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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공항에서 주운 귀염둥이

  • 5년 후, 서울 공항에서.
  • 남색 멜빵 바지에 체크 남방을 입은 남자아이가 공항 로비에 나타나자 수많은 눈길을 끌었다. 곱슬머리에 세련되고 입체감 있는 이목구비, 인형처럼 짙고 위로 올라간 속눈썹, 어려서부터 놀랍도록 잘생겼는데 크면 또 얼마나 많은 소녀의 심금을 울릴까.
  • 남자아이의 엄마는 또 어떤 절세미인일까,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을 때 주근깨투성이에 납작한 코, 두꺼운 입술을 가진 한 여자가 남자아이를 불렀다.
  • “우리 아들, 콜라 아직 못 샀어?”
  • “엄마, 다 샀어요.”
  • 엄마라는 말에 소녀, 아주머니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했다.
  • ‘아들은 왕자님인데 엄마는 왜 이렇게 메줏덩어리야?’
  • 엄마가 무서울 정도로 못생긴 가죽 가면을 쓰고 나서부터 줄곧 이런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에 남은석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 그는 남연아 옆으로 가서 콜라를 건네주고는 자신은 얌전히 물을 마셨다.
  • “엄마, 이렇게 못생긴 가면을 언제까지 쓰시려고요?”
  • “우리 아들, 엄마가 못생겨서 싫어?”
  • “엄마, 내가 어떻게 엄마를 싫어하겠어요? 난… 엄마가 너무 오래 쓰고 있으면 갑갑해할까 봐 그러죠.”
  • 남은석은 괜히 속이 켕겼다.
  • ‘난 우리 엄마를 못생겼다고 말할 자격이 없어!’
  • 남씨네 세 식구 중에서 가장 못생긴 남은석은 선녀처럼 예쁜 자신의 엄마를 말할 자격도, 그럴 담도 없었다.
  • “우리 아들, 자신이 못생겼다는 걸 알면 됐어.”
  • 길 가던 사람들은 안색이 변했다.
  • ‘우리의 눈이 잘못된 건가? 우리 눈에는 엄마가 아들보다 훨씬 못생겼는데!’
  • 공항 통유리창 너머로 남연아는 익숙하고도 낯선 이 도시를 바라보면서 입귀를 살짝 올렸다.
  • ‘5년이야. 결판을 낼 때가 된 것 같아!’
  • 남연아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피부가 하얀 여자아이 하나가 갑자기 그녀의 다리에 부딪히며 발라당 바닥에 넘어졌다.
  • 남연아는 급히 쪼그리고 앉아 여자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 “안 다쳤어? 괜찮아?”
  • 박진아는 머루 같은 눈을 반짝이며 뚫어지게 남연아를 쳐다보면서 아프다고 울지도 않고 앳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엄… 엄마…”
  • 남은석이 뾰로통해서 말했다.
  • “야! 무슨 엄마를 함부로 불러! 우리 엄마야. 네 엄마가 아니라고!”
  • 박진아는 남은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남연아를 덥석 끌어안았다.
  • 남연아 품속의 이 꼬마는 마치 그녀를 잃을까 봐 두려운 듯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 질투심이 난 남은석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남연아가 입을 다물라고 눈치를 주자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옆에 서서 꿀꺽꿀꺽 물을 다 마셔버렸다.
  • “너 엄마와 헤어졌어? 엄마 어디 계셔? 엄마 찾으러 갈까?”
  • 박진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한사코 고개를 흔들었다.
  • 남연아는 꼬마가 불안해서 그러는 줄 알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아줌마를 믿어줄래? 아줌마가 꼭 엄마를 찾아줄게.”
  • 다섯 살 박진아는 말할 줄도, 소리를 낼 줄도 몰랐지만, 오늘 남연아를 만나자 왠지 그녀가 좋았고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소리가 나왔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박진아는 남연아한테 기대고 싶었다.
  • 꼬마는 고집스레 남연아를 보면서 계속 입으로 중얼거렸다.
  • “엄… 엄마…”
  • 남연아는 이 꼬마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남은석은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 한편 꼬마 아가씨를 찾아 헤매던 박씨 가문 둘째 도련님 박시우는 박진아를 보자 마음속으로 천지신명한테 감사했다!
  • ‘꼬마 아가씨를 찾지 못했더라면 난 형한테 죽었을 거야!’
  • 박시우가 상관없는 여자와 함께 있는 박진아를 안아 가려고 하는데 여태 소리를 내본 적 없는 박진아가 옹알이했다.
  • “엄마…”
  • 깜짝 놀란 박씨 가문 둘째 도련님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박진아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 “우리 공주님, 방금 뭐라고 했어? 한 번만 더 말하면 안 돼?”
  • 박시우를 본 꼬마는 남연아를 가리켰다.
  • “엄… 엄마…”
  • 박시우가 박진아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보니 얼굴이 주근깨투성이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평범한 얼굴이 보였다.
  • ‘뭐야? 우리 공주님이 이 여자를 엄마라고 불렀어?’
  • 박시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 “당신? 우리 진아한테 무슨 짓을 했어요?”
  • “당신이 애 아빠예요? 무슨 낯으로 저한테 따지는 거죠?”
  • 꼬마가 안전감이 부족하다고 여긴 남연아가 참다못해 말했다.
  • “이렇게 귀여운 딸을 소중히 여길 줄도 몰라요. 얼마나 힘들면 저한테 엄마라고 하겠어요?”
  • 박시우는 또 한 번 어리둥절해졌다.
  • “당신한테 엄마라고 불렀어요?”
  • 남연아는 눈을 흘겼다.
  • “그럼 당신한테 그랬겠어요?”
  • “…”
  • 박시우는 몇 번 더 확인하고서야 이 불가사의한 일을 믿게 되었다.
  •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진아 둘째 삼촌 박시우라고 합니다.”
  • “제가 조금 전에 그렇게 놀랐던 건, 진아가 어려서부터 실어증을 앓고 있어서 아무한테도 소리를 낸 적이 없어서예요.”
  • 꼬마가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하자 남연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갑자기 그녀는 박진아가 가엾게 느껴졌다.
  • “진아야, 이 사람, 믿을 만한 삼촌이야?”
  • 박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진아야, 삼촌 말이 맞아? 너 실어증에 걸렸어?”
  • 박진아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 “삼촌이 찾으러 왔으니 삼촌과 함께 집에 가렴.”
  • 남연아는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박진아는 말썽을 부리지도 않고, 남연아가 남은석을 데리고 떠나가는 모습을 얌전히 지켜보았다. 박시우는 박진아한테 어떻게 갑자기 입을 열었는지 물어보려고 무의식중에 박진아를 흘끗 보고 깜짝 놀랐다.
  • 박진아는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코가 다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