혹도 내비치지 못한 채 지시한 일을 처리하러 자리를 뜨려던 찰나 한시혁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 “노변호사한테 내 사무실로 오라고 전해.”
  • ……
  • 아홉 시가 다되어서야 한성가의 별장에 돌아온 소연우는 정원에서 한창 청소 중이던 고용인들은 발견하고 발검음을 멈췄다. 그녀가 밤새 돌아오지 않은 일로 사람들의 끝도 없는 추측과 구설수에 오르내릴 것임에 분명했기에 그들을 피해서 가야 할지 잠시동안 망설이던 연우의 앞으로 집사가 다가왔다.
  • “돌아오셨습니까, 작은 사모님.”
  • “그래.”
  • 집사는 이내 연우의 옷차림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작은 사모님, 그 옷은?”
  • 연우는 태연하게 입고 있던 남성 셔츠를 살짝 잡아당겼다.
  • “새로 산 신상이야. 괜찮지 않아?”
  • 그녀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만 않는다면 집사 또한 의문을 품지 못할 것이다. 남성용 셔츠가 조금 크긴 했지만 마침 연우의 허벅지 위까지 내려오는 길이가 그녀의 희고 늘씬한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이에 집사는 두말없이 가볍게 수긍했다. 연우는 자세를 곧게 세우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집사는 방으로 사라진 연우를 돌아보다 이내 몸을 돌려 인적이 없는 구석으로 향했다.
  • 한편, 방안의 욕실. 연우는 온몸을 쑤셔 대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녀는 눈을 감고 어젯밤의 일을 생각했다.
  • “화나네 진짜!”
  • 그녀는 자신의 술에 약을 탄 자를 찾아내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다시금 떠오른 어젯밤의 일에 그녀는 화가 치밀었지만 절대 일을 크게 만들 수는 없기에 차마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결혼 후 3년 동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녀의 남편이 곧 귀국할 예정인데 만약 그가 자신의 하룻밤 외도를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친정에 알리기라도 한다면 꽤나 곤란했다. 연우가 한창 답도 없는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방밖에서 집사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작은 사모님.”
  • “무슨 일이야?”
  • 연우는 감정을 추스르고 답했다.
  • “도련님께서…”
  • “그 사람 돌아왔어?”
  • 연우는 순간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
  • ‘이렇게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