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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부가 조건

  • 임연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의 말을 정정했다.
  • “정확히 말하자면 전처입니다만.”
  • 침착한 표정만 짓고 있던 한태준도 표정이 사뭇 변했다.
  • “전처라고요?”
  • 임연아는 그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한 대표님,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재인 로펌의 재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현성그룹의 안주인으로서 그들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 하지만 변호사 재인의 신분으로는 첫 만남이었다.
  • 한태준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 “왜 갑자기 이혼을 결심하게 된 거죠?”
  • 옆에 있던 소현이 화를 참지 못하고 주절거렸다.
  • “박 대표가 자꾸 엄한 곳에 눈길을 돌리니까 그렇죠. 우리 변호사님은….”
  • “소 비서…”
  • 임연아는 그녀에게 입 다물라고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 고개를 돌린 그녀가 말했다.
  • “한 대표님, 이 사건이 태진그룹에 중요한 사안인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박지헌 대표의 전처 임연아는 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재인의 실력을 의심하지 마세요. 저도 어렵게 쌓은 우리 로펌의 이미지를 더럽힐 이유는 없습니다.”
  •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상대측 변호사는 법조계의 사냥개 지언이니 아마 재인 씨를 제외하고 이 공판에서 승소할 사람이 없겠네요.”
  • 지언은 엘리트 변호사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 역시 패소 기록이 거의 없었으며 검사와 다른 변호사들이 가장 꺼리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박지헌의 절친이기도 했다.
  • 누군가는 지언이 제2의 재인이라고 하면서 두 사람이 법정에서 맞붙으면 흥미진진한 공판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 한태준이 어렵게 재인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 하지만 지금은…
  •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네.’
  • 소현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 “당연하죠! 지언을 상대할 수 있는 변호사는 우리 재인 변호사님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죠. 아마 의뢰를 제안해도 지레 겁먹고 거절할 변호사들이 수두룩할걸요? 어차피 우리 변호사님도 이혼했으니 태진 측 기밀을 현성에 빼돌릴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겠죠?”
  • 한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건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 먼저 식사나 할까요?”
  • 말을 마친 그는 종업원을 불러 메뉴판을 가져오더니 매너 있게 안주와 술을 추천했다.
  • 임연아도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들며 말했다.
  • “한 대표님께서 이렇게 반갑게 맞아줄 줄 알았더라면 일찍 나올 걸 그랬네요.”
  • 한태준도 그녀를 마주 보며 웃었다.
  • “사실 예전에 현성그룹의 안주인으로 만났을 때도 밥 한 끼 사고 싶었는데 박 대표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감히 말을 못 꺼낸 거죠. 그런데 두 분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왜 갑자기 이혼을 결정한 거예요?”
  • 말을 마친 한태준은 와인잔을 들고 살짝 흔들었다.
  • “변호사님은 술 안 좋아해요?”
  • “사건 끝나기 전에는 술을 안 마십니다. 도움도 안 되고요. 한 대표님은 요즘 건강 상황도 안 좋다고 들었는데 식사부터 하시죠.”
  • 한태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대 변호사님께서 저를 그렇게 걱정하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제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다는 사실도 다 아시고.”
  • 포크를 든 임연아의 손이 잠시 멈칫했으나 그녀는 이내 표정을 추스르고 식사에 전념했다.
  • 그 뒤로 그녀는 말없이 먹기만 했다. 능숙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천천히 입가로 가져가서 음미했다. 모든 동작이 숙련되고 우아했다.
  • 한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 옆에 있는 소현은 그들처럼 여유롭지 못했다.
  • 그녀는 가끔 마주치는 한태준의 눈빛에는 불안감이 스쳤다.
  • ‘우리를 완전히 안 믿는 것 같은데….’
  • 임연아가 포크를 내려놓자 그제야 한태준이 입을 열었다.
  • “사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처음 같이 식사하는 거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 임연아는 우아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괜찮아요. 앞으로도 놀랄 일은 많을 테니까요.”
  • 한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재밌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그럼 기대하죠.”
  • 소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 “이제… 식사도 끝났으니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 임연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한태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상황은 이미 파악했고 승소에 자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제시하신 금액도 만족스럽고요. 추가 비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