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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파혼

  • 하영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내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 “네가 생각한 거 맞아. 나 남자랑 잤어. 그런데 상대가 허민혁이 아니야.”
  • 허민혁 세 글자를 입에 담는 것조차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 내가 미쳤지. 그 정도로 바닥인 놈인 줄도 모르고 7년을 허비했으니….
  • “뭐? 그럼 너 어젯밤 다른 남자랑…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하영은 잔뜩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젯밤 신혼집에서 봤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역겨움을 참으며 자초지종을 하영에게 털어놓았다.
  • “뭐? 허민혁 이 자식 어떻게 너한테 그럴 수 있어?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네!”
  • 내 설명을 들은 하영은 분노한 표정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 “그러면 오늘 결혼식은 어떡해?”
  • 하영은 뭔가 떠오른 듯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당연히 취소해야지.”
  •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은 아팠다.
  • 내가 몇 년이나 기다렸던 날이었다. 내가 차근차근 공을 들여 준비한 결혼식이었다. 나는 모든 심혈을 오늘 결혼식에 쏟았다. 그 모든 것이 어젯밤 이후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 “하영아 나 피곤해. 쉬고 싶어.”
  • 지금 허민혁을 생각하면 구역질이 올라오지만 그래도 내가 7년이나 사랑했던 남자였다.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숙면이었다. 잠에서 깨면 그라는 사람이 내 삶에서 통째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을 텐데….
  • 하영도 내 마음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문을 나섰다.
  •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나는 거실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허민혁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 하영과 허민혁이 다투고 있었다.
  • 침실을 나가 보니 허민혁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하영은 분노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 “시안아.”
  • 나를 본 허민혁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 “허민혁 씨, 여긴 무슨 일이죠? 서로 볼일은 끝난 것 같은데요!”
  • 나는 왜 나를 배신했는지 묻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냉랭하게 물었다.
  • “시안아, 어젯밤 일은….”
  • 자리에서 일어선 허민혁이 나에게 다가오며 자책하듯 말끝을 흐렸다.
  • “내 친구 앞에서 당신이 어젯밤 내 대학 동창이랑 침대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꼭 얘기해야겠어?”
  • 나는 냉랭한 표정으로 비꼬듯 물었다. 속이 부글거리고 울화가 치밀었다.
  •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기만과 배신에 가슴이 아팠다.
  • “시안아, 어젯밤 일은 내 잘못이야. 하지만 나랑 예은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해. 그러니까….”
  • 허민혁은 더 할 말이 많이 남은 것 같았지만 나는 냉랭하게 말을 잘랐다.
  • “거기까지 해! 허민혁, 우린 이미 끝났어. 나한테 해명할 필요는 없어. 내가 하도 졸라서 결혼하기로 한 거라며? 이제 당신 마음 알았으니까 당신에게 자유를 줄게!”
  • 내 친구와 바람을 피우고 아이까지 낳았으면서 이제 와서 사실은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 둘이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내 7년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7년 동안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