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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제 당신들이 알아서 해

  • 그땐 의사가 고민희가 깨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기에 부태정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 하지만 부태정은 줄곧 그녀를 차갑게 대했다.
  • 현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 “당신 와이프는 저예요. 그런데 제가 왜 이 방에서 나가야 하죠?”
  • 고개를 돌린 부태정이 음침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호통쳤다.
  • “왜냐고? 6년 전 뺑소니 사고 운전자가 너라고 민희가 증언했으니까!”
  • 현영은 잠시 흠칫하다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거예요?”
  •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 그 눈빛은 깊은 혐오와 원망뿐이었다!
  • “넌 악랄하고 지독한 여자야. 생각 같아서는 민희가 당한 고통, 당신에게 백배, 천 배로 돌려주고 싶어!”
  • 부태정이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 현영은 남자의 눈빛에 드러난 적대감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 6년이면 차갑던 돌도 따뜻하게 덮여질 시간 아닌가?
  •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 “난 그런 적 없어요!”
  • 현영이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 부태정이 냉기가 뚝뚝 흐르는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넌 똑똑한 여자야. 그러니까 이제 뭘 해야 할지 잘 알겠지.”
  • 말을 마친 그가 차갑게 등을 돌렸다.
  • 그가 떠난 방안은 냉기와 고독만 가득 찼다.
  • 현영은 거울에 비친 창백하고 지칠 대로 지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이게 나라고?’
  • 콧대 높기로 소문났던 그녀가 한 남자 때문에 이렇게 비굴한 삶을 살고 있다니….
  •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 한참이 지난 뒤, 현영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 “이제 놓아줄 때도 됐지….”
  • 다음날 아침, 부태정은 고민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 현영은 거울 앞에서 6년이나 입었던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하얀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캐리어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소파에 기대 TV를 보고 있던 부경림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 “야! 어디 가?”
  • 현영은 대답 대신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한번 바라본 뒤 출입문으로 향했다.
  •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부경림이 다급히 달려와서 그녀의 캐리어를 빼앗으며 차갑게 물었다.
  • “귀먹었어? 내가 묻잖아? 집 청소는 다 했어? 식사 준비는? 아침부터 어딜 가는 거야!”
  •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16살 소년, 형수를 존중하기는커녕, 부려먹기만 하던 악마 같은 존재!
  • 현영은 차가운 얼굴로 소년의 손을 뿌리치며 대꾸했다.
  • “야, 이 악마 같은 자식아! 앞으로 밥을 먹든 청소를 하든 너희가 알아서 해!”
  • 그녀가 일부러 세게 밀친 것도 아니건만 아이는 일부러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 “엄마! 이리 와 봐! 이 망할 여자가 나를 때렸어!”
  • “경림아, 무슨 일이야?”
  • 아래층으로 내려온 왕숙희의 얼굴이 순간 푸르뎅뎅해졌다. 그녀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현영을 향해 빗자루를 쳐들었다.
  • “세상에! 이런 미친년이 감히 내 아들을 때려? 죽어 이년아!”
  • 이 늙은 여자, 예전에도 화가 나면 그녀를 때리며 화풀이했다.
  •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부태정 한 남자만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 하지만….
  • 현영은 날렵하게 손을 들어 빗자루를 빼앗아 땅에 내동댕이치며 차갑게 경고했다.
  • “내 몸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
  • 순간 왕숙희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 잠시 후, 아까보다 더 요란한 고함소리가 귀를 찔렀다.
  • “현영이 너 미쳤구나! 내 당장 태정이한테 전화해서 이혼하라고 할 거야!”
  • 예전에는 할머니를 봐서 왕숙희에게 어떤 수모를 당해도 꾹꾹 참았다. 부태정에게 버려지기 싫어서.
  • 예전에는 두려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 현영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러시든가.”
  • 말을 마친 그녀는 뒤에서 그들이 욕설을 퍼붓건 말건 캐리어를 끌고 부씨 가문을 떠났다.
  • 밖에서 대기하던 붉은색 페라리에서 젊고 섹시한 남자가 내리더니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현영, 빨리 타!”
  • 차에 올라탄 현영은 미련 없이 이 동네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