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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분명 사모님께서 아랫사람을 아끼지 않으신 거잖아요

  • “소연우, 넌 이제 한성가 작은 사모님이 아니야, 당장 이 집에서 나가!”
  • ‘이혼 서류에 사인까지 해놓고 저 여자는 대체 무슨 낯으로 버티고 안 나가는 거지?’
  • 최현옥이 화를 내자 남시아는 냉큼 나서서 좋은 사람 행세를 했다.
  • “어머님, 집안사람도 아닌 사람하고 실랑이하시느라 몸까지 상하실 가치도 없어요.”
  • 그녀의 말은 최현옥을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실상은 이미 연우를 이 집안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시혁은 이제 그녀 한 사람의 차지가 되는 것이니. 하지만 아무리 최현옥이 시켰다 해도 고용인들 중 단 한사람도 감히 연우에게 손을 댈 사람은 없었다. 연우는 두 손을 허리 위에 얹었는데 기세등등한 얼굴은 마치 자신을 어떻게 할 수나 있겠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대는 사람이 없자 최현옥은 차라리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 “저것들이 너를 무서워한다고 나까지 널 무서워할 것 같아? 내가 오늘 손수 한 씨 가문을 대신해 청소 한번 해야겠구나.”
  • ‘저런 지조도 없는 여자는 놔둬 봐야 속만 뒤집어지지!’
  • 최현옥은 오십이 다된 나이였어도 손끝에 자비를 두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표독스러운 모습은 어디를 봐도 고상한 한 씨 집안 사모님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단숨에 연우의 앞에 놓여있던 물감들을 뒤집어엎었다. 형형색색의 물감들이 뒤섞여 검은 자국이 되어 연우의 하얀 원피스를 물들였다. 예전 같으면 연우는 그저 비굴하게 위층에 올라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붓을 헹구는 수통을 집어 들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앞으로 내던졌다. 최현옥은 물론 근처에 있던 남시아도 피해가지는 못했다. 거뭇한 물이 입고 있던 치마를 더럽히자 남시아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두 눈에서 불을 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고 있는 눈들이 없었다면 곧장 앞에 있는 저 막돼먹은 여자를 찢어발겼을 것이다. 물감들이 섞여 냄새가 코를 찌르는 물이 최현옥의 얼굴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녀는 말을 하는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 “소연우 넌 위아래도 모르는 거니!”
  • 연우는 눈을 치켜뜨며 냉정하게 물었다.
  • “분명 사모님께서 아랫사람을 아끼지 않으신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다고 뭐라 하실 수 있으세요?”
  • 지난 몇 년 동안 연우를 대하는 최현옥의 태도는 일개 고용인을 대하는 태도보다도 못했다. 만약 최현옥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대해주었다면 방금 전의 수모는 그녀도 참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참으면 더 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 “감히 말대꾸까지 하다니. 내가… 내가 오늘 네 년을 때려죽이고 말 거야!”
  • 하지만 나이가 나이 인지라 감정이 격해지자 최현옥은 곧바로 혈압이 상승했다. 연우에게 손도 대보지 못하고 그녀는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 “괜찮으세요 어머님?”
  • 남시아가 다급히 최현옥을 부축하며 날카롭게 연우를 질책했다.
  • “소연우 씨,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어머님께서 쓰러지셔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 과연 세계적인 대배우다운 연기였다. 연우는 어이가 없는 듯 코웃음 쳤다.
  • “여기 카메라 없어요. 신파극 같은 연기 안 해도 된다고요.”
  • 남시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현옥을 부축한 채로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지나치게 나서는 것도 다른 이들이 보기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앞쪽 정원에서 자동차 엔진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다행이야. 시혁 씨가 돌아왔어! 그가 소연우의 추잡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다면 무조건 저 여자를 이 집에서 쫓아내겠지. 게다가 저 여자가 사모님을 다치게 했으니 그거 하나만으로도 여기 계속 남아있을 자격을 잃기에 충분할 거야! 누가 자기 어머니를 때린 아내를 그냥 보고 넘기겠어?’
  • 낮지만 안정적인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짙은 화약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 찼다. 세 사람의 처참한 모습을 본 한시혁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 “다들 뭐 하시는 겁니까?”
  • 최현옥은 귀한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자신의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세가 살아났다.
  • “시혁아, 소연우 저게 이젠 눈에 뵈는 게 없는지 나한테 손찌검까지 하더라니까. 나는 저 계집애 하고는 단 하루도 한 씨 집안에서 같이 못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