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정도 꽤 알아주는 회사의 대표이고 부씨 가문도 명망 높은 집안인데 왜 왕숙희에게서는 교양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까?
현영이 입꼬리를 비틀며 대꾸했다.
“죄송하지만 말은 똑바로 하세요. 저랑 댁 아드님은 이미 이혼했고요, 저 부씨 집안 돈 한 푼도 받은 적 없어요.”
“어디서 거짓말이야!”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왕숙희가 아니었다. 그는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간다는 듯,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그럼 일전 한 푼 없는 네가 무슨 수로 이런 고급 샵에 드나들겠어? 다 우리 아들 돈이지. 지금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다고 해도 나 절대 너 같은 년 용서 못 해!”
무릎 꿇고 사과?
현영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한 번도 정상이었던 적이 없었지.’
더는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현영은 뒤돌아서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를 곱게 보내줄 왕숙희가 아니었다.
“어딜 도망가?!”
왕숙희가 다짜고짜 현영의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미 그녀를 경계하고 있던 유준수는 날렵하게 왕숙희를 밀친 뒤, 현영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유준수가 일부러 힘주어 밀쳤기에 왕숙희는 중심을 못 잡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아이고, 아파!”
그녀는 고개를 들고 유준수를 힘껏 쏘아보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대성통곡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내가 이 나이에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맞다니! 아이고 나 죽네!!!”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결국 샵 매니저까지 출동했다.
왕숙희는 이때다 싶어 유준수를 가리키며 매니저를 향해 말했다.
“저 어린 놈이 날 쳤어요. 아이고 허리야…. 나 죽네….”
왕숙희는 샵 VIP 고객이었기에 매니저도 그녀에게 공손히 대했다.
매니저는 차가운 시선이 현영을 바라보다가 맨 마지막에 이수에게 닿았다. 순간 그의 눈빛이 흠칫 떨렸다.
“대….”
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수가 그의 말을 잘랐다.
“저 여자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CCTV를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매니저의 영리한 눈동자가 반짝 빛나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지금 CCTV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이수를 향한 현영의 궁금증이 더 깊어졌다.
‘이 아이가 정말 시골에서 올라온 빈곤 학생 이수가 맞는 걸까?’
다시 돌아온 매니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왕숙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줌마, 그냥 조용히 가시죠. 안 그러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왕숙희가 놀라서 물었다.
“경찰은 왜요?”
매니저가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CCTV를 확인해 보니 아줌마가 먼저 손을 댔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하실 수 있죠? 계속 소란을 피우시면 당연히 경찰을 불러야죠. 형사들이 그 영상을 확인하면 누구 편을 들 것 같아요?”
왕숙희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무슨 근거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그 모습에 유준수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이도 있으신 분이 왜 이렇게 뻔뻔해요? 우리 현영이가 그 집에 있을 때 그렇게 괴롭히더니, 이제 그 쓰레기 같은 놈이랑 이혼까지 했는데 왜 아직도 현영이 괴롭히세요? 나이 든 여자라 내가 못 칠 것 같아요? 계속 나 자극하면 나도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고!”
유준수의 으름장에 겁에 질린 왕숙희는 몸을 흠칫 떨더니 이를 악물고 현장을 떠났다.
유준수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만 강한 파렴치한 여편네! 벌받을 거야!”
이때, 마침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은 유준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현영의 눈치를 살폈다.
현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나랑 연관된 일이야?”
“내 친구가 그러는데 장 비서가 6년 전 고민희 교통사고 CCTV를 찾아다닌대!”
그 말을 들은 현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유준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CCTV요?”
유준수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 고민희 그 악랄한 여자 때문이겠지. 의식을 되찾고 우리 현영이랑 부태정이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서 엄청난 질투를 느꼈을 거야. 그래서 복수심에 부태정한테 현영이가 일부러 자신을 쳤다고 거짓말했고. 부태정 그 멍청한 놈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거야. 정말 어이없지 않아?”
잠시 생각하던 이수가 다시 물었다.
“너무 오래된 영상이고, 정말 있다고 해도 부태정이 그걸 찾아서 뭘 하려는 걸까요?”
“그러네.”
잠시 생각하던 유준수가 뭔가 생각난 듯, 무릎을 치며 말했다.
“고민희 그 양심도 없는 년이 그런 거짓말을 할 정도라면 가짜 영상을 만들어서 너한테 무슨 짓 하려는 거 아닐까?”
현영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부태정이랑 이혼하고 각자 갈 길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네. 그쪽에서 날 곱게 놔주지 않아.”
‘고민희, 네 아빠라는 사람은 우리 아빠한테 누명을 씌우더니 넌 깨어나자마자 나한테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지. 참 대단한 부녀야!’
하지만 이번에는 만만하게 당해 줄 현영이 아니었다.
현영이 찬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민희가 이대로 조용히 산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지만, 또 나를 해치려 하면 나도 가만히 안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