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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가짜 영상

  • 고민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 부태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만을 토로했다.
  • “민희가 아프신 할머니가 걱정된다고 해서 오늘 만나 뵈러 온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민희예요. 그러니까 화를 내실 거면 저한테 내세요.”
  • 노부인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고민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선 부태정이 노부인을 향해 말했다.
  •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쉬세요. 저희는 그만 가볼게요.”
  • 그렇게 두 사람은 온 지 10분도 안 돼서 자리를 떴다.
  •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가정부가 한숨을 쉬며 노부인을 달랬다.
  • “노부인, 왜 그러셨어요? 다른 사람 때문에 도련님한테까지 화내실 필요는 없었잖아요.”
  • 노부인은 손에 낀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탄식했다.
  • “고민희는 만만한 여자애가 아니야. 태정이가 그 여자애를 위해 나랑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잖아.”
  • 가정부가 노부인에게 담요를 덮어 주며 위로했다.
  • “그럴 리가요. 도련님처럼 효심이 지극하신 분이 또 어디 있다고요.”
  • 노부인은 담담한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었다.
  • 천성 그룹 주주총회에 참석한 몇몇 고위급 인사들을 제외하고 현영이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영은 결정권을 손에 넣은 뒤, 바로 최한결과 계약했다.
  • 최한결은 업계의 다크호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록 지금은 부태정과 견줄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절대 뒤처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 그리고 신변에 이수와 유준수의 도움까지 있었기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 하지만 유준수가 우려했던 일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 파란색 아우디가 고민희의 차를 들이받는 화면이 검색어 1위를 장식했고 현영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 고민희는 명실상부 피해자가 되었고 부태정은 현영이라는 여자의 손에 놀아난 불쌍한 남자가 되었다.
  • 여론은 거세게 휘몰아쳤고 이렇게 가다가는 형사까지 출동할 마당이었다.
  • 천성 그룹 이사회는 곧장 현영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회사 이익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 유준수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 “늙은 여우들 같으니라고, 현영이가 주주라는 사실이 세상에 공개되지도 않았는데 회사에 피해는 무슨. 현영이한테 물러나라고 시위하는 거지.”
  • 이수가 기사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전문가라면 이게 편집을 거친 영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기사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쏟아져서 대중들도 이걸 사실이라고 믿는 모양이네요.”
  • 유준수는 부태정이 뻔뻔하게 가짜 영상을 인터넷에 배포한 사실을 떠올리며 비웃듯 말했다.
  • “현영아, 너 사람 보는 눈이 너무 없었네. 어떻게 저런 미친놈을 좋아할 수가 있어? 난 오히려 부태정이랑 고민희 그 가식적인 여자가 더 어울린다고 봐.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잖아.”
  • 현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 자신의 말에 현영이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한 유준수가 어색한 표정으로 코를 만지며 말했다.
  • “흠흠… 널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그냥 네가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번 사건은 우리도 사전에 준비를 했고 6년 전 진짜 영상도 찾았잖아.”
  • 현영은 고개를 들고 이수의 걱정 가득한 시선을 마주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 “부태정은 고민희를 위해 나랑 이혼까지 한 사람이야. 그러니 그 사람한테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 난 놀랍지도 않아.”
  • 유준수가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 “어차피 영상도 우리 쪽에 있으니까 지금 당장 정정 기사라도 내보낼까? 그러면 상대도 많이 당황할 거야!”
  • “잠깐.”
  • 현영은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다는 듯 유준수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 “내일이 1일이니까 고씨 가문에서 고민희를 위한 파티가 열릴 거야. 우리도 가서 축하해 줘야지?”
  • “너도 가려고?”
  • 그녀가 활짝 웃었다.
  • “푸짐한 선물도 준비했는데 당연히 가야지.”
  • 유준수와 이수도 뭔가 떠오른 듯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