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정아, 민희는 요즘 잘 있어? 최근에 시간이 없어서 보러 가지도 못했는데 날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부태정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민희 요즘 약도 잘 먹고 많이 좋아졌어요. 저희 엄마가 24시간 돌봐주시고 계세요.”
“그래, 참 잘됐구나.”
잠시 머뭇거리던 고준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들은 소문이 있는데 6년 전 사고랑 네 전처가 연관이 있다면서? 어제 민희 엄마가 민희 만나면서 물었는데 민희가 대답을 피해서 말이야. 태정아, 너 혹시 좀 아는 거 없어?”
남자는 흠칫 놀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태정아, 듣고 있어?”
잠시 후, 부태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 사고… 확실히 현영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고준성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민희는 우리 집안에서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야. 6년 전 그 사고 이후 나와 민희 엄마는 거의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 민희가 깨어나고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너였으니 얼마나 너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네 전처와 민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라 믿는다.”
부태정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네.”
고준성이 만족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태정아, 나는 네가 우리 민희 짝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단다.”
전화를 끊은 뒤, 부태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가 장 비서를 불렀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한편 현영과 이수, 그리고 유준수는 어깨 나란히 천성 그룹 본사에서 나왔다.
유준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수의 어깨를 잡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아까 정말 볼만 했어. 그 영감들 표정 봤어? 아주 잿빛이 됐더라고. 역시 우리 이수라니까.”
현영도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6년 전 자금 절도 사건 때문에 당연히 나를 안 좋게 봤을 거야. 그러니 내가 천성 그룹 주주가 된 사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테고. 그런데 이수의 아이디어 때문에 할 말이 없어진 거지.”
현영은 줄곧 이수에게 잘나가는 모델인 그가 어떻게 자신의 외할아버지와 아는 사이인지, 어떻게 천성 그룹 내부 사정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에겐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다. 굳이 캐묻지 않은 것도 일종의 존중이었다.
외조부가 힘들게 손에 넣은 51퍼센트의 지분, 그녀는 이 지분으로 천성 그룹에서 자리를 굳힐 것이며 6년 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것이다.
고씨 가문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현영은 고개를 살짝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가자.’
“현영아, 이제 너도 고귀한 신분을 가졌으니 앞으로 옷차림도 신경 써야 해. 다른 사람들한테 초라하게 보이면 안 되잖아. 가자, 우리 나가서 옷도 좀 사고 액세서리도 맞추자.”
유준수는 차를 운전해 근처에 있는 유명 브랜드샵으로 갔다.
이곳은 상류계층 여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으로, 최상급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등 뒤에서 들려온 앙칼진 목소리가 세 사람의 기분 좋은 쇼핑을 방해했다.
“거기 서! 이 망할 년아!”
익숙한 욕설과 익숙한 말투.
현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팔짱을 끼고 눈을 부릅뜬 왕숙희가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왕숙희가 현영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주제도 모르는 년, 이혼 전에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이제 내 아들 돈으로 애인들이랑 쇼핑하러 온 거야? 넌 부끄럽지도 않아?!”
표정이 차갑게 식은 이수가 현영의 앞을 막아섰다.
“말 좀 가려서 하시죠.”
왕숙희의 목청이 워낙 컸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
“다들 잘 보세요! 이년이 염치도 없이 내 아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애인들이랑 쇼핑하러 다니는 년이에요! 그것도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씩이나 끼고서 말이죠! 이게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