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다
- 공기는 정체되어 있었고 온도는 뚝 떨어졌다.
- 남자의 훤칠하고 꼿꼿한 몸은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 꿋꿋하게 자리에 서있었다. 이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 반유설은 아래입술을 깨물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문에 반사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그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눈빛은 매섭고 날카로웠으며 깊이를 알 수 없는 한기를 내뿜었다.
- 마치 한 마리의 사자가 자신의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 빨리, 빨리, 조금만 더 빨리…
- 반유설은 엘리베이터가 빨리 내려가기만을 바랐고 억압된 이 공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 엘리베이터의 숫자는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13, 12, 11, 10…
- 반유설은 숫자의 변동에 따라 점점 긴장감이 몰려왔고 등 뒤에 서있던 예도하는 서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 “띵!”
- 드디어 도착했다.
- 문이 열리자마자 반유설은 빠르게 뛰쳐나갔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입구에 엎어졌다.
- 마치 한 마리의 개구리같이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 문 밖은 떠들썩해졌다. 직원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온 직원들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웃음을 참고 있기도 했다.
- 반유설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 얼굴을 가린 채 질주했다…
- 등 뒤에 서있던 남자의 시선은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따라가고 있었고 입꼬리에는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 …
- 반유설은 환영식이라고 하니 그저 식당에서 밥이나 먹는 건 줄 알았으나 에로스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제일 어이없는 것은 허문철도 갔다는 것이다.
- 총무팀에서 회식하는데 인사팀이랑 무슨 상관인 거지?
- 반유설은 기분이 언짢았으나 동료들도 자리에 있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 허문철은 이미 동료들과 한 잔을 걸치고 있었고 비싼 술을 잔뜩 시켜 테이블을 꽉 채웠다.
- 그중 한 남자 동료가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귀띔했다.
- “팀장님, 이 술 150만 원 넘는 거 아닙니까? 신입사원한테 너무 심하지 않을까요?”
- “다들 모르시죠.”
- 허문철이 웃었다.
- “반유설은 재벌 2세에요. 돈 많아요. 예전엔 에로스에 오면 이까짓 몇 병이 다 뭐예요. 모든 테이블을 다 책임질 수 있을 정도였어요.”
- “헉, 정말이에요?”
- 몇몇 여자 동료들은 흥미로운 화젯거리에 바로 이끌리듯 다가와 반유설을 둘러싸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 “반유설 씨, 재벌 2세였어요? 전혀 티가 안 나는데. 정말 겸손하시네.”
- “아닙니다…”
- “왜 아니지?”
- 허문철은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며 썩소를 지었다.
- “해성의 갑부 반유혁의 외동 따님, 다들 들어본 적 있으시죠?”
- “그 4년 전에 투신자살한 반유혁 말씀하시는 거예요?”
- 그중 남자 동료 한 명은 무언가 크게 깨달은 것 같았다.
- “어쩐지 반 씨라는 성씨가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다 싶었는데….”
- “나 왠지 그때 그 뉴스를 본 것 같아요. 반 씨 가문의 아가씨가 약혼식 당날에 파혼을 당했고 에로스에서 트렌스젠더 호스트랑… 큼큼… 그게 사실이에요?”
- 동료들은 호기심, 자극, 흥분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반유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 그 시선들은 반유설의 얼굴에 뒤엉키며 예리한 칼끝이 되어 그녀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도무지 버틸 수가 없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총무팀 팀장 양시영이 다급하게 그녀를 잡았고 같이 야유하던 몇 명의 동료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 “다들 왜 그래요? 신입사원한테 그렇게 해야만 했어요? 앞으로 함께 할 사람들인데 굳이 사람 아픈 곳을 왜 찌르고 그래요.”
- “그래요, 미안해요…”
- 동료들은 다급하게 반유설에게 사과했다.
- 반유설은 허문철이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을 보자 도망치듯 룸에서 뛰쳐나왔다.
- 그녀는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과거의 그림자는 계속해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았다….
- 반유설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평온을 되찾으려 애썼다.
- “뭐 이깟 걸로 벌써 견디기 힘들어해?”
- 허문철은 따라 나와서 비꼬았다.
-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 “일부러 그런 거지.”
- 반유설은 분노 섞인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 “일부러 나 입사 시키고, 일부러 내가 사게 만들려고 직원들을 부추긴 거, 일부러 나를 난감하게 만든 거… 복수하려고 그러는 거지.”
- “맞아.”
- 허문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일부러 몇 백 짜리 시켰잖아. 너 체면 세워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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