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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역겨운 연극

  • 본가로 돌아온 연우가 집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소국현은 그녀를 향해 욕설을 쏟아부었다.
  • “불효막심한 년, 무슨 낯짝으로 집으로 기어들어와?”
  • “오라고 부르셨잖아요?”
  • 연우가 되물었다. 소국현은 연우에게서 아버지로서 느낄 수 있는 우월감과 위엄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하여 연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분노에 차 손에 집히는 대로 찻잔을 집어 들어 연우를 향해 내던졌다. 힘껏 내던진 찻잔은 그녀를 명중하지 못하고 연우의 발치에 내동댕이 쳐졌지만 그 충격으로 부서진 찻잔의 조각이 튕겨올라 그녀의 희고 고운 손등에 한줄기 깊지도, 그렇다고 옅지도 않은 생채기를 만들어내며 벌어진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연우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은 채 여전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 “기껏 이러려고 부르셨어요? 욕도 다 하신 것 같으니 더 볼일 없으시면 먼저 가 볼게요.”
  • 말을 마친 연우는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돌아서 나가려 했다.
  • “그만하면 됐어요 국현 씨, 너무 화내지 마세요. 불러서 하려던 말은 해야죠.”
  • 옆에서 실컷 구경만 하고 있던 황민희가 적당히 한마디 보탰다.
  • “거기 서!”
  • 황민희의 언질을 들은 소국현은 그제야 연우를 불러들인 진짜 목적이 생각이 났는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그녀를 붙잡았다. 그 소리를 들은 연우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 “듣자 하니 너 한 대표랑 이혼했다고?”
  • 소국현이 물었다.
  • “네.”
  • 소연우는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 소국현은 혈압이 솟구쳐 올랐다.
  • “이년이! 너 당장 한 씨 집안으로 돌아가, 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집에서 나오지 마!”
  • 소국현은 명령하듯 소리쳤다. 한 씨 집안으로부터 받아먹을 것이 많았으니 그 돈줄을 놓치면 소 씨 집안은 그대로 풍비박산이 날것이 뻔했다.
  • “참나, 제가 같은 구덩이에 두 번 빠질 정도로 멍청해 보이세요?”
  • 소연우는 소국현의 말들이 그저 웃길 뿐이었다.
  • “연우 너도 알잖니, 소 씨 집안은 한 씨 집안 없이는 안 되는 거.”
  • 황민희는 내내 연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이득 앞에서는 그녀도 한 수 접고 부탁하듯 말했다.
  •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소 씨 집안 사람도 아닌데.”
  • 소국현이 자신의 어머니를 배신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로 연우는 마음속에서 소 씨 집안과의 연을 끊은 지 오래였다. 이미 집안의 일은 상관치 않기로 굳게 결심한 듯 어떠한 설득도 통하지 않는 연우의 모습에 황민희는 소국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무언가의 눈빛을 보냈다.
  • “그래. 그럼 지금 바로 전화해서 네 어머니의 치료비를 끊으라고 하마.”
  • 소국현은 결국에는 또다시 연우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들먹였다. 몇 년 전 장희진의 병세가 심해져 매일 고액의 치료비를 들여 치료를 유지해야 되는 지경에 이른 후로 소국현은 연우가 고분고분 자신의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치료비를 끊어버린다는 협박을 밥 먹듯이 해왔던 것이다. 지금의 연우로써는 그 많은 치료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기에 매번 똑같은 수에 진절머리가 났어도 그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연우는 이번만큼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 “당신들은 한시혁을 뭐로 보시는 거예요?”
  • 그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 “고양이? 강아지? 언제 까지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어요?”
  • 그녀가 비꼬듯 말을 마치자 소국현과 황민희의 낯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한 씨 집안에서는 소국현과 황민희의 딸인 소연진을 며느리로 들이려 했었으나 못생긴 데다 동성애자 성향이 있는 남자에게 자신의 딸을 내어줄 수 없었던 황민희가 연우에게 약을 먹여 그녀를 보내 버린 것이었다.
  • “그것까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니까 네가 알아서 방법을 찾으란 말이야.”
  • 소국현은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말했다. 연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속으로 눈을 흘겼다.
  • “그 방법 이란 거 저는 못 찾겠네요. 한시혁이 직접 저를 한 씨 집안에서 쫓아낸 거예요. 그 사람이 직접 다시 데려가지 않는 이상은 저도 방법이 없다고요. 그런 게 아니라면 그 한 씨 집안에 저는 죽어도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말이에요.”
  • 연우는 마지막 한마디를 뱉으면서 날아갈 듯한 희열을 느꼈다. 한시혁이 소 씨 집안에 나타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건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연우의 기쁨이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바로 다음순간 고용인 하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급히 들어왔다.
  • “사장님, 사모님, 한성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