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의례적으로 미대에 합격한 진민준은 열아홉 살에 「해돋이」로 프라다 어워드 3위를 수상했고 이후 해외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진민준 이후 몇 년 동안 프라다 어워드에 선정된 국내 아티스트는 아무도 없었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지만 진민준은 오직 취미로만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스무 살 때 소율에게 스카우트되어 배우로 정식 데뷔를 했고 지난해 대학을 졸업할 막바지에 또 다른 그림 한 점이 프라다 어워드에 선정되어 연예계와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따라서 방금 전 온지우의 그림에 대한 진민준의 평가는 정곡을 찌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온지우는 그동안 끈질기게 진민준에게 러브콜을 보냈었다.
진민준의 인기를 빌려 자신의 명성을 높일 계획이었지만 진민준이 거절한 탓에 온지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외부에서는 온지우와의 콜라보를 거절한 이유가 진민준의 꽉 찬 일정 때문일 것이라 추측했지만 진민준이 직접 온지우의 그림이 별로라고 평가하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 특히 진민준의 팬들은 들끓어 올랐다.
윤솔은 오늘의 결과에 아주 흡족했다. 라이브 방송에 뜬 댓글들을 훑어보던 윤솔은 만족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어느새 마세라티가 멈춰 선 것인지 진민준이 고개를 기울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솔은 눈썹을 치켜뜬 채 안전벨트를 풀며 나지막이 한탄했다.
“난 참 나쁜 여자야.”
그 말에 진민준은 씩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난 나쁜 여자가 좋아.”
“놀리지 마.”
차에서 내린 윤솔은 진민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 오늘 임무를 끝냈으니까 얼른 돌아가서 보고해!”
“밥 한 끼 정도는 사줘야 되는 거 아냐?”
윤솔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꾸했다.
“난 요리에 젬병이야. 안녕. 잘 가.”
그러고는 쾅 하고 현관문을 닫아 버렸다.
닫힌 현관문을 한참 바라보던 진민준은 이내 차에 시동을 걸고 별장을 떠났다.
온지우는 전시회에 허주원을 특별 게스트로 초대하고 언론에 연락해 현장을 생중계할 것을 부탁했다.
원래는 댓글 알바를 고용해 허주원과의 케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여론몰이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면 윤솔에게 물을 먹일 수도 있었고 나중에 허주원과 결혼하게 되었을 때 여우 같은 년이라고 욕먹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타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때 가서 언론을 매수해 윤솔이 얼마나 자기 분수를 모르는 여자인지 세상에 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솔과 진민준의 등장으로 온지우의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고 그녀의 그림에 대한 진민준의 평가 때문에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온지우는 인터넷에서 뭇매를 맞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윤솔의 외모를 찬양하는 무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허주원과 나란히 서 있으니 그림같이 어울린다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라이브 방송에서 전남편 허주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윤솔과 달리 허주원은 내내 윤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며 지나간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가 너무 쿨하고 멋지다고 말하기도 했다.
덕분에 윤솔에게 제대로 물 먹일 계획이었던 온지우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진민준의 논평 사건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배후에 추동자가 있는 것임이 분명했다.
네티즌들의 추측이 난무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막장 삼각관계 드라마 한 편을 써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물론 네티즌들이 뇌피셜한 삼각관계에서 윤솔은 피해자였고 허주원과 온지우는 개 같은 연놈들이었다.
이제 세 사람의 기사 아래에는 온통 허주원이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잡은 윤솔은 그 증거를 빌미로 거액의 보상금을 받고 쿨하게 퇴장해 전 남편과 내연녀의 사랑을 이뤄준 게 아니냐는 댓글들이 빗발쳤다.
물론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뒤에서 추동한 조종자는 다름 아닌 소율이었다.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검색어들을 보며 윤솔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너무한 거 아냐?”
그러자 소파에 누워 있던 소율이 발딱 몸을 일으키고서 반박했다.
“뭐가 너무해? 지난 3 년 동안 허주원이 널 몇 번 만났고 온지우를 몇 번 만났는데?”
그 말에 윤솔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떠올리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지난 3 년 동안 윤솔이 허주원을 만난 횟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으려면 꼽을 수도 있었다. 그중 3 번은 허 씨 가문 가족 모임에서였다.
그에 반해 허정아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보고’를 했던 허주원의 행적에 따르면, 허주원은 18 번의 출장을 간 것 중에 8 번이나 온지우와 은밀한 만남을 가졌었다.
온 씨 가문 어른들의 생신 연회나 회사 창립 기념일 같은 날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윤솔의 모습에 소율은 자신이 정곡을 찔렀음을 눈치챘다.
“게다가 이혼하기 전에도 호텔에서 단둘이 오붓하게 하룻밤을 보냈잖아. 넌 이미 초탈했을진 몰라도 난 그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인터넷에서 욕을 먹고 있는 사람은 네가 되었을 거야. 온지우 그 불여시가 널 가만히 내버려 두었을 것 같아? 적에게 자비를 베풀면 네가 당해!”
그래도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윤솔의 모습에 소율은 짜증이 치밀었다.
“솔아,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아직도 죄책감이 들어? 내 막타가 깊게 들어가지 못한 거야, 아니면 애초에 상처가 그만큼 크지 않았던 거야?”
그제야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린 윤솔은 눈썹을 씰룩거리며 소율을 바라보았다.
“그 연놈들이 방 잡은 사진을 찾고 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윤솔은 마침 알림음이 울리는 소율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너한테 보냈어. 절묘한 타이밍에 사람을 시켜 뿌려.”
“잘했어!”
사진을 확인한 소율의 눈동자가 화르르 불타올랐다.
“이거 언제야?”
“7개월 전쯤이었을걸.”
사진은 그다지 야하진 않았지만 사진 속의 온지우와 허주원 두 사람 모두 가운 차림이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전부 온지우가 직접 윤솔에게 보낸 것이다.
윤솔은 허주원에게 최소한의 양심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고작 내연녀 주제에 그녀 앞에서 기고만장했던 온지우를 떠올리자 확실히 이대로 넘어가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내연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을 이루게 해주지.
소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당장 사람을 준비시킬게! 허주원 이 개자식, 정말 바람을 피웠어! 똥 묻은 돈은 역겨우니까 줍지 마. 너, 허주원과의 이혼을 후회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 내가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그딴 걸 왜 주워?”
그 말에 소율은 대뜸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궁해서 그런다, 됐냐? 돈이 궁한 친구한테 좀 베풀어 줄 생각은 없어?”
윤솔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소율을 샐쭉 흘겨보았다.
“네 옷방 안에 있는 가방이랑 구두를 팔면 돈이 궁하지 않을 거야.”
“이 나쁜 년!”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숙인 윤솔은 눈매를 접으며 요염하게 웃었다.
“응, 난 나쁜 년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빠지지 마. 우린 이루어질 수 없어.”
“…”
윤솔의 눈웃음에 소율은 심장이 덜컥했다. 어쩐지 윤솔이 이혼한 뒤로 더욱 매력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