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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술에 취해 고통을 잊다

  • “시안아,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때려? 너 언제부터 이렇게 거친 사람이었니?”
  • 나를 향해 뒤돌아선 허민혁이 화가 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질책하듯 말했다.
  • 심장이 칼에 베인 것 같은 통증이 다시 가슴을 강타했다. 나는 창백한 얼굴로 허민혁을 바라보았다. 진예은이 그의 마음속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 그런데 민혁 씨 약혼녀는 나잖아. 우리 내일 곧 결혼할 사이잖아. 어떻게 우리 신혼집에서 다른 여자랑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 게다가 바람의 상대는 내가 대학 시절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절친이었다.
  • “진예은, 내 집에서 나가! 여기는 우리 신혼집이야. 당장 꺼져!”
  •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서 진예은의 팔을 잡아당겼다.
  • “그만! 고시안, 정도껏 해!”
  • 허민혁이 달려와서 나를 밀쳐 바닥에 쓰러뜨리더니 진예은을 품에 안았다.
  • 엉덩이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바로 일어서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허민혁을 쏘아보았다. 당신에게 나는 남보다도 못 한 사람이었구나….
  • “허민혁, 당신 저주할 거야!”
  • 나는 온몸의 힘을 다 짜내서 그를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 그 뒤로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아파트를 벗어나 거리에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그 충격적인 장면을 잊고 싶었다.
  • 아까 보았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혼 전야에 약혼자와 절친이 뒹구는 꼴이라니! 게다가 그 절친은 내 약혼자의 아이를 낳았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나한테 벌어진 것이다.
  • 우리는 7년을 사랑했다. 내일만 지나면 나는 그와 두 손 마주 잡고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 그런데 오늘 밤 내 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모든 꿈을 처참히 부숴버렸다. 그는 더 이상 나만 사랑한다고, 평생 함께하자고 했던 허민혁이 아니었다.
  • 중심가의 어느 술집.
  • 진한 알코올 향기가 퍼지고 시끄러운 음악이 귀를 진동하는 이곳. 무대에서는 남자 댄서가 미친 듯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구석진 곳에 앉아 독한 술을 한 잔, 또 한 잔 들이마셨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결혼 전야에 약혼자랑 친구가 침대에서 뒹구는 꼴을 보다니. 너무 웃기잖아!
  • 7년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내가 가장 믿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 그런데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불쌍한 여자가 또 있을까?
  • 벌거벗은 채 허민혁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미친 듯이 몸을 흔들던 진예은과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짓던 허민혁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겹고 우스운 장면이었다.
  • 그리고 정원이. 그 아이는 허민혁의 자식이었다. 그들은 뒤에서 불륜만 저지른 게 아니라 아이까지 낳았다. 내가 아무리 물어도 아이의 아빠를 입에도 올리지 않던 진예은이었다. 나는 그녀가 그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항상 입 조심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번 내가 노심초사할 때마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 이쯤 되면 그들이 잘 숨겨서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바보라서 눈치채지 못한 건지 헷갈렸다.
  •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 나는 복잡한 기분에 미친 듯이 술을 마셨다.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