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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늑대 머리 문신

  • 이 분쟁은 아무래도 짧은 시간 안에 매듭지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날이 을씨년스러운 걸 보아하니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
  • 반유설은 아이들이 비를 맞게 하기 싫었다. 특히나 빈이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비를 맞으면 무조건 감기에 걸릴 게 뻔했다.
  • “준이, 안이, 빈이, 차에 꼼짝 말고 가만히 앉아있어. 엄마가 가서 보고 올게.”
  • 반유설은 아이들에게 당부한 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 “엄마, 조심하세요.”
  • 세 꼬마들은 이구동성으로 귀띔했다.
  • 빈이 주머니에 있던 앵무새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 빈이는 간식 한 봉지를 꺼내 앵무새의 입에 밀어 넣었고 작은 손으로 포실포실한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 “우리 제인, 조금만 더 참아. 금방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야!”
  •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 택시 기사는 다급하게 설명했다.
  • “다 저 여자 때문이에요.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탄 것도 모자라 짐도 어마어마하게 들고 타서 적재량을 초과했어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들이 타고 있는 차를 치게 된 겁니다.”
  • 택시 기사는 말을 이어가다 반유설을 가리키며 질책했다.
  • “이 일은 당신이 책임져요.”
  • “제가 왜…”
  • 반유설이 앞으로 나서서 따지려고 하던 그때 롤스로이스의 창문이 갑자기 내려갔다.
  • “됐습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서요.”
  • 조수석에 앉은 젊은 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시선은 반유설의 얼굴을 잠깐 스쳤다.
  • “네!”
  • 양복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고 기사에게 “앞으로 운전 조심하시죠.”라는 한마디를 던진 뒤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 반유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앉은 남자는 그녀를 등지고 있었고 상반신을 노출한 상태였다.
  • 그는 몸에 상처가 있었고 등 뒤에는 흉악한 흉터가 그어져 있었다. 새빨간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허리 뒷부분에 있는… 늑대 머리 문신을 물들이고 있었다.
  • 늑대 머리 문신!!!
  • 반유설은 놀란 마음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얼이 빠진 모습으로 문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심장이 거의 멎는 느낌이었다…
  • 흉악하고 사나운 모습의 늑대는 피로 물들자 더더욱 살아있는 듯 생동했고 피로 물든 붉은 두 눈은 마치 반유설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그 남자였다!
  • 정말 그 남자였다!
  • “길 막지 말고 비켜!”
  • 택시 기사가 갑자기 반유설을 밀쳤다.
  • 반유설은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졌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롤스로이스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 차가 멀어지는 방향을 보던 반유설의 머리는 윙윙 울렸다.
  • 방금 전 차에 타고 있던 그 남자, 정말로 그 사람일까? 아이들 아버지 말이다…
  • 에로스의 제비가 아니었나? 어떻게 저렇게 진귀한 차에 타고 있는 거지? 또 왜 다친 거고?
  • “저기요, 왜 저희 엄마 밀치시는 거예요?”
  • 반유설이 넘어지는 것을 본 안이는 마치 화가 잔뜩 난 작은 사자 같았고 주먹을 꼭 쥔 채로 기사에게 질문했다.
  • “꼬마 녀석, 감히 나한테 소리를 질러? 너희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 꼴이 날 정도로 재수 없진 않았을 거야.”
  • 기사는 욕설을 퍼부었다.
  • “아저씨가 과속해서 앞차를 박았으면서 우리랑 뭔 상관인데요?”
  • 준이는 앳된 목소리로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 “저희는 승객이니까 책임을 감당할 이유가 없어요. 아저씨야말로 과속을 했으니 교통법을 어긴 거예요. 저희는 아저씨를 신고할 수 있어요!”
  • “맞아요. 아저씨가 저희 엄마를 괴롭혔으니까 경찰 아저씨한테 붙잡아 가라고 할 거예요.”
  • 빈이는 입을 삐죽거렸고 씩씩거리며 도로 중앙을 가리켰다.
  • “바로 저쪽에 교통경찰 아저씨가 있어요!”
  • 그녀의 어깨에 앉아있던 제인도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
  • “교통경찰 아저씨, 교통경찰 아저씨!”
  • “에이씨, 정말 귀찮네. 너희들 당장 내려, 당신들 안 태워!”
  • 기사는 트렁크를 열어 반유설의 짐을 냉동댕이 치고 나서 바로 택시를 끌고 자리를 떴다.
  • “저기요, 너무 하시네!”
  • 반유설은 바닥에 널브러진 짐을 허둥지둥 주운 뒤 세 꼬마를 챙겨 도로 옆으로 향했다.
  • 쏜살같이 달려가는 롤스로이스의 뒷좌석에 앉아있는 예도하는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쳐다보았다.
  • 방금 전 차 옆에 서있던 그 여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익었지만 어디에서 본 적 있었는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 “예 대표님, 일단 마취부터 진행하겠습니다.”
  • 의사가 남자를 위해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
  • “괜찮아.”
  •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 “그러시다면… 조금 참으셔야 됩니다. 이제 상처를 꿰매도록 할게요.”
  • 의사는 눈썹을 찌푸리고 남자를 위해 상처를 꿰매주기 시작했다. 마취를 진행하지 않은 탓에 되려 의사 선생님이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 남자의 구릿빛 피부는 등불 밑에서 그윽하고 차가운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근육 라인은 격렬한 통증에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