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박시현의 몸에서 일어나려고 손으로 시트를 짚었다. 하지만 머리를 쳐든 순간 그녀는 두피에 통증을 느끼며 다시 원래 위치로 넘어졌다.
“뭐 하세요!”
박시현은 거친 숨을 내쉬었고 목청마저 갈렸다.
‘제기랄!’
남연아가 자신을 유혹하려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숨결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그곳과 너무나도 가까웠다.
“움직이지 마세요. 내 머리카락이… 지퍼에 걸렸어요.”
남연아는 모처럼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다. 얼굴에서 귀뿌리까지 번진 홍조는 당금이라도 피를 쏟을 것처럼 붉어졌다. 그 시각 그녀는 두 눈을 떠도, 감아도 이상했다.
막장이라도 정말 한심한 막장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필이면 박시현의 사타구니 쪽에 있는 지퍼에 걸리고 말았다.
남연아는 그 위험지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했지만, 엉킨 머리카락을 풀려면 그 위치를 거의 피할 수 없었다.
남연아는 머리를 기른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랐다. 급하게 당기니 아프고, 당기지 않자니 고통스러웠다.
‘의학 공부를 하면서 남성 시체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수술칼을 들고 직접 해부까지 했잖아…’
남연아는 냉정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마음이 거의 가라앉고 있을 때 남자의 그곳이 차츰 크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한 번 봤을 뿐인데 남연아의 노력은 수포가 되고 말았다.
‘빌어먹을, 예전에 본 건 다 죽은 거지만, 지금은 이렇게 뜨겁게 살아있는 걸 보는데 같은 느낌일 수가 없잖아?’
남연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안 돼요?”
박시현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반나절이나 그곳을 만지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참겠어요? 제가 참을 수 있게 얼른 당신 문제나 해결하세요.”
남연아는 이를 꽉 악물었다.
‘정말 미치겠다!’
“알았다고요. 빨리할 테니 재촉하지 마세요!”
남연아는 투덜거리며 마음을 크게 먹고 위험 지대의 지퍼를 천천히 내리면서 엉킨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 과정에 그녀의 손은 불가피하게 그곳에 닿고 말았다.
“어디를 만져요?”
“알고 있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세요. 거의 다 됐어요.”
지퍼를 다 내려서야 남연아의 머리카락이 완전히 풀렸고, 그녀는 다급히 일어나 앉았다. 팬티 속에 감춰진, 높이 솟은 그곳을 우연히 보게 된 남연아는 얼른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박시현도 안색을 흐리며 긴 손가락으로 지퍼를 올렸다.
줄곧 금욕 중인 그는 6년 전에 참지 못한 것 외에 오늘처럼 폭발 직전까지 간 적이 없었다. 이 여자가 제때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망정이지, 그는 하마터면 참지 못할 뻔했다.
길에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차 안에는 왠지 모르게 애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
차가 별장에 도착해서야 남연아는, 조금 전에 그 에피소드 때문에 깜박 잊고 박시현의 식사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사실이 떠올랐다.
“도착했어요.”
박시현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몸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박시현이 대처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또 그녀도 그 귀염둥이가 보고 싶었던 지라 그녀는 지프에서 내리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 한끝에 보이는 호화롭고 우아한 별장을 보면서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박씨 가문이네. 상상했던 것보다 더 고급스럽잖아.’
상호는 지프를 정원의 전용 공간에 세웠다. 남연아는 박시현을 따라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별장 문 어귀에 서서 박시현을 기다리고 있던 안씨 아저씨는 남연아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박시현은 꼬마 도련님과 꼬마 아가씨의 생모를 제외하고 박씨 가문에 여자를 데려온 적이 없었다.
안씨 아저씨도 박시현의 뜻을 거스르기는 싫었지만,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남수아와 대조해보면 앞에 있는 주근깨투성이인 이 여자애는 생기 있는 눈 말고는 너무나도 못생겼다!
안씨 아저씨는 의문을 속에 감춘 채 두 사람을 정중하게 모셨다.
남연아와 박시현은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블랙, 화이트 그리고 그레이 위주로 된 인테리어는 눈에 띄지 않게 우아했다. 거실에 있는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정원에 활짝 핀 흰 장미들이 훤히 내다보였다.
남연아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눈을 찌푸리고 박시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공항에서 꼬마를 만난 것 때문에 박시현처럼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남자가 몇 번이고 그녀한테 호의를 베풀고 식사 요청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박시현이 내 신분을 이미 알아내고 누군가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려는 거야? 아니면 꼬마의 생모, 박시현이 꼭꼭 숨겨둔 여자가 난치병에라도 걸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