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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혼

  • “아니요, 도련님의 변호사가 찾아왔습니다. 작은 사모님을 뵙고 싶답니다.”
  • ‘변호사? 변호사가 갑자기 무슨 일로?’
  • 연우는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옷을 입었다.
  • 한편 거실.
  •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소파에 앉아있는 노변호사의 앞에 두 개의 서류와 명품 펜 하나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연우는 다가가 다른 쪽 소파에 앉았다.
  • “오셨어요 노 변호사님?”
  • “한 대표님이 작은 사모님께 전하라 하신 서류입니다.”
  • 노변호사는 거두절미하고 테이블 위의 서류들을 연우에게 건넸다. 서류를 건네받은 그녀는 여자의 직감으로 그것이 예사 서류가 아님을 예감했다. 서류를 열어본 그녀의 시선이 문서 첫 줄에 쓰인 큼직한 글자들 위에 닿았다.
  • “이혼 협의서? 그 사람 저랑 이혼하겠대요?”
  • 갑작스러운 상황에 연우는 꽤나 당혹스러웠다.
  • “그렇습니다.”
  • 노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작은 사모님과 대표님의 혼인관계가 종결된 후 소 씨 일가에서 지참금으로 받으신 100억은 작은 사모님께 드리는 보상으로 돌려줄 필요가 없으십니다.”
  • “그 사람 진심이에요?”
  • 연우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듯 물었다. 3년 전, 파산직전의 집안을 살리기 위해 계모인 황민희와 그녀의 무정한 친부가 작당하고 그녀를 100억에 한 씨 집안에 넘겨버렸었다.
  • ‘적어도 5년은 지나야 혼인으로 한 씨 집안에 묶여버린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3년밖에 안 됐는데 이혼이라고?’
  • “그렇습니다.”
  • 노변호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 “한 대표님께선 이미 사인하셨습니다.”
  • “저랑 왜 이혼하겠다던가요?”
  •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 “좋아요!”
  • 소연우는 통쾌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한시혁의 이름 옆에 자신도 사인했다. 한시혁이 해외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자신과 이혼하려는 이유는 그녀도 몰랐지만 딱히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이혼얘기를 꺼낸 건 그이니 집안에서도 뭐라 하지 못할 테고 자신은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그녀에겐 오히려 이득이었다.
  • 변호사가 떠나고 신이 난 연우가 위층으로 올라가 짐들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려 하고 있을 때 고용인이 총총걸음으로 들어와 일렀다.
  • “작은 사모님,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연우가 몸을 돌려 문 쪽을 올려다보자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꾸준한 관리로 여전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최현옥이 우아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연우의 시선 속에 거실 소파의 상석에 자리 잡은 최현옥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연우를 마주 보았다.
  •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구나?”
  • 왠지 기쁜 듯한 연우의 모습에 최현옥은 심기가 불편했던지 불쾌감이 바로 얼굴에 드러났다.
  • “저랑 한시혁 이혼했어요. 그래서 오늘부터는 이곳에서 지내지 않아도 되니까 기분이 좋은 거고요.”
  • 내내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의 연우를 탐탁지 않아 했던 최현옥은 연우가 이 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자신을 사모님이라 부르라고 시켰다. 연우 또한 이 강압적이고 오만한 시어머니에게 별로 호감이 없었다. 하여 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 최현옥의 얼굴에 순간 의구심이 스쳤다. 자신의 아들이 소연우와 이미 이혼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곳까지 헛걸음을 한 것이 아닌가?
  • “거기 서!”
  • 연우가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자 최현옥은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호통쳤다. 어찌 되었든 이미 왔으니 한 씨 집안 체면이나마 챙길 생각이었다.
  •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온 거야. 너, 내 아들 몰래 바람피우니?”
  • 연우는 당황함에 몸을 돌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최현옥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집사를 보고 입꼬리를 올린 채 태연하게 말했다.
  • “그럴 리가요.”
  • 연우는 딱히 양심이 찔리지도 않았다. 어차피 한시혁과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이니 배신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
  • “아직도 인정 안 하겠다는 거지? 다들 가서 뒤져봐!”
  • 최현옥은 연우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의 지시를 들은 집안의 고용인들이 급히 위층으로 올라가 연우의 침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연우가 아직 처리하지 못한 남성용 셔츠를 찾아내어 최현옥에게 건넸다.
  • “이게 뭐니?”
  • 최현옥은 옷가지를 움켜쥔 채 울긋불긋 해진 얼굴로 닦달했다.
  • “오늘 아침 새로 산 셔츠드레스인데요.”
  • 연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일이 커지면 한 씨 집안에서 소 씨 집안을 가만둘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이 일에 대해 그 무엇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소 씨 집안이야 그녀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일이 커진다면 그녀의 어머니까지 휘말려들 위험이 있었다.
  • 연우의 태연한 태도에 최현옥은 순간 자신이 애꿎은 사람을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은 분명 남성용 셔츠였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옷깃에 금실로 수놓아진 H이니셜도 보였다. 손수 맞춤제작한 수제 셔츠임에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