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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주변 사람 관리 잘 해

  • “소율 씨, 말이 심하네요! 내 아들이 당신 뒤에 있는 사람이랑 말 한마디만 하면 내일부터 연예계에서 아웃될 텐데, 어디 한번 해볼래요?”
  • 그 말을 들은 소율은 웃음이 났다.
  • “마귀할멈 같으니. 얼마든지 말해요. 나 소율이 내일 연예계에서 입지가 흔들린다면 당신네 허가에 가서 절이라도 할 테니까!”
  • 임청은 화가 나서 안색이 새파래졌다.
  • “당신, 당신,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 “사람 봐가면서 예의 갖추라고 가정 교육을 받았어요. 당신 같은 마귀할멈은 인간이 아니니까 좋은 말로 대할 필요가 없죠.”
  • 몇 년 동안 임청은 윤솔을 억압하는 데 익숙해졌고 온지우도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기만 해서 임청은 다들 그녀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오늘 소율이라는 싸움닭을 만난 임청은 화가 치밀어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했다.
  • 그녀는 소율과의 말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윤솔도 예전에 그녀에게 대들었지만 이렇게 건방지지는 않았다.
  • 그래서 임청은 소파에 앉아있는 윤솔에게 시선을 돌렸다.
  • “넌 이런 애랑 친구 하니? 남자에 기대서 신분상승하고! 교양도 없고 성품도 개차반이고! 어쩐지 친하게 지내더라니. 끼리끼리여서 그랬구나.”
  • 윤솔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그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임청을 보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 “저희가 아무리 나빠도 그때 노부인이 아들과 남편을 버린 쾌거에 비할 수 있을까요!”
  • 그해, 임청이 돈을 들고 내연남과 도망간 일은 서울 전체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히 그 일을 꺼내는 사람이 없어서 임청은 그 일이 없었던 일이 되었다고 눈 가리고 아웅했다.
  • 그런데 오늘 윤솔이 갑자기 그 일을 꺼낸 것이다. 임청을 발가벗긴 채 공격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 임청은 젊었을 때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다만 재벌가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고 여태껏 척한 것뿐이다.
  • 윤솔이 그녀의 과거를 들추자 우아한 기품 따위는 챙길 겨를이 없어진 임청은 옆에 있는 철제 옷걸이를 윤솔에게 던졌다.
  • “이 천박한 것, 입 닥쳐!”
  • 윤솔은 옆으로 비켜서며 옷걸이를 피했다. 깜짝 놀란 소율은 서둘러 윤솔의 앞을 막아섰다.
  • “이 마귀할멈이 감히 손찌검을 해?!”
  • 윤솔은 소율의 손을 잡아끌더니 온지우를 힐끔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허주원의 비서에게 연락했다.
  • 막 회의실에서 나온 양주호는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게 될 줄 몰랐다.
  • 발신자명을 보고 깜짝 놀란 그는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윤솔 씨?”
  • “네, 저예요. 허주원한테 센트럴 백화점 4층 A 브랜드 매장에 와서 민폐 어르신과 불여우 같은 새 애인을 데려가라고 전해 주세요. 30분 드립니다. 늦으면 무슨 일이 생기든 절 탓하지 마세요!”
  • “윤솔 씨, 이게 무슨-”
  • 양주호가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묻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의 윤솔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 그는 고개를 숙인 채 10초도 안 되는 통화 기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그는 화를 내는 윤솔을 처음 보았다. 그가 기억하는 윤솔은 부드럽고 점잖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허주원과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는 비서로서 일하면서 윤솔이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 허가의 민폐 어르신이라면 임청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 허주원의 불여우 같은 새 애인이라면 최근 허주원과의 결친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온지우일 것이다.
  • 순간 무언가 깨달은 양주호는 서둘러 허주원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 “허 대표님.”
  • “말해.”
  • 서류에 사인하고 있는 허주원은 싸늘한 표정이었다. 양주호는 이를 악물었다.
  • “방금 윤솔 씨가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 서류를 뒤적이던 손이 순간 멈췄다. 허주원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 “오, 뭐라고 했는데?”
  • 설마 이혼한 걸 후회한다는 건가?
  • 하, 후회해도 소용없지. 난 그녀 같은 여자랑 재혼할 수 없어!
  • 양주호는 허주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윤솔의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어서 다른 식으로 말했다.
  • “오늘 사모님과 온지우 씨께서 쇼핑을 나가셨는데 윤솔 씨 그들을 우연히 만난 것 같습니다. 서로 마찰이 좀 생긴 것 같은데 가보셔야지 않을까요?”
  • 허주원의 머릿속에 ‘퍽’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윤솔에게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따귀였지만 진짜 따귀보다 그를 더 딱하게 만들었다.
  •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싸늘하게 양주호를 쏘아보았다.
  • “뭐 좋은 구경이라고 가?”
  • 양주호는 그대로 굳어졌다. 허주원의 시선에 두피가 다 저려오는 느낌이었다.
  • 하지만 방금 전 윤솔의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윤솔에 대해 많이 들었다.
  • 양주호는 전 사모님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느꼈다.
  • “허 대표님, 윤솔 씨가 많이 화나신 것 같았습니다. 대, 대표님께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허주원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 “윤솔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해.”
  • 양주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저, 저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 “말해!”
  • “윤솔 씨가 ‘허주원한테 센트럴 백화점 4층 A 브랜드 매장에 와서 민폐 어르신과 불여우 같은 새 애인을 데려가라고 전해 주세요. 30분 드립니다. 늦으면 무슨 일이 생기든 절 탓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양주호는 정말 자격 있는 비서였다. 이렇게 복잡하고 발음하기 어려운 말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복창할 수 있으니 말이다.
  • 그의 말이 끝나자 허주원의 안색은 무서움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로 싸늘해졌다.
  • 허주원은 관자놀이에 경련이 이는 것 같았다. 윤솔의 말 마디마디가 가시처럼 그의 몸을 찔러 괴로웠다.
  • 그는 늘 여자들의 일에 끼어들기를 싫어했지만 오늘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 “차 준비시켜!”
  • “네, 허 대표님!”
  • 안도의 한숨을 내쉰 양주호는 허주원이 말을 바꿀까 봐 서둘러 차를 준비시켰다.
  • 한편, 마침내 소율을 진정시킨 윤솔은 온지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온지우 씨는 정말 한가하군요. 이렇게 말썽을 피우는 걸 좋아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드리죠.”
  •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허주원의 비서한테 연락해 허주원을 데려오라고 했어요. 노부인께서 제가 이혼할 때 허가의 돈을 위자료로 받았다고 의심하고 계시잖아요? 그럼 아드님 입으로 제가 당신 가문의 돈을 달라고 했는지 직접 들으세요!”
  • “그리고 온지우 씨, 허주원을 찾지는 못하고 날 찾아왔으니 오늘 그 문제도 같이 해결해 드리죠!”
  • 임청은 화가 나서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소율이 던진 옷에 얼굴을 맞은 그녀는 온지우가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진작에 소율과 싸웠을 것이다.
  • 윤솔이 허주원을 언급하자 임청은 전보다 훨씬 침착해졌다. 그녀는 매무새를 다듬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 “마침 잘 됐네.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 좋을 거야!”
  • 매장 직원은 두 무리의 사람들이 마침내 진정한 것을 보고 서둘러 그들을 분리시켜 다독였다.
  • 센트럴 백화점은 비플라이 컴퍼니와 멀지 않아서 허주원은 금방 도착했다.
  • 그는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소율의 옆에 앉아있는 윤솔을 보았다.
  • 그녀는 수수한 색상의 프린세스 롱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있는데도 아리따운 몸매가 눈에 띄었다.
  • 그를 본 윤솔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싸늘한 눈초리로 그에게 다가섰다.
  • “허 대표님이 바쁜 건 알겠는데 우리 이혼의 세부사항에 대해서 가족들한테 설명은 해야지. 당신네 허가 사람들이 비루먹은 개처럼 날 귀찮게 굴지 않도록. 밥맛 떨어지게.”
  • “그리고, 주변 사람 관리 잘 좀 해.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데리러 오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 끝내지 않을 테니까.”
  • 말을 마친 윤솔은 소율을 돌아보았다. 잠깐 멈칫한 소율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가방을 들고 쫓아갔다.
  •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는 허주원의 낯빛이 새파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