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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친구 남자를 빼앗아서 행복해?

  • “하영아, 나 이제 어떡해?”
  •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 허민혁은 내 전부였다. 내 모든 삶이 그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그가 사라진 지금, 나는 모든 원동력을 상실했고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는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 “시안아, 그 사람은 그냥 쓰레기야. 결혼하기 전에 본모습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만약 결혼한 뒤에 알았으면 그땐 어쩔 뻔했어?”
  • 하영은 내 옆에 다가와서 앉으며 위로하듯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 “그런데 마음이 너무 아파….”
  • 나는 눈물을 흘리며 하영을 안았다. 떨쳐버리고 싶지만 아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시안아. 넌 할 수 있어. 앞으로 그런 쓰레기보다 몇백 배는 좋은 남자 만날 거야. 그때 가서 보란 듯이 잘살아! 허민혁 그 자식은 분명 후회할 거야!”
  • 하영은 내 눈을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내 옆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건 나에게 행운이었다. 만약 하영의 위로가 없었다면 나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 “일어나. 옷 갈아입고 화장해. 오늘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거야. 오늘이 지나면 허민혁? 그 자식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
  • 하영은 침대에서 나를 잡아 일으키고 강제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혔다.
  • 나는 하영을 따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백화점으로 갔다.
  • 예전에 얼핏 이곳이 허민혁이 다니는 회사 소속이라는 것을 들은 적 있는 것 같았다. 허민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니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싶었지만 하영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 그녀가 나를 위해 이러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 그렇게 정처 없이 의류 코너를 돌면서 옷들을 쓸어 담았다. 전부 하영이 고른 옷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쇼핑을 할 기분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허민혁과 진예은이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며 하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 “시안아, 왜 그래? 나 아직 다 입어보지 못했어.”
  • 그들을 보지 못한 하영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하영아, 다른 백화점 가자. 여기 있고 싶지 않아.”
  • 그들에게 내 존재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두 사람을 등지고 서서 말했다.
  • 하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는 눈빛이었다.
  • 그녀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등 뒤에서 익숙하고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렸다.
  • “시안아,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실연의 아픔을 달래고 있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나 봐?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기분 내서 쇼핑하러 나온 걸 보면 말이야.”
  • 아픈 곳을 찔렸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들 앞에서 절대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었다!
  • 그제야 하영은 내가 왜 자리를 뜨려고 했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 그녀는 당당하게 걸어가서 내 앞을 막아섰다.
  • “난 또 누구라고. 말로만 듣던 불륜녀 아니야? 어때? 친구 남자를 가로채니까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