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있던 세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용인의 눈빛이 연우에게 향한 채 말을 이어갔다.
“한 대표님께서 큰아가씨를 모시러 오셨습니다.”
“한시혁이?!”
놀란 연우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멀뚱히 쳐다보자 고용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연우는 순간 자신이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두 집안이 사돈의 연을 맺고 3년 동안 한 씨 집안에서 사람이 찾아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씨 집안 사람이 찾아온 것도 모자라 심지어 그 사람이 한시혁 본인이라니. 게다가 그가 찾아온 목적이 연우를 데려가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은 소국현과 황민희의 놀라움은 이내 기쁨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서 안으로 모셔라!”
“이미 왔습니다.”
연우가 아직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다음순간 남자의 수려한 외모가 그녀의 눈에 들어오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연우는 몸이 굳어버렸다. 한 씨 집안 도련님은 봐줄 수 없을 만큼 못생긴 데다 키도 작다 못해 백오십도 채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세간에 자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로도 모자라 심지어 심각하게 잘생겼던 것이다. 위아래로 맞춤 제작한 슈트는 그의 훤칠한 몸을 더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그 바지통 아래의 긴 다리는 채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이미 연우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당신이 한시혁?”
연우를 경악하게 한 것은 한시혁의 말도 안 되는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믿기 힘든 사실은 눈앞의 이 남자가 바로 지난밤 호텔에서의 그 남자라는 것이었다. 시혁의 차가운 시선이 연우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연우가 자신이 찾는 사람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남편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돌아온 그의 긍정에 연우는 자칫 뒤로 넘어갈 뻔했다. 옆에 있던 황민희도 꽤나 충격을 받은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못생겼다며?’
“한 대표, 이리 안쪽으로 앉으시지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역시나 소국현이었다. 그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괜찮습니다.”
소국현을 대하는 한시혁의 태도는 꽤나 차가웠다.
“저는 연우를 데려가려고 온 겁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우린 이미 이혼했잖아?”
연우는 겨우 혼란 속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한시혁의 지금과 같은 행동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에 시혁의 날카로운 눈가에 문득 짙은 어둠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그가 가볍게 입술을 달싹였다.
“그 협의서 이미 파기됐어. 당신은 여전히 내 아내야.”
연우는 멍하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잘못들은 것은 아닐지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국현과 황민희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연우는 어쩔 수 없이 시혁을 따라 한성가의 별장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탔다.
리무진 내부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소 씨 집안의 별장이 눈에서 멀어지자 연우는 발끈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차 세워!”
그녀의 외침에 운전기사는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안정적으로 길가에 세워지자 연우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 했다. 하지만 시혁이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어디 가?”
“집에 간다 왜!”
연우는 그의 질문이 꽤나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한성가 별장은 아직인데.”
시혁이 농담하는 것 같지는 않자 연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한시혁 당신, 얼굴 좀 잘생겼다고 사람을 막 가지고 놀아도 되는 거야? 재밌어?”
겨우 얻은 자유가 눈앞에서 날아가버릴 상황에 연우는 화가 났다. 시혁은 그런 연우의 뾰로통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재밌지.”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연우를 잡은 팔에 살짝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특히 어젯밤엔 아주 재밌었지.”
어젯밤이라는 말에 지난밤의 청소년 관람불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연우의 하얗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타올랐다. 연우는 이를 악물어 보았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이내 한 단어가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변태!”
누군가 한시혁을 욕하는 것을 처음 들은 운전기사는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시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팔에 살짝 힘을 실어 연우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출발해.”
연우의 몸부림을 모두 막아내며 한시혁이 지시를 내리자 차는 이내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