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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더러워졌네, 새로 바꿔

  • 세 사람 모두 온통 지저분해져 있는 모습에 시혁은 방금 전 이곳에서 막장 극 한 편이 벌어졌음을 짐작했다. 연우는 자신에게 다가와 티슈 한 장을 뽑아 들어 그녀의 작은 얼굴을 닦아 내리는 시혁의 모습을 그저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시혁은 고개를 살짝 돌려 입을 열었다.
  • “같이 지내시라고 한 적 없습니다. 아무 일도 없이 제 별장으로 찾아오지 않으면 되실 일 아닙니까.”
  • 그의 한마디가 단숨에 최현옥의 괴변을 묵살시켰다.
  • ‘소연우가 언제부터 시혁이랑 사이가 저렇게 좋았었지?’
  • 이제껏 그들 모자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화목하지는 않았어도 한시혁이 지금처럼 그녀에게 맞선적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의 단 한마디로도 시혁이 소연우의 편에 섰음을 알아채기엔 충분했다.
  • “오랜만이야 시혁 씨, 잘 지냈어?”
  • 남시아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저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했다. 몇 년 전 그때 자칫했으면 그들이 진짜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년간 그녀가 가장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소연우에게 자신의 남자를 빼앗겼다는 사실이었다. 한시혁은 차갑게 눈을 내리깔고 남시아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 “산아, 사모님 모셔다 드려.”
  • 순간 주위의 공기가 멈춘 듯했다. 남시아의 달달하던 미소가 서서히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녀가 내민 손마저도 정처 없이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연우를 대하는 시혁의 다정한 모습을 본 그녀는 질투심에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 ‘소연우는 대체 무슨 수로 한시혁을 꼬신 거지?’
  • 그때 강산이 앞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 “사모님, 아가씨,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 내쫓으려는 의도가 분명한 그의 말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최현옥은 자신이 시혁에게 남처럼 취급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혁이 소연우, 저 여우 같은 여자에게 홀려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초조함과 분노가 차올랐다.
  • “시혁이 너 지금 저 순진한 얼굴에 속고 있는 거야. 저거 좋은 물건 아니다.”
  • 연우는 낮게 깔아내린 눈으로 비웃듯 입꼬리를 올린 채 저들이 또 무슨 빌미를 들어 그녀를 모함하려 드는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시혁의 시선은 여전히 소녀의 정교한 얼굴 위에 머무른 채 연우의 목소리 이외의 다른 소리들은 그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손끝에 잡은 물티슈로 연신 그녀의 얼굴에 묻어 있는 물감들을 닦아냈다. 무시당하는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최현옥은 시혁이 아직 소연우의 추악한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 ‘저 계집애가 사실 뒤에서는 한없이 쉬운 여자라는 걸 시혁이가 알게 되면 저 계집을 곁에 둘리가 없지… 알레르기가 완치됐다 하더라도 오랜 결벽은 사라지지 않았을 테니.’
  • “시혁아, 엄마가 이 말은 꼭 해야겠구나. 너 돌아오기 전날 밤에 소연우 저게 어느 호텔에서 어떤 놈 이랑 뒹굴었는지 몰라도 돌아왔을 때 그 자식 옷을 입고 있더라니까!”
  • 최현옥은 사뭇 엄하게 나무랐다. 하다못해 연우를 당장이라도 한 씨 집안에서 내쫓을 기세였다.
  • ‘저딴 쥐뿔도 가진 것 없는 여자가 한 씨 집안 도련님한테 가당키나 해? 시혁이가 한 씨 집안 후계자 자리에 오르도록 받쳐줄 수 있으려면 사업을 확장하고 자리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자를 아내로 들여야지. 시아는 탄탄한 자금을 보유한 집안의 여식인데다 시혁이를 저렇게 좋아하니, 저 아이 만한 인물도 없어. 소연우만 쫓아내면 다른 것들은 다 간단한 문제잖아.’
  • “시혁 씨, 당신같이 우월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더러운 여자를 안아?”
  • 남시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떠올랐다.
  • “소연우 씨, 만약 진짜 시혁 씨를 사랑한다면 저 사람이 어울리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해줘야죠.”
  • 이를 테면 그녀 같은…
  • 연우는 밀려오는 역겨움을 겨우 참아냈다.
  • ‘저 여자 대본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거 아니야? 뭐만 했다 하면 저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자기만 저딴 수작 부릴 줄 아나 본데, 나도 한다면 한다고.’
  • 연우는 살짝 움직여 한시혁의 품에 기댔다. 그녀는 몸을 완전히 시혁에게 밀착시킨 채 흐릿한 눈빛으로 유혹하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 “내가 더러워졌대, 새로 바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