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7화 능구렁이

  • 익숙한 대문이 눈에 들어오고 곧이어 뒷좌석의 문이 열렸다.
  • “내려.”
  • 연우는 한성가의 새장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싫어.”
  • 그녀는 차갑게 거절했다. 그녀는 한성의 안주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한시혁의 면상은 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그대로 안아 올려진 그녀의 작고 여린 몸이 남자의 탄탄한 가슴과 맞닿았다. 순간 열기가 피어오르더니 그녀는 왜 인지 모르게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 시혁이 그녀를 안아 든 채 별장으로 들어서자 그를 맞이하던 고용인들은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 ‘대체 왜 도련님께서 쫓겨나셨던 작은 사모님을 안고 들어오시는 거지?’
  • 시혁은 연우를 조심스레 소파 위로 내려놓았다. 다친 손을 잡히자 붉어진 상처에서 오는 고통이 그제야 그녀에게 전해졌다.
  • “구급상자 가져와.”
  • 한기가 서려 있는 시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멍청하게 서있던 고용인이 급히 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구급상자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 “도련님, 제가 할까요?”
  • 도련님이 이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자니 난감했던 고용인이 물었지만 시혁은 단호히 거절했다.
  • “됐어.”
  • 시혁은 빨간약을 묻힌 면봉을 연우의 손등에 가져다 댔다.
  • “앗- 아파!”
  • 연우는 엄살을 부리며 손을 거두어가려 했지만 그는 더 강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 “착하지, 조금만 참아.”
  • 그의 목소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웠다. 백팔십이 넘는 훤칠한 남자에게서 흘러나온 다정한 목소리가 주는 강한 이질감에 연우는 멍해졌다. 창문너머 들어온 햇살이 그의 위로 내려앉아 날카롭게 윤곽이 잡혀 있는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시혁은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손등에 내려앉은 숨결은 그가 조심스레 쓰다듬는 손길 같이 느껴졌다. 연우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 “고마워, 이제 집에 가도 되지?”
  • “건망증이 있는 건가? 이곳이 네 집이야.”
  • 시혁은 이혼했던 그 대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듯 말했다. 마치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이. 연우는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와 맞선다고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일단 대화로 해결해보려 했다.
  • ‘결혼하고 몇 년 동안 내내 나한테 관심도 없더니 고작 그 하룻밤 때문에? 욕구불만인가?’
  • “우린 이미 이혼했잖아. 당신 이거 타인에 대한 불법 감금이… 야!”
  • 시혁은 연우의 턱을 움켜잡고 억지로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다. 연우의 시선이 시혁의 차가운 두 눈과 마주했다. 그는 사악하게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 “법도 아네, 그동안은 그저 모른척하고 있었던 거였나 보군.”
  • 연우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탓에 그의 숨결이 연우의 코끝에서 흩어졌다.
  • “그럼 질문 하나 하지. 이혼협의서도 파기됐고 이혼신고도 아직 하지 않았으니 우린 아직 법적으로 부부인 건가?”
  • ‘이 능구렁이 여우 같은 자식!’
  • 사인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던 것도 그이고 이제 와서 다시 무른 것도 그다. 연우 같이 순진한 양이 속이 시커먼 천년 묵은 요물 같은 시혁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흐뭇하던 분위기는 이내 시혁의 바지주머니 속에서 울려 대는 휴대폰에 의해 깨져 버렸다. 시혁이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비서인 강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한 대표님, 홍콩 쪽과 급한 미팅이 잡혔는데 직접 처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 “응.”
  • 시혁은 숨을 내뱉듯 작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연우를 놓아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가 곧 떠날 듯 보이자 연우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혁은 문 앞까지 걸어갔던 발걸음을 의도적으로 멈추고 차갑게 지시를 내렸다.
  • “너희들은 여기서 작은 사모님이 멋대로 도망치지 않도록 잘 지키고 있어.”
  • “네, 알겠습니다.”
  • 보디가드들의 우렁찬 대답이 들려오자 졸지에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된 연우는 절망스러웠다. 그녀는 억울한 듯 허공에 주먹 한방 날리고는 별장을 나서는 한시혁을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