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즐거우셨나요! 제 친구 윤솔을 소개할게요. 오늘 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술값을 이 친구가 계산해 줄 테니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오늘 제 친구가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공연을 선사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오늘 여러분들은 눈이 아주 즐거우실 겁니다! 유후, 같이 즐겨주세요!”
처음에는 창피해하던 윤솔도 대배우인 소율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에 결국 자포자기했다.
소율이 DJ와 무어라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이내 무대 위 조명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무대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던 사람들도 눈치 있게 물러나고 이윽고 무대 위에는 윤솔과 소율 단둘뿐이었다.
곧이어 천장에서 댄스봉이 천천히 내려왔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 선 윤솔은 설렘으로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허주원과 결혼하고 고분고분하고 온화한 조강지처 모습을 연기를 하느라 성질을 전부 죽인 덕분에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잊고 살았다.
윤솔은 다른 사람들의 동정과 연민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오로지 복종일 뿐, 그녀는 여왕이 될 것이다!
음악이 시작되자 윤솔은 소율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폴 댄스는 오디션을 준비하던 소율 덕분에 입문하게 되었다.
소율이 오디션을 볼 때에는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고 그러다 나중에 폴 댄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소율을 따라 학원을 끊기도 했다.
20년간의 우정과 7, 8년간의 춤 교감을 쌓아온 두 사람은 미리 리허설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가운데 윤솔과 소율은 한 손으로 댄스 봉을 살짝 잡은 채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내딛는 걸음마다 요염함이 넘쳐흘렀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서로의 손과 팔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무대 아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검은색과 빨간색의 대조되는 드레스를 입은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얽혀 있는 모습에 방금 막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장경아는 기절할 뻔했다.
어찌 된 게 소율은 연예인으로서의 자각이 이리도 없단 말인가!
장경아는 황급히 무대 옆으로 달려갔다.
“소율, 너 미쳤어?”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자신의 신분을 망각했던 소율은 매니저의 호통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목을 움츠린 채 옆에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고 있는 윤솔을 힐끗 바라보았다.
입을 헤벌쭉 벌리고 댄스 봉에 감긴 길고 뽀얀 다리를 바라보던 소율은 언뜻 무대 아래에서 불청객이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윤솔과 무대 아래를 번갈아 바라보던 소율은 잠자코 입을 다문 채 윤솔을 무대 위에 홀로 남겨두고 슬그머니 무대에서 내려왔다.
원래도 눈에 띄는 외모였지만 빨간 드레스를 입고 조명 아래에 선 윤솔은 탐스러운 모란처럼 화려했다.
덕분에 무대에서 내려오는 소율의 모습에 의아해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윤솔에게 쏠렸다.
그 시각, 클럽으로 막 들어선 허주원은 평소 고분고분하고 순한 양 같던 여인이 똬리를 튼 뱀처럼 댄스 봉에 찰싹 달라붙은 채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긴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빛 사이로 흩날리며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고양이처럼 요염한 눈매를 반짝이며 나른하게 댄스 봉을 타고 올라가는 윤솔은 가시 달린 장미처럼 고고하게 빛났다.
빨간 드레스 아래로 길게 뻗은 희고 가는 다리가 댄스 봉에 감긴 모습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댄스 봉을 타고 내려온 윤솔은 사뿐하게 바닥을 내딛고서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댄스 봉에 기댄 채 마무리 동작을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댄스 봉에서 손을 뗀 윤솔은 무대를 내려가려던 찰나, 무대 아래에서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는 허주원과 시선이 얽혔다.
3미터가 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도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과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검은 눈동자가 똑똑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