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6화 안 좋은 예감

  • 남연아 일행은 강력계 사무실로 올라갔다.
  • 백열등이 눈부신 8층은 법의관과 증거물 수집팀이 함께 쓰는 사무 공간이었다. 시체 보관실과 가까워서 그런지 이곳은 다른 층보다 훨씬 추웠다.
  • 남연아는 새 사무실을 구경할 새도 없이 소독을 마친 후 두 법의관을 데리고 해부실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유리창 앞에 서서 아직 떠나가지 않은 벤틀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강아란을 발견했다.
  • “아직도 박시현을 생각하는 거야?”
  • 강아란은 마음을 들켜버린 소녀처럼 딱 잡아뗐다.
  • “아, 아니거든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 “내가 함부로 말하는지 아닌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겠지.”
  • 남연아는 차갑게 그녀를 흘겨보았다.
  • “난 부하의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않아. 하지만 너의 사적인 정서가 일에 영향을 미친다면 난 너를 쫓아낼 거야. 너의 할아버지가 강력계 최고 장관일지라도.”
  • 강아란은 이를 깨물었다.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 남연아가 정식으로 임명받기 전에 할아버지는 그녀한테 성질을 죽이고 법의 고문관한테서 열심히 배우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만약 남연아가 그녀한테 연말 평가 D를 준다면 할아버지도 감싸주지 않을 것이며 규정대로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강아란은 남연아가 진짜로 할아버지한테 고자질이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녀는 박시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해부실 안에서, 수술대 위의 녹색 불빛이 눈에 거슬리는 피 색깔을 중화시켜 주었다.
  • 남연아는 조각난 시신들을 끌어 맞춘 후 실로 꿰매기 시작했다. 전문적이고 능란한 손놀림으로 시신을 꿰매는 그녀의 모습에 황빈과 강아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도 남연아가 특별 초빙 법의 고문관이면 능력이 보통은 아닐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수준이 이 정도로 프로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쯧쯧, 이 여자 참… 시신에서 나는 이 악취를 진짜로 느끼지 못하는 거야?’
  • 시신 봉합이 끝나자 부서진 조각의 DNA를 채취해야 했다. 그들 세 명은 일에 착수했다.
  • 저녁, 박씨 가문에서.
  • 촬영 일정을 마친 남수아는 서둘러 박씨 가문으로 왔다. 말로는 자신이 낳은 쌍둥이들을 보러 왔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의 목적은 박시현이었다.
  • 5년 전, 그녀는 아이들을 빌미로 박씨 가문 사모님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박시현은 쌍둥이들만 인정하고 아이들의 ‘생모’인 그녀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박씨 가문 꼬마 도련님, 꼬마 아가씨의 엄마라는 사실을 밖에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 박씨 가문 내부에서도 사람들은 그녀를 박씨 가문 안주인이 아닌, 아이들의 엄마로만 생각했다.
  •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남연아가 낳은 아이들한테 겉으로 잘해주면서 이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언젠가는 박시현의 아내가 되려고 줄곧 참아왔다.
  •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미적지근하게 지나갔지만, 그녀는 여전히 박씨 가문 안주인이 되지 못했다.
  • “남수아 씨, 오셨어요.”
  • 안씨 아저씨가 남수아를 데리고 현관을 지났다.
  • “아저씨, 시현 씨는 왔어요?”
  • “큰 도련님은 안 오셨고 꼬마 도련님과 꼬마 아가씨가 집에 있어요.”
  • 안씨 아저씨는 남수아를 꼬마 주인들의 생모로 여기고 그녀한테는 특별히 공손하게 대했다.
  • “그들을 못 본 지도 한참 되셨죠?”
  • 박시현은 집에 없고 두 아이만 있다는 말에 남수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 쌍둥이는 그녀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전혀 그녀를 따르지 않았고 늘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히고는 했다. 박시현이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박시현만 없으면 쌍둥이는 그녀와 한마디도 섞지 않고 혼자 옆에 팽개치고는 했다.
  • 그녀는 두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고 싶었지만, 박시현이 애지중지하는 아이들한테 손찌검이라도 한다면 박시현이 아예 그녀의 출입을 막을까 봐 겁났다.
  • “남수아 씨…”
  • “네?”
  • 남수아는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었다.
  • “아저씨, 방금 저는 그들의 엄마로서 늘 그들 옆에 있어 주지 못하는 저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어요. 그들이 커가는 모습을 항상 지켜보고 싶지만… 여기 오래 머무를 자격은 없잖아요.”
  • 연기자인 남수아가 이런 불쌍한 연기를 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 남수아가 진짜로 자책한다고 여긴 안씨 아저씨는 그녀를 위로했다.
  • “남수아 씨,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그들한테 모실게요.”
  • “그럼 부탁드려요.”
  • 남수아가 안씨 아저씨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안씨 아저씨는 방문을 두드렸다.
  • “꼬마 도련님, 꼬마 아가씨, 문 좀 여세요. 엄마가 보러 오셨어요.”
  • 두 녀석이 또 예전처럼 본체만체할 줄 알았는데 생각 밖에도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 “할아버지, 엄마 혼자 들어오라고 하세요. 엄마랑 따로 있고 싶어서 그래요.”
  • 안씨 아저씨가 흐뭇하게 말했다.
  • “남수아 씨, 모자간에 마음이 통했나 보네요. 남수아 씨가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만큼 그들도 남수아 씨가 보고 싶었나 봐요.”
  • 남수아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속으로 왠지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