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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몸이 다시 기억나게 해 줄게

  • 최현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표정을 하며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 “산아, 너 위에 가서 내 다른 셔츠 좀 가지고 와. 엄마한테 그날의 셔츠가 내 거라는 걸 똑똑히 보여줘야겠어.”
  • 옆에 서 있던 강산이 한시혁의 지시를 받고 황급히 위층으로 향했다. 비교를 해보면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한시혁의 옷을 손에 들고 급히 내려온 강산은 그 옷을 탁자 위에 잘 보이도록 펴놓았다. 그날 소연우가 입은 옷이 주름이 많이 생긴 것만 빼고는 두 옷 모두 왼쪽 옷깃에 H라고 새겨져 있었다. 한시혁의 옷은 전부 이탈리아 고급 장인한테서 맞춤 제작한 것이기에 모든 옷에는 한시혁의 이니셜 H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보며 최현옥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그러더니 혈압이 다시 올라오는 듯 목덜미를 붙들며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강산이 급히 다가가 부축했다.
  • “사모님,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릴게요.”
  • 뻔한 결말에 최현옥은 콧방귀를 뀌고는 강산의 도움을 받아 그 자리를 떠났다. 남시아도 최현옥과 알고 지낼 뿐 한 씨 집안과 친분이 없는지라 최현옥이 자리를 뜨자 곧바로 뒤를 이어 요란한 차 소리를 내며 그곳을 떠나갔다.
  • “관객들이 다 갔으니 연기 이제 그만하지.”
  • 한시혁 품에 달라붙어 있던 소연우는 급 거리를 두며 말했다. 이때 자기의 감정이 사람을 약 올리는 도구로 사용됐다는 생각에 한시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 “소연우 거기 안 서?”
  • 조금은 화가 섞인 말투로 한시혁이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연우는 한시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재빨리 위층으로 달려갔다.
  • 거실에 도착한 그녀가 잠옷을 갈아입으려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더니 갑자기 뒤에서 사람 온기가 느껴지면서 팔 하나가 그녀의 허리를 휘어감았다.
  • “뭐 하는 짓이야! 나 지금 옷 갈아입고 있잖아!”
  • 윗몸 절반쯤 위치에 걸려있는 잠옷은 그녀의 허리와 다리가 전부 드러나게 하였다. 그 모습을 본 한시혁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호흡과 심장 박동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뭐.”
  • 한시혁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맞춤양복 안에 입은 웨이스트코트는 그의 훤칠하고 탄탄한 몸매를 잘 드러나게 해주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자태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을 밀치며 소연우는 화를 냈다.
  • “그날 밤 얘기는 이제 그만해!”
  • 그날 밤은 실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인생 계획이 큰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한시혁이 그녀 인생길의 제일 큰 장애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 한시혁은 그녀의 턱을 잡고는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 “그래, 알았어. 그럼 몸이 다시 기억나게 해줄게. 아니, 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줄게.”
  • 소연우가 놀라 눈을 크게 뜬 순간 그녀의 몸이 가볍게 들리더니 침대로 던져졌다. 한시혁은 힘으로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에 누르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녀의 아름답고 정교한 얼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사람의 영혼을 매혹시키는 독특한 향이 났다.
  • “너 미쳤어? 이거 안 놔?”
  • 그날 밤의 실수와는 달리 오늘 밤은 강제 추궁이었다. 소연우는 한시혁한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으나 역부족이었다. 도무지 그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 “이걸 놓으면 너 가만히 있을 거야?”
  • 한시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 “……”
  • 그러지 않을 게 뻔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눈물이 고인 그녀의 눈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는 순간 한시혁은 그녀와 사랑하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한시혁은 머리를 조금 내려서 그의 얇은 입술을 그녀의 입에 갖다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