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다음 화
이혼 스캔들

이혼 스캔들

애라

Last update: 2024-01-05

제1화 무관심한 남편

  • 올해 해운시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 현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욕설을 듣고 있었다.
  • “현영이 너 임신을 못하는 것도 모자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식사 준비를 안 해! 우리 경림이 굶겨 죽이려고 작정했어?!”
  • 부태정과 결혼한 지도 어언 6년, 시어머니는 매일이다시피 그녀에게 임신도 못하는 병신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 하지만 그 사정을 누가 알까? 그의 남편은 여태 한 번도 그녀의 몸에 손을 댄 적이 없다는 사실을.
  • “어이, 뭐 해? 빨리 가방 정리를 해줘야지! 나 학교 갈 시간이란 말이야!”
  • 시어머니의 욕설이 잠잠해지자 한 소년이 또 그녀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 부태정의 동생 부경림은 한 마디로 그냥 악마였다. 이 집안에서 시어머니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현영을 괴롭힌 사람도 부경림이었다.
  • 그의 눈에 형이 데려온 형수는 이웃집 강아지보다도 더 만만한 존재였다.
  • 아래층으로 내려간 현영은 거의 기계적으로 주방에 들어가서 식사를 준비하고 시동생의 책가방을 정리했다.
  • “어머니, 식사 준비 끝났어요!”
  • 왕숙희는 생기 없는 현영의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서 물컵을 식탁에 탁 치며 소리쳤다.
  • “현영, 너 미쳤지? 내 아들이 벌어다 준 돈을 쓰고 내 아들의 집에 살면서 지금 내 앞에서 그게 무슨 표정이야? 지금 당장 태정이한테 전화해서 이혼하라고 할까?!”
  • 접시를 든 현영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깊게 심호흡하고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내며 말했다.
  • “어머니, 그런 거 아니에요.”
  • 하지만 왕숙희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얄밉게 말했다.
  • “현영, 너 그 늙은이가 널 좀 예뻐한다고 해서 이 집안 안주인이 될 것 같지? 민희랑 비교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 그 여자의 이름을 들은 현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부경림이 뭔가 발견한 듯 얄밉게 웃었다.
  • “아줌마는 아직 모르지? 민희 누나 곧 퇴원해. 형이 민희 누나를 우리 집에 데려다가 같이 살기로 했거든.”
  • 순간 현영은 흠칫하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 왕숙희는 처음부터 온갖 가련한 척 다 하는 현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차갑게 코웃음치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 “내 앞에 서서 입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 어서 꺼져!”
  • 현영은 곧장 발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가서 그녀의 전용 자리인 소파에 누웠다.
  • 깊은 밤, 마이바흐 한 대가 집 앞에서 멈춰 섰다.
  • 현영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베란다로 달려갔다.
  • 깔끔한 양복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연예인보다 더 준수한 외모에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 남자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건지 고개를 들어 현영을 바라보았다.
  • 차갑게 식은,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냉랭한 시선.
  • 이미 그런 눈빛에 습관 된 현영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부태정이 방에 들어오자 현영은 평소처럼 그를 위한 목욕물을 준비하며 말했다.
  • “여보, 할머니께서 절에 가신 지도 한 달이 넘었잖아요. 오후에 연락이 오셨는데 당신한테 부적하나 마련해 주신다고….”
  • “나 할 얘기가 있어.”
  • 부태정이 한창 바쁘게 돌아치는 그녀를 불렀다.
  • 현영이 고개를 돌렸다.
  • 부태정은 여전히 냉랭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잠시 머뭇거리던 부태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고민희가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내일 이 방에서 나가줘.”
  • 현영의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
  • ‘부경림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 “내가 싫다고 하면요?”
  •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 부태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 그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던 여자가 처음으로 그를 거절했다.
  •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 “6년 전에 너랑 내가 어떻게 결혼했는지 잊지 마.”
  •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 그날 고민희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현영이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고민희가 희귀 혈액형이라 하여 선뜻 수혈해 준 사람도 현영이었다. 부태정은 감사의 의미로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 그때 현영의 유일한 소원이 그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 그것은 고등학교 때 부태정을 처음 봤을 때부터 고이 간직한 현영의 오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