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헌 씨, 그런 모임에는 항상 임연아를 데려갔잖아. 모두의 앞에서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줬어.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면서. 그런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가겠어?”
주예린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 쳤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잖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주예린은 딸의 손목을 잡아끌며 정색해서 말했다.
“과거의 임연아라면 그런 대접을 받아도 과분하지 않지. 하지만 네 아빠한테 재산을 전부 빼앗긴 그 집안이 무슨 힘이 있겠어? 이제 현성그룹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너야. 알겠어?”
“하지만 그러면… 지헌 씨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을까? 엘케이그룹 가세가 기울자마자 임연아를 내치면 그룹 이미지에 타격이 클 텐데. 그럴수록 사람들 앞에서 사이좋은 부부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을까?”
“풉! 채연이 네가 아직 사회를 몰라서 그래. 지금 사회는 돈 있는 자가 갑이야. 현성그룹이나 태진그룹에는 미치지 못해도 부안시에서 네 아빠도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야. 박 회장이 임연아와의 결혼을 허락한 것도 엘케이그룹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니겠어? 강자와 강자의 결합은 더 큰 이익을 가져오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지?”
임채연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주예린은 그녀를 다그쳤다.
“예전에 지헌이가 너 보러 올 때는 사람들 눈치를 봤잖아. 하지만 지금은 어때? 대놓고 드나들었지? 그래도 박 회장은 가만히 있잖아. 너희들 사이를 동의했다는 뜻 아니겠어?”
임채연이 금방 의식을 회복했을 때, 박 회장은 적당히 하라고 조용히 경고했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임채연이 입을 열었다.
“엄마 말도 일리가 있네. 내가 지헌 씨한테 얘기해 볼게.”
그들이 한창 무지갯빛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 현성 그룹 대표 사무실에서는 화약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쾅!
심화연은 분노한 표정으로 책상을 콱 내리쳤다.
“뭐? 연아랑 이혼한다고?”
박 회장은 인상을 구기며 아내에게 주의를 주었다.
“소리 좀 낮춰. 체통 없이.”
남편의 나무람에 심화연은 어이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내가 체통이 없어요? 그럼 나랑 몇십 년 동안 같은 방을 쓴 당신은요?”
박우진 회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당신이랑 싸울 마음 없어! 여긴 회사야! 소리 낮춰! 이럴 줄 알았으면 데리고 오지 않는 거였는데.”
박지헌은 굳은 표정으로 조부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박우진 회장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혼하는 게 맞아. 엘케이그룹은 이미 주인이 바뀌었으니까. 임채연이 진짜야.”
심화연은 어이없는 상황에 이를 갈았다.
“허튼소리! 임채연 걔는 여우라니까요! 당신 눈이 멀었어요?”
“걔가 어떤 인간이든 관심 없어. 하지만 채연이 걔가 지헌이 살렸고 지헌이가 결혼을 약속했으니 우리가 거두는 게 맞아! 엘케이그룹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원자재 사업은 국내 1위를 놓친 적 없어. 그런 회사와 손을 잡으면 우리에게도 남는 장사라고.”
자신이 아끼던 손자며느리가 곧 내쳐질 거라고 생각하자 심화연은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녀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현성그룹에 돈이 부족해요? 죽어서 그 돈 다 가져갈 거예요? 곧 떠날 사람이 왜 아직도 돈 욕심이 그렇게 많아요? 나는 절대 이혼 동의 못 해요!”
박지헌은 굳은 표정으로 박 회장을 바라보았다. 왜 할머니를 데리고 왔냐고 탓하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