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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분 이름은 소연우랍니다

  • 이니셜을 발견한 최현옥은 더욱 화가 치밀어올라 급히 몸을 일으켜 연우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곧장 손을 들어 올려 연우의 뺨을 내려쳤다. 연우의 뺨이 순식간에 발갛게 부어올랐다.
  • “이쯤 했으면 그만 인정해, 소연우. 내가 딱 보면 알아. 너 내 아들 몰래 바람피우는 것도 모자라 한 씨 집안 돈 빼돌려서 그 내연남한테 갖다 바쳤지, 그렇지!”
  • 최현옥은 이제껏 소연우를 한 씨 집안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녀에겐 이미 마음속에 생각해 둔 며느리감이 따로 있었다. 하여 한시혁의 병이 완치되는 대로 연우를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녀에게 연우는 그저 벌레정도에 불과한 존재였으니 백 년도 넘게 이어져온 뼈대 있는 한 씨 집안이 그런 연우에게 놀아났다는 건 그녀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 연우는 부어오른 자신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최현옥이 고작 셔츠 하나로 머릿속에서 저 정도의 신파를 만들어 낼 줄은 몰랐다. 그녀는 너무 비굴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오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최현옥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제가 이 집에 들어오고 3년이 지나도록 한시혁은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어요. 게다가 해외는 분위기도 개방적이니 외도를 논하신다면 저보다는 그쪽이 더 그럴싸한 것 같은데요.”
  • “너!”
  • 최현옥은 다른 이가 자신의 아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꼴을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연우의 뺨을 내려치려 했지만 이번에는 연우에 의해 너무도 쉽게 손목을 잡혀 버렸다.
  • “사모님, 사모님께선 어른이시니 뺨 한 대 정도는 저도 그냥 참고 넘길 수 있어요. 하지만 잊지 않으셔야 할 게 하나 있어요. 애초에 제가 어떻게 이 집에 들어오게 됐는 지요. 만약 제가 이 결혼에 진심이라도 생긴다면 서로한테 좋을 게 없을 것 같은데요.”
  • 애초에 그녀는 약에 취해 한 씨 집안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직까지 소 씨 집안의 손에 잡혀 있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3년 동안이나 기꺼이 이 집안에서 며느리 노릇을 해가며 한시혁의 갖은 소문들을 막아줄 방패역할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 “감히 네가 나를 협박해?”
  • 최현옥은 분노에 눈을 치켜떴다. 3년 동안 그저 순한 토끼인 줄 알았던 소연우가 사람을 무는 살쾡이였을 줄이야.
  • “아니요. 저는 그냥 좋은 뜻에서 알려드린 거죠.”
  • 연우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최현옥의 손을 놓아주었다.
  • “더 볼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 이윽고 연우는 위층에서 자신의 짐을 챙겨 미련 없이 별장을 나섰다.
  • ……
  • 한성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
  • “대표님, 찾았습니다.”
  •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강산이 곧장 쏘파 위에 앉아있는 한시혁에게 걸어갔다. 그는 말을 이으며 들고 있던 서류를 시혁에게 건넸다.
  • “그 여성분 이름은 소연우랍니다. 알아보니까 어제 졸업 파티에 참석하려고 호텔에 갔던 거였더라고요. 아무래도 누군가가 약을 타 놓은 술을 마시고 대표님 방으로 잘못 들어간 것 같습니다.”
  • 강산은 우선적으로 소연우가 누군가 일부러 심어 놓은 자일 가능성을 배제했다. 상황을 듣고 보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았다. 시혁은 별다른 동요 없이 서류를 펼쳐 안에 끼워져 있던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저녁이라 어둡긴 했지만 여자의 얼굴은 꽤나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오밀조밀 정교한 얼굴은 사뭇 아름다웠고 체구가 작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볼륨 있는 몸매는 강렬했던 지난밤을 떠오르게 했다. 근처에 있던 강산은 여자의 사진 위에 머물러 있는 시혁의 시선을 알아채고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대표님, 한 가지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 “뭔데?”
  • “그 소연우라는 분, 이미 결혼했더라고요.”
  • 강산은 말을 하다 자칫 혀를 씹을뻔했다. 수년간 시혁을 모셔온 그도 한 대표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여자를 만난 것은 과학자들이 이 넓은 우주에서 두 번째 지구를 찾아내는 것만큼의 기적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사가 심한 결벽이 있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여자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역시나 한시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그 주변의 기압도 순간적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했을 뿐인 강산도 괜히 식은땀을 훔쳤다.
  • 지잉-
  • 순간 강산의 휴대폰이 눈치도 없이 울렸다. 별장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강산이 무의식 적으로 한시혁을 쳐다보니 그는 별다른 말없이 그러라는 듯 눈을 깔았다. 재빨리 전화를 받은 강산은 2초도 안 되는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난처한 듯 다시 한시혁을 쳐다보았다.
  • “대표님, 방금 별장에서 전화가 왔는데, 사모님께서 사람들을 끌고 별장으로 가서 작은 사모님을 난처하게 하신 모양입니다.”
  • “사모님 말로는 작은 사모님이 그… 바람을 피우셨다고 했답니다.”
  • 강산은 말을 뱉으면서도 다소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