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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그날 밤에 머리에 물 많이 들어간 거 아니에요?

  • 소율이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침 윤솔도 집에 도착했다.
  • “솔아, 너 진짜 대단하다! 아하하하, 온지우가 똥 씹은 표정을 짓던 것만 생각하면 속이 다 후련해! 어휴, 넌 모르지? 현장에서 동영상을 찍은 사람이 있는데 너 말할 때 표정 진짜 쩔어! 내가 돈으로 실검 사줄까?”
  • 소율은 그녀에게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솔이 너 꽤나 오랫동안 얼굴 안 드러냈지? 이제 네가 얼마나 해피하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때야!”
  • 윤솔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머리가 아픈 듯 말했다.
  • “실검 함부로 사지 마.”
  • 그녀는 덤덤한 말투로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는 소율을 진정시켰다.
  • “알겠어.”
  • “나 좀 피곤해. 씻으러 가야 돼서 이만 끊을게.”
  • “아아, 잘 자, 나의 빅 베이비!”
  • 윤솔은 빙긋 웃었다.
  • “잘 자.”
  • 통화를 마친 윤솔은 핸드폰을 옆에 던져두었다. 막 어두워진 화면이 또다시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밝아졌다.
  •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소율이 오늘 다른 사람이 촬영했다던 그 영상을 전송한 것이었다.
  • 볼 마음이 없었던 윤솔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소율이 문자 한 통을 더 보내왔다.
  • “내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허주원 그 개자식이 계속 너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 그녀는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소파에 핸드폰을 던졌다.
  •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씻기나 하자!
  • 밤.
  • 허주원은 핸드폰 영상 속 윤솔을 바라보았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보니 예전처럼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 이혼한 윤솔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한 푼도 달라는 말없이 그와 이혼 도장을 찍었다. 이혼 후, 윤솔은 그를 사랑한 적 없는 사람처럼 깔끔하게 행동했다. 예전에는 임청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못 들던 사람이 지금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온지우를 물에 빠뜨렸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 그녀는 인정한 것도 모자라 무척 건방지게 인정했다.
  • 허주원은 짜증이 난 듯 손에 든 담배를 비벼 껐다. 자신이 왜 한밤중에 잠도 안 자고 여기에 앉아 핸드폰으로 자신의 전 와이프를 보고 있는지 그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 그날 영상은 순식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졌다. 사람들이 윤솔에 대한 평가가 서로 엇갈렸다.
  • 누군가는 그녀가 잘했다고 말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가 너무 건방지다고 비난했다.
  • 물론, 임청만큼 화가 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임청은 늘 반반한 얼굴 빼고는 특별한 구석이 없는 윤솔 같은 여자는 허주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집안이면 집안, 능력이면 능력,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 결국 허가에 시집온 지 3년 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 그때 돈만 받고 갔으면 얼마나 좋아. 하필이면 헛된 망상을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 윤솔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허주원과 온지우는 진작에 결혼했을 것이다.
  • 온지우는 집안이 좋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건 그녀와 같은 라인에 있었다. 온지우가 시집왔다면 허주원이 밖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겠는가?
  • 임청이 보기에 온지우는 가장 이상적인 며느리상이었다. 그런데 하필 윤솔이 며느리가 되었던 것이다.
  • 가까스로 윤솔과 허주원이 이혼하게 되었는데 윤솔이 갈수록 주제넘게 나서고 있었다. 며칠 전 밤에 윤솔이 임청의 이상적인 며느리를 물에 빠뜨렸다는 소식에 임청은 화가 나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공교롭게도 불과 며칠 사이에 두 무리의 사람들이 또다시 마주쳤다.
  • 윤솔은 소파에 앉아 지루한 듯 잡지를 뒤적거리며 소율이 옷을 피팅하고 나오길 기다렸다.
  • 소율은 쇼핑 중독이었다. 그녀는 매번 쇼핑을 나오면 옷을 피팅 하는 데만 대여섯 시간이 걸렸다. 윤솔은 이미 그 패턴에 익숙해져 버렸고 매장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윤솔의 취향에 따라 여러 잡지를 준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 소율은 꽤나 급이 있는 스타여서 매일 파파라치들이 따라붙었다. 그래서 쇼핑을 나와도 잘 아는 브랜드 매장 몇 군데만 돌아다녔다.
  • 그녀들이 들어오자마자 매장은 문을 닫았고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팻말을 걸었다.
  • 그러니 이치대로라면 들어오는 사람이 없겠지만 일부러 들어오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 온지우는 허주원에게는 어떻게 손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 당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서 소율과 윤솔이 오늘 쇼핑을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임청과 약속을 잡았다. 임청의 손을 빌려 윤솔을 난처하게 하려는 꿍꿍이였다.
  • 그녀는 일부러 임청을 이끌고 아래층을 둘러보고 올라왔다. 그러고는 마치 윤솔이 여기 있는 걸 우연히 발견한 척했다.
  • 역시나, 임청은 윤솔이 이토록 한가로이 지내는 것을 보고 심사가 뒤틀려 매장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 임청은 뭐니 뭐니 해도 허주원의 친엄마였다. 직원도 처음에는 그녀가 못 들어오게 막았지만 임청이 기어코 들어오려고 하자 감히 말리지 못했다.
  • 윤솔이 막 대추차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윤솔, 너 재주도 좋다. 우리 허가의 돈을 여기서 흥청망청 쓰다니!”
  • 임청의 목소리에 윤솔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자 임청이 가방을 끼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그녀의 옆에는 며칠 전에 자신에게 차여 수영장에 빠진 물먹은 생쥐가 있었다. 이 라인업을 본 윤솔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 그녀는 임청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온지우를 바라보았다.
  • “온지우 씨, 그날 밤에 머리에 물 많이 들어간 거 아니에요?”
  • 임청을 데리고 와서 날 상대하겠다?
  • 윤솔은 그녀의 행동에 웃음이 났고 실제로도 웃었다.
  • 윤솔이 입술을 오므리고 웃는 것을 본 온지우는 미소를 유지하지 못했다.
  • “윤솔 씨, 어머님이 당신과 얘기하고 계시잖아요.”
  • “그래요?”
  • 윤솔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그제야 임청을 발견한 듯 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 “아, 오랜만이네요, 노부인.”
  • 올해 예순두 살인 임청은 윤솔에게 ‘노부인’이라고 불려도 할 말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을 그 호칭으로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 윤솔이 첫마디부터 ‘노부인’이라고 부르며 속을 긁자 임청은 얼굴이 굳어졌다.
  • “너 정말 갈수록 버릇이 없어지는구나. 어쩐지 주원이가 널 버리더라니!”
  • 윤솔은 덤덤하게 웃었다.
  • “노부인,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제가 이혼 얘기 먼저 꺼냈어요.”
  • 임청은 믿지 않았다.
  • “하, 귀신을 속여.”
  • “솔아, 이 옷 좀…”
  • 막 신상 스커트로 갈아입고 나온 소율은 임청 그 늙은 마녀를 보게 될 줄 몰랐다.
  • 순식간에 안색이 변한 그녀는 몇 걸음만에 윤솔 앞에 다가서서 싸늘한 표정으로 매장의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 “왜 다른 사람이 여기 있죠?”
  • “소율 씨, 정말 죄송합니다. 허 사모님께서 들어오시겠다고 하셔서, 저희도…”
  • 소율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괴롭혔다면 이렇게 세게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윤솔이 괴롭힘을 당했다면 이길 수 없어도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제가 매장을 전세 냈으니 오늘은 절 위해서만 일해 주셔야죠. 이 자리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은 내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