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종지부를 찍다

• 유준수는 전형적인 재벌 2세였다.
•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정말 결정한 거야?”
• “나 어느 때보다도 더 이성적이야.”
• 현영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 그녀의 타고난 예쁜 얼굴이 예전의 음울한 분위기를 벗고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 유준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나는 네가 평생 정신을 못 차릴 줄 알았어. 6년 동안 내가 얼마나 속이 뒤집어졌는지 알아? 어떻게 좋아해도 그런 나쁜 새끼를 좋아할 수 있어?”
• 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그래, 내가 바보였었지.”
•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다행이야. 거기서 6년만 더 살았어도 너 다 늙은 아줌마가 됐을 거야.”
• 유준수가 농담 식으로 말했다.
• “난 예전에 어느 날 네가 다 늙어서 쫓겨나면 꾹 참고 널 신부로 맞아 주려고 했어. 그래도 우린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잖아.”
• 현영이 얄미운 시선으로 그를 흘기며 대꾸했다.
• “재수 없는 소리.”
• “참, 이건 내가 준비한 이혼서류야. 확인해 봐.”
• 서류를 건네받은 현영은 대충 훑어보고 말했다.
• “부태정이 주는 건 하나도 안 받을 거야. 예전에도 빚진 거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없을 거야.”
• 말을 마친 그녀는 서슴없이 사인했다.
• 옆에 있던 유준수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그래, 구질구질하지 않고 좋네.”
• 고개를 든 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 “대학병원으로 가자.”
• “예， 아가씨.”
• 병원 맨 위층, VIP 병실.
• 1203호실을 찾은 현영은 가볍게 노크한 뒤,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병상에 누운 가녀린 여자는 그녀의 출현에 놀란 듯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온몸을 떨었다.
• 부태정이 음침한 표정으로 차갑게 물었다.
• “여긴 왜 왔어?”
• 현영은 여유롭게 이혼서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 “사인만 하면 바로 나갈 거야.”
• 서류를 확인한 부태정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 “이혼하고 싶어?”
• “그러지 않으면?”
• 현영은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시린 미소를 지었다.
•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생 많았어. 이제 사인만 하면 당신도 해방이잖아?”
• 부태정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현영을 차갑게 응시했다.
• 이때 병상에 있던 고민희가 가냘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태정 씨….”
• 이는 일종의 암시였다.
• 부태정은 고민희를 한번 뒤돌아보고 다시 시선을 현영에게 돌리고는 말했다.
• “집에 가서 얘기해. 민희 힘드니까 일단 나가.”
• 현영이 차갑게 웃었다.
• “나 진심이야. 어차피 당신은 고민희 씨를 집에 데려갈 테고 내가 사라져 주면 당신들도 좋잖아?”
• “현. 영!”
• 마치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렸다.
• “고민희 씨가 보고 있잖아. 설마… 당신 내가 갑자기 좋아져서 이혼하기 싫은 건 아니지?”
• 현영이 입가에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 고민희는 울먹이는 눈빛으로 부태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 “태정 씨, 왜 그래?”
• 현영은 차갑게 남자를 노려보며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 “그래, 사인할게!”
• 부태정이 입술을 깨물고 평소보다 더 차가운 말투로 대꾸했다.
• 현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남자에게서 이혼서류를 받아든 그녀는 미련 없이 병원을 나섰다.
• 하지만 병실을 나서기 바쁘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6년의 결혼 생활과 8년의 짝사랑. 모든 게 물거품이 된 하루였다.
• 사람인데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 그것은 누군가가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