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8화 그 여자랑 이혼한 거 후회해?

  • 부씨 가문 저택.
  • 왕숙희는 고용인들을 시켜 현영이 살았던 흔적을 싹 다 지우게 했다. 그녀가 잠들었었던 침대, 신었던 슬리퍼, 사용했던 그릇들까지 전부 밖에 내다버리게 했다.
  • “이게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 부태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왕숙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 “전부 그년 물건인데 남겨서 뭐해? 앞으로 민희랑 결혼해서 잘 살 준비나 해야지.”
  •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왕숙희는 다급히 다가와서 부태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
  • “태정아, 너희 이혼했잖아. 돈은 너 혼자 힘들게 벌었으니까 한 푼도 나눠 주면 안 돼!”
  • 부태정이 담담히 대꾸했다.
  • “그 여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어요.”
  • 왕숙희는 전혀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 “그럴 리 없어! 한 푼도 없는 년이 어떻게 너한테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려 했겠니? 돈이 없으면 무슨 수로 밖에서 젊은 남자를 만났겠어?”
  • 부태정은 현영과 그 남자 모델의 관계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왕숙희와 더 입씨름을 하기 싫었던 그는 장 비서를 불러 이혼 서류를 가져오게 했다.
  • 위층에 올라가니 고민희가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그녀가 고개를 들고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 “왔어?”
  • 부태정은 그녀의 달콤한 미소를 보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 “몸은 좀 나아졌어?”
  • “응, 괜찮아. 방에만 있으니까 답답해서 책 좀 읽고 있었어.”
  • 고민희는 가볍게 책을 내려놓은 뒤, 몸을 일으켜 남자의 허리를 안았다.
  • “태정 씨, 그 여자랑 이혼한 거 후회해?”
  • 부태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 “사랑한 적도 없는데 무슨 후회를 해? 그리고 먼저 바람난 건 그 여자야.”
  • 고민희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 뒤돌아선 남자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 “이제 그 얘긴 꺼내지 말자.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다음 달에 아저씨가 널 위한 파티를 준비하신대. 그러니까 빨리 나아야지.”
  • 고민희가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 “알았어.”
  • 부태정이 방을 나간 뒤, 그녀는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가씨,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현영이 차로 날 친 사실을 아빠한테 말씀드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 “네, 아가씨.”
  • 전화를 끊은 뒤, 고민희는 창가에 놓인 선인장을 보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 회사로 돌아온 부태정은 장 비서를 불렀다.
  • “준비하라고 했던 ‘바다의 눈물’은 어떻게 됐어?”
  • 장 비서가 공손히 대답했다.
  • “대표님, M 국에서 답변이 왔는데 일주일 뒤면 발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 ‘바다의 눈물’은 국제적인 디자이너 K의 작품으로,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진귀한 목걸이였다. 부태정은 힘들게 구한 그 목걸이로 돌아오는 S 그룹 파티에서 고민희에게 청혼할 것이다.
  • 장 비서는 저도 모르게 상사와 6년을 같이 산 전 사모님이 떠올랐다.
  • 그의 상사는 한 번도 그녀에게 선물을 사준 적이 없었다. 값비싼 목걸이가 아니라 꽃 한 송이도 선물해 주지 않았다.
  • 한 번은 현영이 도시락을 들고 회사에 찾아온 적 있는데 부태정은 차갑게 그녀를 쫓아버렸다. 그 뒤로 현영은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고 모든 직원들이 현영을 무시했다. 그 뒤로도 현영은 몇 번 회사를 방문했지만 전부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거절당했다.
  • 장 비서는 상사가 현영을 대하는 태도와 고민희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상반된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일에 몰두했다.
  • 이때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 친한 친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 “무슨 일이야?”
  •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부태정, 인터넷 기사 한번 확인해 봐.”
  • 영문도 모른 채 짜증스럽게 인터넷 검색창을 연 부태정의 표정이 순간 차갑게 굳었다.
  • 현영과 그 남자 모델의 사진이었는데 여자는 고개를 들고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각도를 보면 키스하고 있는 장면 같았다.
  •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시뻘건 기사 타이틀이었다.
  • 【충격! 부씨 그룹 대표 이혼을 강요당하다. 그의 빈자리를 톱모델이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