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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비명을 지르다

  • 방문을 열고 들어간 남수아는 쌍둥이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 “진봉아, 진아야, 엄마 왔어.”
  • 양털 카펫에 앉아 있던 박진봉과 박진아는 엄마라는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아빠 입으로 이 여자가 그들의 엄마라고 말은 했지만, 그들은 이 여자가 아주 싫었다.
  • 박진봉이 까만 눈동자를 몇 번 굴리더니 눈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 “이쪽으로 오실래요?”
  • 박진봉이 무슨 꿍꿍이 속셈인지 몰랐으나, 남수아는 그래도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 “내가 아주 보배처럼 여기는 물건이 있는데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요.”
  • 박진봉은 모처럼 악마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 자신에 대해 경계심을 풀었다고 생각한 남수아는 이 기회에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부드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 “그래. 어떤 물건을 보여줄 거야?”
  • 박진봉이 등 뒤에 감췄던 손을 내밀자 몸뚱어리가 새하얀 뱀이 그의 손목을 감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 “나의 애완동물 눈덩이예요.”
  • 흰 뱀은 박진봉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호박빛을 띤 눈으로 남수아를 보면서 더 열심히 혀를 날름거렸다.
  • 남수아는 눈앞에 있는 흰 뱀을 보더니 혼비백산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 “치워! 얼른 치워! 가까이 오지 마!”
  • 박진봉은 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부러 남수아 쪽으로 몇 발짝 다가갔다.
  • “나와 진아는 모두 이 뱀을 좋아해요. 두려우면 여기 있지 마세요.”
  • 말을 못 하는 박진아는 오빠와 같은 생각이라는 걸 나타내려고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 남수아는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이는 쌍둥이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때린 후의 결과를 생각해본 그녀는 결국 참기로 했다.
  • “어찌 됐든 난 너희들 엄마잖아! 이 장난은 너무 심했어!”
  • 남수아는 이 말을 남기고는 씩씩거리며 그들의 방에서 나갔다.
  • 박진봉은 자그마한 손으로 애완 뱀을 만지작거리며 한탄했다.
  • “저 여자, 너무 쓸모없지? 눈덩이를 보고 저렇게 놀랄 수 있어? 아빠는 그때 얼마나 생각이 짧았으면 저런 여자가 눈에 들어왔을까?”
  • 박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공항에서 만났던 그 아줌마가 생각났다.
  • 그녀는 엄마를 바꾸고 싶었다. 그 아줌마야말로 그녀 마음속의 엄마였다!
  • 밤 11시, 박시현이 집으로 돌아오자 안씨 아저씨는 남수아가 집에 와서 박진봉, 박진아를 만났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 “남수아가 이번에는 얼마나 있었어?”
  • “예전보다는 좀 오래 있었어요. 정확하게 15분이요.”
  • “알았어. 가 봐.”
  • 박시현은 셔츠 단추를 풀었다. 조금 벌어진 옷깃 사이로 정교한 턱선과 쇄골이 드러났다.
  • 6년 전에 남의 모해로 약을 먹고 불타오르는 욕정에 몸이 폭발하기 직전에 그는 남수아를 찾았고, 그렇게 박진봉과 박진아가 생겼다.
  • 6년 전 그날 밤 그는 분명 풋풋하고 요염한 이 몸매에 반해서 울면서 애원하는 그녀의 몸을 모질게 가졌지만, 이 5년 동안 같은 얼굴, 같은 사람을 마주하고도 그때의 혈기 왕성한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 지금 그한테 남수아는 단지 아이들의 생모에 불과했다.
  • 박시현은 이 시각 남수아보다 아침에 자신을 허탕 치게 한 남연아한테 신경이 더 쓰였다.
  • 그는 상호한테 전화했다.
  • “상호야, 남연아는 어떻게 됐어?”
  •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어요. 토막 살인 사건이어서 업무량이 많다고 합니다.”
  • 상호는 들은 대로 대답했다. 박시현은 그윽한 눈빛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끗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 “내 명의로 밤참을 보내줘.”
  • 상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 “도련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그런 여자한테 그렇게까지…”
  • 박시현이 차갑게 그의 말을 잘랐다.
  • “언제부터 네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했어?”
  • “아닙니다. 도련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 상호는 전화를 끊은 후 남연아에게 보내줄 밤참을 준비했다.
  • 박시현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정원에 활짝 핀 흰 장미를 바라보았다.
  • 남연아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든, 자신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 그는 오로지 남연아를 모셔와 박진아의 실어증을 고쳐주려는 생각뿐이었다.
  • 박시현은 자신의 보배둥이 딸이 평생 말도 못 하고 아빠라고 불러보지도 못하게 하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