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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너를 돋보이게 하기엔 부족해

  • 최근 오래간만에 한가해진 윤솔은 집에서 빈둥빈둥 쉬고 있었다. 그러나 이틀도 못가 소율한테 이끌려 저녁 파티에 가게 되었다.
  • 파티장에 입장한 그녀는 소율을 찾기도 전에 먼저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 “쯧쯧쯧, 새언니 아니에요? 아, 참, 이젠 내 새언니가 아니죠, 내가 깜빡했네요!”
  • 허정아의 비꼬는 듯한 말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윤솔은 그녀를 담담하게 쳐다봤다.
  • “허정아 씨 저한테 볼 일 있으세요?”
  • “아니요, 윤솔 씨가 무슨 수로 초대장을 받고 들어왔는지 궁금해서요! 이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인데 된장녀가 이번엔 누구한테 빌붙어 들어왔는지 궁금하잖아요?”
  • 서울은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저 거기서 거기이다.
  • 이런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은 기본상 상류층 인사들이고, 지금 모여서 윤솔을 웃음거리로 삼는 사람들은 3년 동안 그녀를 짓밟고 모욕한 사람과 거의 다르지 않다.
  • 허정아는 허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에 꽤 무게가 있었다. 그녀가 앞장서서 누군가를 따돌리니 그 뒤에는 당연히 허 씨 가문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 윤솔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참지 못했고 손을 들어 허정아의 뒤에 있는 소율을 가리켰다.
  • “그건 소율 씨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 소율은 파티 주최 측 브랜드 모델로서 오늘 온몸에 보석을 휘감았고 카리스마가 넘쳐 파티장에 입장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 소율은 멀리서 윤솔이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고, 윤솔한테 다가가기도 전에 허정아가 또 못된 짓을 하는 걸 들었다.
  • 소율은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12센티미터의 하이힐을 내디디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곧장 윤솔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보호하듯 고개를 숙이고 허정아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 “당신이 뭔데 내 친구한테 왈가왈부하는 거예요!”
  • 소율의 말은 마치 허정아의 얼굴에 뺨을 한 대 날린 것 같았다. 허정아의 안색은 조금 하얘졌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소율은 최고의 스타이자 이번 보석 브랜드의 모델이었다. 브랜드 측은 그 누구든 이 파티장에서 퇴장시킬 수 있지만 유독 소율은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 게다가 업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율의 뒤에 어마어마한 스폰서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 다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그게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
  • 소율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허정아는 윤솔을 죽일 듯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 ‘이 년이, 언제 소율한테 빌붙었어?”
  • 윤솔은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허정아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주위의 경악한 사람들을 덤덤하게 훑어보고는 와인 한 잔을 들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소율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고, 얼굴에 냉기가 가시지 않아 지나치는 사람들은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
  • 윤솔은 조용한 구석 자리를 찾은 후에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고 가볍게 혀를 내둘렀다.
  • “괜찮네, 사람 겁줄 줄도 알고!”
  • 다른 사람이 없자 소율의 안색도 순식간에 변했고 싱글벙글 웃으며 윤솔을 바라보았다.
  • “오늘 왜 이렇게 평범하게 입고 왔어?”
  • 윤솔은 오늘 검은색 슬립 원피스를 입었고 긴 머리는 뒤로 늘어뜨렸으며 다이아몬드 귀걸이 한 쌍을 제외하고는 다른 액세서리를 착용하지 않았다.
  • 반면 소율은 보라색의 롱스커트를 입었고, 비록 의상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과 목에 착용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양쪽 귀에 한 태슬 이어링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 윤솔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요염한 눈매로 눈을 찡긋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소율을 쳐다봤다.
  • 소율은 소리를 꽥 질렀다.
  • “얼굴이 예쁘면 다야! 오 마이 갓, 솔아, 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나 너한테 반한단 말이야!”
  • 윤솔은 그녀가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그러는 걸 알고 그저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안에 전시장도 있는데 가볼래?”
  • 소율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 윤솔은 소율이 어렸을 때부터 반짝거리는 액세서리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래, 어차피 심심한데 가보지 뭐.”
  • 브랜드 측은 파티장에 전시장을 만들었고, 그 안에는 이번 시즌의 신상품을 진열해 놓았다. 오늘 저녁 파티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으니 작은 전시회라고 할 수도 있었다.
  • 전시장의 액세서리는 모두 일반인이 살 수 없는 시리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가장 저렴한 팔찌도 삼천만 원 정도였다. 몇 억이 넘는 목걸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 소율만큼 액세서리에 관심이 없는 윤솔은 단순히 소율과 함께 있어주려고 온 것이다.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대외적으로 도도한 캐릭터인 소율이 애써 자제하는 모습을 보니 윤솔은 목걸이, 팔찌를 보는 것보다 더 재밌게 느껴졌다.
  • “지우 언니, 이 목걸이 언니한테 너무 잘 어울려요. 언니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요!”
  • 허정아의 목소리는 큰 편은 아니었지만 마침 세 개의 진열장을 사이에 두고 있어 윤솔과 소율은 똑똑히 들었다.
  • 온지우를 보자 액세서리를 볼 기분이 사라져버린 소율은 윤솔을 끌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 “이 목걸이 예뻐?”
  • 소율은 진열장 안의 목걸이를 한 번 보고는 무심한 듯 윤솔에게 한마디 물었다.
  • 윤솔은 진열장을 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 “뭐, 괜찮네.”
  •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면 내가 네 것 하나 챙겨달라고 할게. 국내에는 3개밖에 안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 윤솔은 고개를 숙인 채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싶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 “별로야.”
  • 소율은 콧방귀를 뀌었다.
  • “하긴, 예쁘긴 예쁜데 너를 돋보이게 하기엔 부족해.”
  •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소율의 카리스마는 정말 보통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그 말을 일찍 했더라면 사실 별일이 아니었을 텐데, 하필이면 허정아가 온지우한테 어울린다고 칭찬했고 온지우 본인도 그 목걸이에 마음이 조금 움직였을 때 소율이 갑자기 윤솔을 끌고 와 그 목걸이는 윤솔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엔 부족하다는 말을 한 것이다.
  • 허정아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방금 전에도 소율한테 창피를 당했는데 이번까지 화를 삼킬 수는 없었다.
  • “비싸서 못 사는 건 아니고요?”
  • 소율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냉소를 흘렸다.
  • “제가 2억도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 허정아는 윤솔을 향해 말했지만 대답을 한 건 소율이었다.
  • 소율은 당연히 이 목걸이를 살 능력이 있었다. 이 브랜드 모델료만 해도 20억은 될 텐데 2억이 무슨 대수겠는가.
  • “소율 씨, 정아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
  • “그럼 온지우 씨가 말해보시죠, 그게 아니면 무슨 뜻인데요?”
  • 온지우의 안색은 굳어졌다. 소율이 전혀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자 그녀도 뭐라고 말을 받아칠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