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아,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때려? 너 언제부터 이렇게 거친 사람이었니?”
나를 향해 뒤돌아선 허민혁이 화가 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질책하듯 말했다.
심장이 칼에 베인 것 같은 통증이 다시 가슴을 강타했다. 나는 창백한 얼굴로 허민혁을 바라보았다. 진예은이 그의 마음속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민혁 씨 약혼녀는 나잖아. 우리 내일 곧 결혼할 사이잖아. 어떻게 우리 신혼집에서 다른 여자랑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게다가 바람의 상대는 내가 대학 시절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절친이었다.
“진예은, 내 집에서 나가! 여기는 우리 신혼집이야. 당장 꺼져!”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서 진예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만! 고시안, 정도껏 해!”
허민혁이 달려와서 나를 밀쳐 바닥에 쓰러뜨리더니 진예은을 품에 안았다.
엉덩이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바로 일어서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허민혁을 쏘아보았다. 당신에게 나는 남보다도 못 한 사람이었구나….
“허민혁, 당신 저주할 거야!”
나는 온몸의 힘을 다 짜내서 그를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 뒤로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아파트를 벗어나 거리에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그 충격적인 장면을 잊고 싶었다.
아까 보았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혼 전야에 약혼자와 절친이 뒹구는 꼴이라니! 게다가 그 절친은 내 약혼자의 아이를 낳았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나한테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7년을 사랑했다. 내일만 지나면 나는 그와 두 손 마주 잡고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밤 내 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모든 꿈을 처참히 부숴버렸다. 그는 더 이상 나만 사랑한다고, 평생 함께하자고 했던 허민혁이 아니었다.
중심가의 어느 술집.
진한 알코올 향기가 퍼지고 시끄러운 음악이 귀를 진동하는 이곳. 무대에서는 남자 댄서가 미친 듯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구석진 곳에 앉아 독한 술을 한 잔, 또 한 잔 들이마셨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혼 전야에 약혼자랑 친구가 침대에서 뒹구는 꼴을 보다니. 너무 웃기잖아!
7년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내가 가장 믿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불쌍한 여자가 또 있을까?
벌거벗은 채 허민혁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미친 듯이 몸을 흔들던 진예은과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짓던 허민혁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겹고 우스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정원이. 그 아이는 허민혁의 자식이었다. 그들은 뒤에서 불륜만 저지른 게 아니라 아이까지 낳았다. 내가 아무리 물어도 아이의 아빠를 입에도 올리지 않던 진예은이었다. 나는 그녀가 그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항상 입 조심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매번 내가 노심초사할 때마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이쯤 되면 그들이 잘 숨겨서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바보라서 눈치채지 못한 건지 헷갈렸다.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는 복잡한 기분에 미친 듯이 술을 마셨다.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