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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사람을 시켜 날 미행했어?

  • 오후 세 시쯤, 온지우가 개인 SNS 계정에 해명글을 올리면서 여론의 분위기가 또 바뀌었다.
  • 온지우가 올린 해명글은 거의 천자에 가까웠지만 사실 표명하려는 입장은 두 가지로 명확했다. 첫째는 그녀와 허주원은 그저 친한 친구 사이일 뿐 허주원과 윤솔의 결혼 생활을 파괴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오늘은 그녀의 그림 전시회 날인데 이미 허주원과 이혼한 윤솔이 왜 전시회장에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 조금만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 해명글이 온지우의 여우짓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객관적으로 사실을 해명한 것 같지만 사실은 여우짓이었다. 특히 두 번째 포인트에서는 이혼을 했는데도 아직 미련이 남은 윤솔이 전 남편이 친구의 그림 전시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참지 못하고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위세를 떨었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
  • 연예계에 오랫동안 몸 담근 소율은 그 해명글을 보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곧바로 윤솔이 알려준 필살기를 썼다.
  • 그러자 불과 30분 만에 여론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양주호는 허겁지겁 이 사태의 전말을 정리하여 허주원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허주원은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대표님, 인터넷에서 대표님과 온지우 씨에 대한 루머가 돌고 있는데 해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무슨 루머?”
  • 허주원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귀찮은 듯 말했다.
  • 양주호도 한순간 진실인지 루머인지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허주원에게 그와 온지우가 다정하게 호텔에 간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 양주호는 손에 든 태블릿을 허주원 앞에 가져갔다.
  • “오늘 아침 온지우 씨의 그림 전시회가 라이브로 진행되었는데, 마침 윤솔 씨도 전시회장에 나타나서 인터넷에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 허주원은 인터넷에서 도는 얘기에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태블릿에 나와 있는 사진이 너무 눈에 띄어서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 그 사진은 허주원이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올 때 온지우가 핸드폰을 들고 앞에서 셀카를 찍은 것이었다. 비록 실질적인 스킨십은 없었지만 이런 사진은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에는 충분했다.
  • 그날 허주원은 지방 출장을 갔었고 식사 자리에서 온지우를 만났다. 온지우는 술을 많이 마셨고 온 가와의 친분을 생각해 허주원은 양주호한테 온지우를 방에 데려다주라고 했다. 그러나 온지우는 문을 나서자마자 토했고, 구토물은 그의 몸에 묻어버렸다.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진 그는 양주호에게 빨리 그녀를 데리고 가라고 했고 자신은 방으로 가서 샤워를 했다.
  • 그러나 허주원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온지우는 가운을 입은 채로 그의 방에 와 있었다. 그녀는 사과하러 왔다고 했지만 그는 몇 마디 듣지도 않고 신경질적으로 그녀를 내보냈다.
  • “이 사진 출처가 어디야?”
  • 허주원은 사진을 옆으로 넘기며 댓글을 확인한 후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
  • 양주호는 왠지 모르게 오한을 느꼈다.
  •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 “왜 갑자기 나랑 관련된 기사가 이렇게 많이 나고 있는 거야?”
  • 기사에는 거의 욕뿐이었다.
  • 양주호는 손을 올려 이마의 땀을 훔쳤다.
  • “저희가 알아본 결과 언론사들 모두 윤율 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한 원고를 받았답니다.”
  • “탁!”
  • 허주원은 갑자기 손에 든 태블릿을 책상 위에 엎어놓더니 무서울 정도로 음침한 검은 눈동자로 말했다.
  • “윤율 책임자한테 연락해서 지금 당장 철회하라고 해!”
  • “네, 네, 대표님,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 양주호는 윤율 엔터테인먼트 책임자의 번호를 찾기 위해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허주원이 뭘 보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방금 전 그의 안색은 마치 사람을 삼켜 버릴 것만 같았고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 사무실 안, 서늘한 분위기를 내뿜던 허주원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손을 뻗어 양주호의 내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윤율 책임자한테 연락할 필요 없어!”
  •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허주원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갔고 3년 동안 한 번도 걸지 않았던 전처의 번호를 눌렀다.
  • 허주원의 번호가 이미 마음에 새겨진 윤솔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임에도 한눈에 허주원한테서 걸려온 전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핸드폰은 책상 위에서 계속 울려댔지만 그녀는 받을 생각이 없었고 그저 쳐다만 볼 뿐이었다.
  • 이상하다고 생각한 소율은 윤솔을 한 번 쳐다보았고,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듯 포도를 먹고 있는 그녀를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 “허주원 씨 전화야?”
  • 윤솔은 포도 껍질을 뱉고 대답했다.
  • “응.”
  • “안, 안 받아?”
  • 허주원은 성질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 사람이다.
  • 소율의 이런 모습에 윤솔은 덤덤하게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 “이젠 무섭나 봐?”
  • 소율이 인정할 리 없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쓰레기 같은 남자가 무슨 염치로 너한테 전화를 하냐고 생각하던 중이었어. 마침 잘됐네, 이 기회에 내가 아주 혼구녕을 내줄 거야!”
  • 소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솔은 갑자기 통화 수락 버튼을 누르고는 핸드폰을 소율에게 건넸다.
  • “자, 욕해 봐.”
  • “… 이러지 마, 솔아.”
  • 윤솔은 웃으며 그제야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 “허 대표님이 어쩐 일이시죠?”
  • 앞서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한 허주원은 그녀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사진 네가 올린 거야?”
  • “뭐 그런 셈이지.”
  • 윤솔은 부인하지 않았다.
  • “사람을 시켜 날 미행했어?”
  • 이게 사람이 할 소리인가?
  • “허주원, 너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 윤솔은 비아냥거리며 말하고는 이내 통화를 끊어버렸다.
  • 옆에서 지켜보던 소율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 “멋있다!”
  • 윤솔은 웃고 싶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 “됐어, 일이 없으면 임승민한테 가 봐.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은 하지 마, 재미없어.”
  • 쌍방이 모두 손해를 보는 일이었다.
  • 윤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소율은 왠지 죄책감을 느꼈다.
  • “허주원이 뭐래?”
  • “내가 자기한테 사람을 붙여 미행을 했냐고 따지던데.”
  • “어디서 온 자신감이야?”
  • 윤솔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 “내가 그렇게 만들었나 봐.”
  • 예전에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모를 때, 허주원은 그에게 바친 그녀의 마음을 한껏 짓밟았다. 이혼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예전처럼 만만하게 생각하는 듯싶었고 결국 이 모든 건 그녀가 그의 체면을 세워줌으로써 생긴 결과이다.
  • 소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 “울지 마, 울지 마, 내 넓은 가슴에 와서 위로받아!”
  • 윤솔은 어이가 없어 단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 “빨리 꺼져, 이변이 없는 한 허주원의 비서는 아마 벌써 사람들을 데리고 윤율로 쳐들어 갔을 거야.”
  • 소율이 막 무슨 말을 하려던 그때, 폰이 울렸고 발신자가 장경아인 것을 확인한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 “경아 언니, 무슨 일이야?”
  • “허주원 씨의 비서가 찾아와서 널 만나겠대. 너 빨리 회사로 들어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법정에서 만나 게 될 거래.”
  • “… 지금 바로 갈게!”
  • 소율은 이 상황을 예측한 윤솔을 보더니 말했다.
  • “너 신내림이라도 받았어? 네 전남편 비서가 지금 사람을 데리고 회사에 찾아왔대,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 윤솔은 손을 흔들었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소율의 아이큐가 걱정이 되었는지 입을 열었다.
  • “만약 양주호가 너한테 겁주면 사진은 온지우가 나한테 보낸 거라고 말해.”
  • 소율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대답했다.
  • “알았어, 난 먼저 허주원의 비서를 상대하러 갈 테니까 너 혼자 슬퍼하면 안 돼!”
  • 윤솔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소율은 멋쩍게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