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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바지 지퍼에 감긴 머리카락

  • 얼굴이 빨개진 남연아는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 그녀는 박시현의 몸에서 일어나려고 손으로 시트를 짚었다. 하지만 머리를 쳐든 순간 그녀는 두피에 통증을 느끼며 다시 원래 위치로 넘어졌다.
  • “뭐 하세요!”
  • 박시현은 거친 숨을 내쉬었고 목청마저 갈렸다.
  • ‘제기랄!’
  • 남연아가 자신을 유혹하려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숨결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그곳과 너무나도 가까웠다.
  • “움직이지 마세요. 내 머리카락이… 지퍼에 걸렸어요.”
  • 남연아는 모처럼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다. 얼굴에서 귀뿌리까지 번진 홍조는 당금이라도 피를 쏟을 것처럼 붉어졌다. 그 시각 그녀는 두 눈을 떠도, 감아도 이상했다.
  • 막장이라도 정말 한심한 막장이었다!
  •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필이면 박시현의 사타구니 쪽에 있는 지퍼에 걸리고 말았다.
  • 남연아는 그 위험지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했지만, 엉킨 머리카락을 풀려면 그 위치를 거의 피할 수 없었다.
  • 남연아는 머리를 기른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랐다. 급하게 당기니 아프고, 당기지 않자니 고통스러웠다.
  • ‘의학 공부를 하면서 남성 시체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수술칼을 들고 직접 해부까지 했잖아…’
  • 남연아는 냉정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마음이 거의 가라앉고 있을 때 남자의 그곳이 차츰 크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 한 번 봤을 뿐인데 남연아의 노력은 수포가 되고 말았다.
  • ‘빌어먹을, 예전에 본 건 다 죽은 거지만, 지금은 이렇게 뜨겁게 살아있는 걸 보는데 같은 느낌일 수가 없잖아?’
  • 남연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안 돼요?”
  • 박시현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당신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반나절이나 그곳을 만지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참겠어요? 제가 참을 수 있게 얼른 당신 문제나 해결하세요.”
  • 남연아는 이를 꽉 악물었다.
  • ‘정말 미치겠다!’
  • “알았다고요. 빨리할 테니 재촉하지 마세요!”
  • 남연아는 투덜거리며 마음을 크게 먹고 위험 지대의 지퍼를 천천히 내리면서 엉킨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 과정에 그녀의 손은 불가피하게 그곳에 닿고 말았다.
  • “어디를 만져요?”
  • “알고 있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세요. 거의 다 됐어요.”
  • 지퍼를 다 내려서야 남연아의 머리카락이 완전히 풀렸고, 그녀는 다급히 일어나 앉았다. 팬티 속에 감춰진, 높이 솟은 그곳을 우연히 보게 된 남연아는 얼른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 박시현도 안색을 흐리며 긴 손가락으로 지퍼를 올렸다.
  • 줄곧 금욕 중인 그는 6년 전에 참지 못한 것 외에 오늘처럼 폭발 직전까지 간 적이 없었다. 이 여자가 제때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망정이지, 그는 하마터면 참지 못할 뻔했다.
  • 길에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차 안에는 왠지 모르게 애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 차가 별장에 도착해서야 남연아는, 조금 전에 그 에피소드 때문에 깜박 잊고 박시현의 식사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사실이 떠올랐다.
  • “도착했어요.”
  • 박시현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몸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박시현이 대처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또 그녀도 그 귀염둥이가 보고 싶었던 지라 그녀는 지프에서 내리지 않았다.
  • 눈 앞에 펼쳐진,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 한끝에 보이는 호화롭고 우아한 별장을 보면서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역시 박씨 가문이네. 상상했던 것보다 더 고급스럽잖아.’
  • 상호는 지프를 정원의 전용 공간에 세웠다. 남연아는 박시현을 따라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별장 문 어귀에 서서 박시현을 기다리고 있던 안씨 아저씨는 남연아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박시현은 꼬마 도련님과 꼬마 아가씨의 생모를 제외하고 박씨 가문에 여자를 데려온 적이 없었다.
  • 안씨 아저씨도 박시현의 뜻을 거스르기는 싫었지만,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남수아와 대조해보면 앞에 있는 주근깨투성이인 이 여자애는 생기 있는 눈 말고는 너무나도 못생겼다!
  • 안씨 아저씨는 의문을 속에 감춘 채 두 사람을 정중하게 모셨다.
  • 남연아와 박시현은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블랙, 화이트 그리고 그레이 위주로 된 인테리어는 눈에 띄지 않게 우아했다. 거실에 있는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정원에 활짝 핀 흰 장미들이 훤히 내다보였다.
  • 남연아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눈을 찌푸리고 박시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그녀는 자신이 공항에서 꼬마를 만난 것 때문에 박시현처럼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남자가 몇 번이고 그녀한테 호의를 베풀고 식사 요청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다면… 박시현이 내 신분을 이미 알아내고 누군가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려는 거야? 아니면 꼬마의 생모, 박시현이 꼭꼭 숨겨둔 여자가 난치병에라도 걸린 건가?’
  • “박시현 씨, 툭 털어놓고 얘기합시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도대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