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4화 여자 꼬시는 법

  • 박시현은 남연아와 얘기를 다 나누고 나서 기사를 시켜 남연아를 집까지 바래다주라고 안씨 아저씨한테 지시했다. 그는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는 쪽지를 손에 들고 들여다보았다.
  • 그녀는… 그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뜻밖에도 박진아뿐만 아니라 박진봉까지 그녀를 좋아했다! 두 녀석은 그를 조금 무서워하고 그의 말을 듣는 것 외에는 삼촌, 친척들, 안씨 아저씨를 포함한 고용인 중에 두 녀석을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두 녀석이 그녀를 싫어하지 않을뿐더러 그 자신도 그녀가 싫지 않았다.
  • 차 안에서 있었던 야한 장면이 떠오른 박시현은 아랫배 쪽에 있는 그 맹수가 또 꿈틀거리려고 한다는 걸 느꼈다.
  • ‘제기랄! 내가 언제부터 한 여자 때문에 자제력을 잃었지?
  • “똑똑.”
  •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들어와.”
  • 박시현은 한번 본 건 잊어먹지 않았다. 그 여자가 번호를 쓸 때 그는 이미 다 기억했다.
  • 하지만 그는 그 쪽지를 휴지통에 버리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
  • 박시우가 걸어 들어오더니 거리낌 없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 “형, 성동 땅은 내가 이미 얘기 끝냈어.”
  • 박시우는 형의 칭찬을 기대하며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 박시현은 차갑게 그를 흘끔 보았다.
  • “너 평소에 진봉이랑 함께 있으면서 여자 꼬시는 방법을 가르쳤어?
  • 박시우는 급한 마음에 입귀를 실룩거렸다.
  • “하늘을 걸고 맹세해! 진봉이는 우리 박씨 가문 새싹이야. 내가 아무리 겁이 없어도 그한테 그런 걸 가르치겠어!”
  • “앞으로 진봉, 진아와 함께 있을 때 다른 여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마.”
  • 박시우는 어리둥절해졌다.
  • “응?”
  • “네가 가르치지는 않아도 네가 하는 걸 보고 배웠겠지.”
  • 박시현의 눈빛은 차가워졌다.
  • “앞으로 진봉이 너를 따라 이상한 말을 하는 거, 내 눈에 띄게 하지 마.”
  • “이상한 말? 내 조카가?”
  • 궁금해진 박시우는 박시현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 “꼬마 도련님이 형을 닮아…얼마나 도도하다고. 형 말고 누구 말도 안 듣는 애가 누구한테 그런 말을 했어?”
  • “너도 알아. 남연아.”
  • 박시우는 멍해졌다.
  • “남연아? 그 여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진아가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제는 진봉이 그 악마 녀석도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 “몰라. 정체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난 그녀가 진아의 치료에 협조해주겠다고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 “형, 그 여자 생긴 건 진짜 별로지.”
  • 박시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 “예쁘기만 했으면 두 녀석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으로 형도 꼬셨을 텐데!”
  • 박시우의 말이 끝나자 닫히지 않은 문 어귀에 그림자 두 개가 나타났다.
  • “작은삼촌, 혹시 눈이 잘못됐어요?”
  • 박진봉이 미간을 찌푸렸다. 통통한 그의 얼굴에는 박시우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 “내… 내 눈이…”
  • “어떻게 못생겼다는 건데요?”
  • 박진봉은 증명해줄 사람이 필요한 듯 동생을 훑어보았다.
  • “못 믿겠으면 진아한테 물어보세요.”
  • 아기 판다 인형을 안고 있던 박진아도 앙증맞은 얼굴에 모처럼 엄숙한 표정을 짓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 박시우가 본 남연아는 주근깨투성이에 한 쌍의 예쁜 눈 말고는 예쁜 구석이 없었다.
  • ‘도대체 어디가 예쁘다는 거야?’
  • 하지만 남매의 적개심 어린 시선에 그는 형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했다.
  • “형, 이리 와서 바른말 좀 해봐.”
  • 저도 모르게 생기 있는 그녀의 두 눈이 떠오른 박시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예쁘지.”
  • 박시우는 할 말을 잃었다.
  • ‘말해서 뭐 해?! 말하지 말자! 어른이나 애들이나 남의 편을 드는 것도 모자라 눈까지 멀었네!’
  • 저녁에 호텔에서 머물던 남수아는 참다못해 박씨 가문에 전화를 걸었다.
  • 5년이나 지났지만, 남수아는 박시현의 휴대폰 번호를 몰랐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박씨 가문으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 한참 지나서 전화가 걸렸다.
  • “네. 박씨 저택입니다.”
  • “아저씨, 저예요.”
  • 남수아는 미소를 지었다.
  • “시현 씨 있어요? 아이들의 근황에 관해 그와 얘기 나누고 싶어요.”
  • “남수아 씨, 큰 도련님과 둘째 도련님은 서재에서 공적인 일로 얘기하고 있어서 전화 받기 좀 불편할 것 같아요.”
  • 안씨 아저씨는 사실대로 말했다.
  • “그래요…”
  • 실망한 남수아는 자신의 옷깃을 꽉 쥐었다.
  • 자애로운 엄마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남수아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계속했다.
  • “진아와 진봉이, 요새 말은 잘 들어요? 지난번에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들과 함께 놀아주지도 못하고 떠났는데 그들이 시현 씨한테 뭐라고 일러바치지는 않았나요?”
  • 남수아와 박진봉, 박진아 사이의 비밀을 알 리가 없는 안씨 아저씨는 남수아가 두 아이와 함께 살지 않아서 친숙하지 않은 줄 알고 남수아의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했다.
  • “꼬마 도련님과 아가씨는 잘 지내고 있어요. 특히 오늘 도련님이 손님 한 명 데려왔는데 저는 꼬마 도련님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상냥하게 구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어요…”
  • “상냥하게 대했다고요?”
  • 남수아는 혈연으로는 그들의 이모였고, 신분으로는 그들의 엄마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친절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말할 줄 모를 때는 그녀를 물었고 말할 줄 안 다음에는 그녀를 무시하지 않으면 괴롭히고는 했다.
  • “아저씨, 무슨 손님인데요?”
  • 남수아는 무심한 척하면서 물었다.
  • “남씨 성을 가진 아가씨였어요.”
  • 남수아는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 ‘남씨? 나와 같은 성이야? 게다가 진봉이가 상냥하게 굴었다고?’
  • 마음속 깊이 숨겨놓았던 비밀이 드러날 것 같은 불안감이 점점 더 몰려왔다.
  • “아저씨, 그 아가씨의 이름 혹시 아세요?”
  • 안씨 아저씨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대답했다.
  • “무슨… ‘아’라고 하던데? 맞다, 남연아라고 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