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한태준에게 예의 바른 미소를 보인 뒤, 다급히 임연아을 쫓아 밖으로 나갔다.
차에 오른 소현은 바로 시동을 걸지 않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임연아를 바라보았다.
“너 설마 박지헌이랑 이혼하고 한태준 이용해서 외로움을 달래려는 건 아니지? 한태준은 안 돼. 또 상처받을 거라고.”
임연아는 멈칫하더니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사랑인데 내가 누구랑 연애를 해?”
게다가 그 한태준이 그녀에게 관심 있을 리 없었다.
임연아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괜한 걱정이야. 내가 원한다고 해도 한태준이 나 안 만나줄걸?”
소현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거짓말 아니지?”
“당연하지.”
소현은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차에 시동을 걸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다 똑같아! 우리 여자들은 스스로 강해져야 해! 연아 너는 능력도 있으니까 괜히 남자한테 끌려다니지 마.”
소현은 무척 진지한 표정이었다. 변호사와 비서의 관계가 아닌 친구로서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다.
임연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이제 남자한테 흔들릴 일도, 끌려다닐 일도 없어. 이번 사건이 박지헌에 대한 반격의 첫걸음이야. 나 믿어.”
소현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핸들을 꺾었다.
“나는 너 믿어!”
임채연의 집.
식사를 마친 임채연 가족들은 거실에서 차를 마셨다. 임채연은 얼굴에 생기가 넘치는 것이 전혀 한 달 만에 퇴원한 사람 같지 않았다.
임채연의 모친인 주예린은 굉장한 미인이었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군살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삼십 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동안의 미모를 자랑했다.
임채연은 엄마의 옆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아. 지헌 씨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여.”
여자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것이 불길한 예감일수록 더욱 그랬다.
주예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임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요즘 지헌 씨… 임연아에게 계속 끌려다니는 느낌이야. 어제 본가에 임연아랑 같이 갔어.”
주예린이 표정을 구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임연아 그 뻔뻔한 년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임채연도 이를 갈았다.
“어제저녁에 내가 같이 있어 달라고 했는데 마지못해 남는 눈치였어. 입으로는 나 위로한다고 하는데 지헌 씨가 점점 멀게만 느껴져. 이혼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도 대답을 피했어. 나랑 결혼할 거라고 약속은 했지만 느낌이 안 좋아. 임연아 때문에 일이 틀어질 것 같아.”
주예린의 눈빛이 음침하게 빛났다.
“임연아 고년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영악한 년인 줄은 몰랐는데. 그 집 어르신은 임연아만 예뻐하니… 골치가 아프구나! 채연아, 이제 네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