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9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 안예담은 안예빈에게 이런 것들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구은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라, 뭘 숨길 줄을 몰랐다.
  • 안예빈은 점점 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입술마저 덜덜 떨리고 있었다.
  • “세쌍둥이? 너도 참 대단하다. 아니, 그 노인네가 대단한 거겠지. 어쩐지 이렇게 촌스럽다고 했더니, 셋이나 키우기 어렵지?”
  •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한껏 우쭐한 얼굴을 했다. 설령 살아있다고 해도 뭐 어떤가?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 구은은 그녀의 그 얼굴을 보다, 또다시 자기 엄마의 얼굴을 쳐다봤다. 어쩐지 저 이모는 달콤이의 친구 같지가 않았다.
  • 구은은 조금 화를 내며 입을 삐죽거렸다.
  • “달콤아, 달콤이 친구가 맞아? 왜 달콤이를 저렇게 무섭게 쳐다봐?”
  • 안예담은 자신의 딸을 쳐다봤다. 자신의 아이가 이런 못난 꼴을 보지 않길 바랐다.
  • 그녀가 안예빈 모녀를 얼마나 미워하든 간에, 그녀는 이 원한을 세 아이에게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즐겁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랐다.
  • “구은아, 밥 먹어. 엄마 모르는 사람이야.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 구은은 당연히 말을 잘 들어야 했고, 이내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 위의 음식을 먹으며 그녀를 무시했다.
  • 오늘 원래 기분이 좋았던 안예빈은, 안예담이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할 줄은 몰라 조금 당황했다.
  • 하지만 설령 그녀가 살아있다고 해도, 그들을 찾아와 복수할 능력은 없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 왕년의 안씨 가문 큰 아가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그녀는 더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 윤시진이 언제든 나올 수 있는 데다, 만약 그녀가 이런 사람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그 남자에게 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창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 그리하여 윤예빈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정리한 뒤 더욱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 “그럼 천천히 먹어, 안예담. 난 곧 있으면 결혼해, 그때 네 세 아이도 데리고 와. 결혼식에는 맛있는 게 더 많단다, 아가야.”
  • 말을 마친 그녀의 목소리가 점차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 “나 이제 A 시에서 가장 큰 가문의 실권인 윤시진과 결혼해. 이제 내 팔자가 너보다 백배 천배는 더 나은 것 같지 않니? 하하하….”
  • 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등을 돌리며 우쭐한 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
  • 안예담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18살에 저 모녀들의 계략에 당해, 아이를 임신했지만 끝내 그녀는 차마 아이를 지우지 못했고, 그 덕에 대학도 다니지 못했다.
  • 이 6년간, 그녀는 매일같이 죽어라 일을 했고, 그렇게 하고 나서야 겨우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 복수를 하고 싶어도, 저 모녀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싶어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방도가 없어 문득 서러워졌다.
  • 그리고 안예빈은 무려 A 시에서 가장 권력 있는 남자와 결혼한다고 하니, 그 기분은 마치 변이라도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그저 하늘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사람들에게 너무 좋은 세상이지 않은가.
  • “안예담 씨, 아직 계셨네요?”
  • 정영호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는 이내 자신의 곁에 있는 잘생긴 남자에게 말했다.
  • “대표님, 방금 전에 안예담 씨가 옷을 돌려주셨어요.”
  •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을 들어 올려 보여주었고, 윤시진은 그제야 덤덤하게 테이블 위의 두 사람을 훑었다.
  • 그 여자는 오늘 베이지색의 니트를 입고 있었고, 아래에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주 간단한 차림이었지만, 그날 병원에서의 처량한 모습과 비교하면 오늘의 그녀는 아주 예뻤다.
  • 특히 그 두 눈동자, 검고 커다란 것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밝았다.
  • 말소리를 들은 구은은 기름 범벅인 입을 한 채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 “훈남 삼촌, 삼촌이었어요? 삼촌, 달콤이랑 아는 사이에요?”
  • 윤시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전에 네가 아팠을 때, 병원에서 만난 적 있어.”
  • 안예담은 안예빈이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 “윤 대표님, 옷을 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목소리는 조금 차가웠고 표정 역시도 마찬가지라 어딜 봐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질색하는 것 같았다.
  • 윤시진은 그녀에게 옷을 줄 때, 애초에 받을 생각이 없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어쩐지 오지랖을 부렸었던 것 같았다. 상대방은 전혀 받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전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은 입지 않습니다. 그러니 굳이 돌려주실 필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