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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귀하신 아드님한테 물어보세요

  • 한 씨 본가의 거실.
  • 고가의 소파 위에 최현옥과 화려한 차림의 여자가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옥잠 하나가 놓여있었다. 색채와 표면에 감도는 윤기로 보아 비녀 하나로도 6 억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최상급 임페리얼 제이드였다. 그 옥잠은 남시아가 자신의 미래의 시댁에 잘 보이기 위해 특별히 여러 브로커들을 수소문해 겨우 구한 물건이었다. 최현옥은 한껏 자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시아 너는 어쩜 이렇게 속도 깊을까. 쫓겨난 누구랑은 달리 말이야. 그 계집애는 허구한 날 시큰둥해서는 누가 보면 우리 한 씨 집안에 시집온 게 아니라 억지로 잡혀 오기라도 한 줄 알겠어!”
  • 최현옥의 시선이 흐뭇하게 남시아를 훑었다. 그녀는 남영 건설 댁의 아가씨이자 이 동네에서도 내로라하는 명문 규수인 데다가 최근 커리어 또한 잘 풀리며 성공적으로 일류 여배우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조신한 행실로 보나 수려한 외모로 보나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자신의 며느릿감으로 딱이었다. 그와 반대로 소연우가 시집온 후로 3년 내내 그녀는 연우를 벼르고 있었다. 어디 내놓자니 사람들이 알까 부끄러웠다. 당시 미디어의 여파로 주가가 무서운 기세로 하락하지만 않았어도 한시혁이 그토록 순순히 결혼을 방패 삼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어머님, 시혁 씨가 이혼했단 말씀 이세요?”
  • 이 소식은 남시아의 심장을 다시금 들끓게 만들었다. 한시혁이 드디어 그 촌스러운 여자와 이혼했다니, 자신이 수년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최현옥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채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작게 말했다.
  • “이혼뿐이겠니. 해외에서 그 이상한 병까지 다 완치돼서 돌아왔지. 이젠 여자를 가까이해도 아무 문제 없단다.”
  • “정말 잘됐네요!”
  • 남시아는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금 타오르는 것 같았다. 한시혁이 여자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몸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얼마 후 최현옥으로부터 시혁이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한시혁의 병도 없어진 데다 이젠 독신이라니, 하늘이 그녀를 돕는 것 같았다. 최현옥은 그런 그녀의 속내를 알아채고 제안했다.
  • “시혁이를 집으로 불러서 같이 식사라도 한번 하는 건 어떠니. 너희들도 꽤 오래 못 봤을 텐데 이참에 서로 좀 더 친해지고 말이야.”
  • “좋아요!”
  • 남시아의 입꼬리가 눈에 띄게 휘어져 올라갔다. 한시혁과 만날 생각에 그녀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최현옥이 곧장 그녀가 보는 앞에서 한시혁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별장의 전화기로 걸려온 전화가 한발 먼저 울렸다. 비록 자신이 별장에서 지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가장 빠른 소식통을 통해 소연우에 관한 소식들을 전달받기 위해 별장 안에 자신의 눈과 귀를 꽤나 심어 둔 상태였다. 지금 걸려온 전화 역시 무언가 급한 용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모님, 도련님께서 작은 사모님을 별장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오셨어요. 게다가 어디도 가지 말고 별장에 있으라고요. 두 분 이혼하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아요.”
  • “뭐라고? 그 계집애가 이혼서류에 사인까지 해 놓고 무슨 낯짝으로 다시 기어들어와! 내가 진짜 그 계집앨 가만 두나 봐!”
  • 최현옥은 분노로 두 눈에 핏발이 서렸는데 그 모습은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 “진정하세요 어머님, 너무 화내시면 건강에도 안 좋아요.”
  • 어른 앞인 탓에 참한 이미지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남시아는 초조했다.
  • 최현옥은 흥 하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무서운 기세로 사람들을 이끌고 한성가 별장에 들이닥쳤다. 문 앞에 있던 고용인이 그녀를 확인하고 급히 문을 열었다. 최현옥은 거실로 들어서며 분노에 차 소리쳤다.
  • “소연우, 너 이 계집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무슨 낯짝으로 아직까지 별장에 있는 거야?”
  • 흰 원피스 차림으로 거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던 연우는 희고 긴 속가락으로 붓을 쥔 채 집중하고 있는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 “제가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요, 그건 귀하신 아드님한테 물어보시지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