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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여자야, 내 옆에 남아

  • 박시현의 그윽한 눈빛이 남연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더니 그는 담담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 “남연아 씨, 경계심이 보통이 아니군요.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제가 당신한테 뭘 원할까 봐 두려워하는 거죠?”
  • 남연아는 그의 눈빛에 온몸이 부자연스러웠다.
  • 남자의 시선은 그녀의 영혼까지 꿰뚫어 볼 기세로 그녀의 얼굴에서 맴돌았다.
  • 남연아가 느끼기에 박시현은 진짜로 외부에 전해진 것처럼 기가 세고 독단적이어서 속이기 쉽지 않은 사람 같았고, 박시현의 눈에만 들었다 하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 그녀가 예전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도 박시현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위험한 남자와는 어떻게든 얽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 “도련님, 식사 준비되었습니다.”
  • 이때 안씨 아저씨가 들어와서 보고했다.
  • 박시현은 입귀를 위로 살짝 올렸다.
  • “남연아 씨, 저희 집 주방장 솜씨가 어떤지 맛 좀 보세요.”
  • 남연아도 사양하지 않고 박시현을 따라 식탁 앞으로 갔다.
  • 정교한 요리들로 가득한 식탁 앞에 마주 앉아 남연아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입 떼자마자 박씨 가문 주방장의 요리 솜씨에 놀랐다. 그녀가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지 않고 밥을 먹었기 때문에 박시현과 식사하는 동안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박시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 “죄송합니다. 실례 좀 할게요.”
  • “괜찮아요.”
  • 박시현이 자리를 뜨자 남연아는 홀가분해졌다.
  • ‘이제 밥도 거의 다 먹었는데 박시현은 왜 날 갈구지 않는 거야? 그렇다면 내가 괜한 오해를 한 건가?’
  • 그릇에 남은 밥을 마저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차가운 무언가가 부드럽게 종아리를 감는 걸 느꼈다.
  • ‘뭐지?’
  • 고개를 숙여 보니 몸뚱어리가 하얀 뱀 한 마리가 그녀의 종아리를 감으면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투명한 호박을 방불케 하는 눈을 가진 그놈은 새빨간 혀를 날름거렸다…
  • 어려서부터 도시에서 자란 남수아와는 달리, 열아홉 살 전까지 줄곧 시골에서 자란 그녀는 뱀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늘 친구들과 함께 논밭이며 강에서 뱀을 잡아 같이 놀고는 했다.
  • 나중에 도시에 오고 나서 남연아는 뱀을 몇 번 보지 못했다.
  • 남연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종아리를 감고 있는 흰 뱀을 잡아 자신의 앞에 가져다 손가락으로 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요놈, 너 참 특이하게 생겼구나.”
  • 만약 주인이 없다면 남연아는 흰 뱀을 데려다 남은석한테 선물해서 애완동물로 키우게 할 생각이었다.
  • “눈덩이를 무서워하지 않네요?”
  • 이때 앳된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 “눈… 눈덩이?”
  • 흰 뱀을 보고 있던 남연아는 문 어귀에 서 있는 남자애한테 시선을 옮겼다.
  • 피부가 하얗고 예쁘게 생긴 남자애 한 명이 새까맣고 커다란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애의 외모는 남은파, 남은석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약간 닮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남연아는 그를 보자마자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그녀는 흰 뱀을 들고 박진봉한테 걸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 “이 뱀이 네 것이야? 귀엽다!”
  • 남연아는 웃으면서 꼬맹이의 검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 “뱀 이름이 눈덩이야?”
  • 꼬맹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낮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 “못생겼는데 담은 꽤 크네. 눈덩이를 보고 마구 소리 지르는 아줌마들보다는 낫네.”
  • “자, 돌려줄게.”
  • 남연아는 흰 뱀을 박진봉의 손에 올려놓았다.
  • 박진봉은 콧방귀를 뀌면서 그녀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방금 못생겼다고 했는데 왜 화를 내지 않는 거죠?”
  • 가죽 가면을 쓴 목적이 밉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기에 남연아는 당연히 개의치 않았다.
  • “못생긴 건 사실인데 화낼 게 뭐 있어.”
  • 남연아는 박진봉의 보송보송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 “원래 못생겼는데 화내면 더 못생겨지잖아.”
  • 박진봉이 다섯 살 될 때까지 할아버지 말고는 그의 머리를 만져본 사람이 없었다.
  • 그의 아빠는 한 번도 만진 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럴 담이 없었다. 그리고 그를 낳아준 그 여자도 그의 말 몇 마디에 놀라서 그한테 다가가지도 못했다.
  • 이 아줌마가 머리를 만질 때 박진봉은 마음이 더없이 따뜻했다. 이런 느낌이 그는 처음이었다…
  • “당신… 당신…”
  • 꼬맹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 “응? 왜?”
  • 남연아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 “여자, 당신이 내 머리를 만졌으니 나를 책임져야 해요.”
  • 박진봉은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 “이 박진봉의 여자가 돼줘요. 아무도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내가 평생 최선을 다해 지켜줄 테니까!”
  • 남연아는 참다못해 픽 소리를 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 ‘우리 은파, 은석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나한테 고백한 거야?’
  • 깜찍한 애 입으로 거만하고 멋있고 폭발적인 발언을 하자 웃음이 절로 났다.
  • “왜 웃어요?”
  • 박진봉은 포동포동한 얼굴로 엄숙하게 물었다.
  • “내 마음에 들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은데 당신이 첫 번째예요. 나와 눈덩이가 모두 당신을 싫어하지 않으니 오늘부터 내 옆에 남아서…”
  • ‘이 아이의 아빠가 이 말을 들으면 아마 기절할 텐데.’
  • 남연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 남자의 시선은 날카로웠고 목소리는 차가웠다.
  • “박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