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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의 악취미

전남편의 악취미

권양이

Last update: 2024-02-21

제1화 이혼하자

  • 박지헌은 반찬이 다 식을 때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 탁!
  • 그는 돌아오자마자 이혼서류를 임연아의 앞에 던졌다.
  • “채연이가 깨어났어. 채연이가 살아 있는 한, 내 아내의 자리는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오래전에 약속했어. 임연아, 사인해. 이제 그만 이혼하자.”
  • 사촌 언니인 임채연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지 한 달, 임연아는 머지않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 그녀는 고개를 들고 씁쓸한 목소리로 물었다.
  • “내 말은 전혀 안 믿는 건가요?”
  • 박지헌은 코웃음을 치며 받아쳤다.
  • “뼛속까지 허영심으로 꽉 찬 여자를 내가 어떻게 믿어? 당신이 그럴 가치가 있는 여자야? 임연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이 서류에 사인만 하면 이 별장은 당신 소유야.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호의야!”
  • 임연아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 ‘맨몸으로 쫓겨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는 뜻인가?’
  • 그녀는 그가 팽개치듯 던져준 이혼서류를 집어 들었다. 사인란에 이미 쓰여 있는 그의 이름 석 자 때문에 목 안이 썼다.
  •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 “할머니가 동의하실까요?”
  • “할머니가 언제까지 당신만 감싸고 돌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
  • 박지헌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임연아를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 “우리가 애초에 어떻게 결혼했는지 당신이 잘 알잖아. 임연아, 헛된 욕심 부리지 마. 역겨우니까.”
  • 임연아는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 “당신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부터 나를 역겹게 생각했잖아요.”
  • 박지헌의 표정이 사납게 돌변했다.
  • “임연아!”
  • 임연아는 우아하게 펜을 집어 들었다.
  • “좋아요. 사인하죠.”
  • 오랜 잠에서 깬 채소연은 시도 때도 없이 자신과 박지헌이 같이 있는 사진을 임연아에게 전송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를 원하는데 임연아도 그를 억지로 붙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 그녀는 별장을 그녀의 명의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볼펜으로 지워버린 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사인란에 적었다.
  • 3년의 결혼 생활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 이제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 임연아는 이혼 서류를 그에게 건네며 담담하게 말했다.
  • “짐 정리해서 나갈 시간 한 시간만 줘요.”
  • 박지헌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그녀를 쏘아보았다.
  • “별장은 당신에게 준다고 했잖아. 짐을 싸서 나갈 필요 없어.”
  • “아니요. 당신이 머물렀던 곳은…”
  • 임연아는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또박또박 말했다.
  • “나도 더러워서 있고 싶지 않네요.”
  • “임연아!”
  • 남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지만 임연아는 깔끔히 무시하고 보란 듯이 뒤돌아섰다.
  • 한 시간 뒤.
  • 임연아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박지헌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탁자 위에 명품 시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곧 다가오는 그의 생일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지금 보니 거슬리기 그지없었다.
  • 탁!
  • 그녀는 미련 없이 2억이나 하는 시계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 3년이라는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임연아는 잠시 제자리에서 숨을 골랐다.
  • ‘앞으로는 나만을 위해 살 거야!’
  • 밖으로 나간 임연아는 택시를 잡아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 오래전에 구입한 호화저택이었지만 박지헌과 결혼하면서 한 번도 걸음한 적 없는 곳이기도 했다.
  • 그녀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란 고용인들이 다급히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 “사모님 오셨어요?”
  • 임연아는 캐리어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 “앞으로 사모님이 아니라 아가씨라고 불러주세요.”
  • 한때는 ‘현성그룹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벅차고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우스운 과거일 뿐이었다.
  • 고용인은 조용히 입을 닫고 거실을 나갔다.
  • 방으로 돌아온 임연아는 비서인 소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잘 지냈어?”
  • 수화기 너머로 놀란 소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고? 해가 서쪽에서 떴나?”
  • “나 이혼했어. 앞으로 소 비서 말처럼 일만 하면서 살아보려고.”
  • “뭐?”
  • 소현이 비명을 질렀다.
  •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3년 동안 남편에게 그렇게 헌신하더니 어쩐 일이야? 좋아하는 일도 때려치우고 평범한 가정 주부로 살 만큼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어? 갑자기 이혼이라니?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지?”
  • 비서이자 절친인 소현과 가장 가까운 지인 몇몇을 제외하고 임연아의 진짜 신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뉴스에는 한 번도 등장한 적 없지만, 그 이름만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명 로펌의 대표 변호사 재인이었다!
  • 인터넷에는 이런 평가도 있었다.
  • 재인과 붙어서 이길 변호사는 대한민국에 없다.
  • 수많은 변호사들이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겁부터 먹는다.
  •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소현에게 임연아가 물었다.
  • “요즘 나 찾아온 사람 없었어? 재밌는 사건 없어?”
  • 소현은 눈을 깜빡이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 “하나 있기는 한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제시했지만 우리 사무실에서는 감히 맡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어. 그리고… 너는 이 사건 맡으면 안 되고.”
  • “그래?”
  • 임연아의 차분했던 표정이 갑자기 흥미롭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