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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눈치 없는 당신

  • 온지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불과 1초 만에 ‘풍덩’ 소리를 내며 수영장 안으로 빠졌다.
  • 윤솔은 수영장에 빠진 온지우를 한 번 보고는 손을 들어 온지우가 잡았던 곳을 털어냈으며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허주원과 눈을 마주친 후 시선을 거두고 파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온지우를 찾아온 허정아는 이 광경을 보고 급히 뛰어나와 손을 올려 윤솔의 앞을 가로막았다.
  • “멈춰요!”
  • “거기 누구 없어요! 빨리 사람 살려요!”
  • 허정아는 온지우를 막아서고는 마치 윤솔이 사람을 죽이기라도 한 듯 소리를 질렀다.
  • 그녀의 외침 소리에 파티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허정아에게 길을 가로막힌 윤솔과 수영장에 빠진 온지우를 번갈아 보았고 머릿속에는 이미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 온지우는 초라하게 친구의 손에 이끌려 수영장에서 기어 나왔고, 고개를 들어 허정아한테 가로막힌 윤솔을 향해 말을 꺼내려다가 마침 허주원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 온지우는 입술을 오므린 채 입을 열지 않았고, 축축한 몸으로 윤솔 앞으로 걸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 “콜록콜록, 윤솔 씨, 난 윤솔 씨한테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죠?”
  • 막 수영장에서 나온 온지우는 조금 초라해 보였지만 초라함에 가련한 표정이 더해지니 초라함보다는 불쌍해 보였다.
  • 구경꾼들은 이미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허정아는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그녀를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 “부인할 생각하지 마요! 방금 윤솔 씨가 지우 언니를 수영장에 밀어 넣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 허정아는 노기등등해서 말했고 허주원을 보고는 뭔가 떠오른 듯했다.
  • “참! 우리 오빠도 바로 통유리창 쪽에 서 있었어요. 나랑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까 오빠도 분명 봤을 거예요!”
  • 허정아의 말에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허주원을 쳐다봤다.
  • 방금 그 장면을 허주원은 똑똑히 보기는 했다.
  • 그러나 이 일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던 그는 지금 허정아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그의 안색은 조금 차가워졌다.
  • “주원아…”
  • 옆에서 친구의 부축을 받던 온지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고, 그 목소리는 마치 수많은 억울함을 겪고 마침내 자신의 편을 들어 줄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너도 봤잖아. 난 정말, 정말 윤솔 씨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
  • 온지우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물을 흘렸다.
  • 이러한 광경에 구경꾼들은 이미 연적의 만남이라고 단정을 지었고, 전처인 윤솔이 아직 지난 감정을 내려놓지 못해 참지 못하고 허주원의 새 애인한테 몹쓸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 허주원을 바라보는 온지우의 눈빛에는 억울하고 하소연하고 싶지만 애써 참고 있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연기에 윤솔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미안, 난 못 봤어.”
  • 허주원은 냉담한 얼굴로 온지우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줄곧 입을 열지 않은 윤솔을 쳐다봤다.
  • 온지우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냉혹하고 무정한 허주원의 대답에 현장 분위기는 아주 어색해졌다.
  • 허정아는 내키지 않았다.
  • “지우 언니, 내가 봤어요! 이 잔인한 여자가 언니를 수영장에 차 버린 걸 내 두 눈으로 직접 봤어요!”
  • 그녀는 윤솔을 가리킨 채 피를 토하며 말했다.
  • 연극은 충분히 보았고, 윤솔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 “온지우 씨는 내가 수영장에 차 버린 게 맞아요.”
  • 이 말을 할 때 윤솔의 두 눈은 반달처럼 구부러졌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 다만 그녀의 얼굴은 정말 예뻤다. 아무리 괘씸한 말을 해도 진짜 마음속으로는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 윤솔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온지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 “온지우 씨, 내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으세요?”
  • 윤솔의 행동에 온지우는 완전히 어리둥절했다. 이런 상황에는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고 잡아떼 거나 한바탕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지 않는가?
  • 왜 윤솔은 자신이 걷어찼다고 바로 인정을 해버린 걸까?
  • 온지우는 물론 허정아도 어안이 벙벙했다.
  • 윤솔은 사람들의 놀란 표정을 흐뭇하게 감상한 후 이내 몸을 숙여 온지우의 귓가에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 “난 나를 둘러싸고 앵앵거리는 파리를 가장 싫어하거든요. 난 분명히 말했어요. 난 이미 허주원과 이혼했으니 서로 상관없는 사이라고요. 당신 목표는 내가 아니라 허주원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눈치 없는 온지우 씨가 자꾸 나를 건드렸잖아요.”
  • “하, 그럼 내가 어떻게 나와도 내 탓은 하지 말아야죠.”
  • 윤솔은 비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고 얼굴의 웃음기는 이미 완전히 사라졌으며 차가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 그녀의 목소리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윤솔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 말을 마친 후, 윤솔은 허주원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 허정아는 윤솔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기세에 눌려 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그녀의 요염한 그림자는 점점 멀어져 갔고, 허주원의 미간도 점점 더 깊게 패었다.
  • 방금 전의 윤솔은 그가 알던 윤솔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았다.
  • 그녀는 그를 많이 사랑하지 않던가?
  • 이혼한 지 겨우 석 달밖에 안 됐는데 그녀는 어떻게 이토록 냉정하고 선명하게 두 사람 사이에 경계선을 그을 수 있단 말인가?
  • 아니면, 그녀가 전에 얘기했던 사랑이 모두 가식이고 거짓이었단 말인가?
  • 심현준은 가볍게 혀를 내두르고는 온지우를 한 번 쳐다본 후 의미심장하게 허주원을 향해 말했다.
  • “주원아, 갑자기 네 전처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 허주원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 “왜, 너도 국민 남동생이랑 여자를 뺏어보려고?”
  • 심현준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 “난 가문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몸매도 다 괜찮은 편이잖아.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허주원의 안색은 눈에 띄게 더 나빠졌다.
  • 심현준은 웃음을 터뜨렸고, 눈치껏 웃음을 거둬들이고는 어깨를 살짝 들어 허주원을 툭 쳤다.
  • “왜, 이혼한 거 후회돼?”
  • 허주원은 심현준을 차갑게 쳐다봤다.
  • “널 알 게 된 걸 후회해.”
  • 허튼소리만 한다.
  • 말을 마친 허주원은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 온지우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무슨 핑계로 그를 머물게 할지 몰랐다.
  • 방금 전 허주원이 보지 못했다고 했을 때 구경꾼들은 이미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나중에 윤솔이 그녀의 체면을 구기는 말을 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 지금 분위기는 이미 충분히 난감했고, 만약 입을 열어 허주원을 붙잡았는데도 그가 가버린다면 그녀는 완전히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될 것이다.
  • “조금 춥네, 옷 갈아입으러 들어가야겠다!”
  • 온지우는 미소를 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친구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