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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을 빼앗기 일초 전

네 마음을 빼앗기 일초 전

트윙클

Last update: 2021-10-14

제1화 전 후회하지 않아요

  • 뜨거운 기운이 등 뒤에서부터 천천히 스며오고 습하고 더운 호흡이 귓가를 적셨다.
  • “처음이야?”
  • 낯선 기운이 귓가를 휘감아 몸이 덜덜 떨렸지만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 임세연은 남자가 움찔하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이어서 다시 한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돌이키는 것도 가능해.”
  • 그녀는 긴장한 듯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 “전 후회하지 않아요….”
  • 그녀는 열여덟 살, 꽃다운 나이었다, 그런데….
  • 아팠다!
  •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그녀를 남자의 품에서 떨게 만들었다.
  •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임세연은 입술을 깨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첫 경험이 그녀에게 주는 두려움 외에도 이 남자로부터 전해져오는 강한 기골과 놀라운 힘을 그녀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 그는 지치지 않는 듯 그녀의 피부 한자락까지 격하게 공격했다. 그 밤은 고통스럽고 길었다.
  • 드디어 한밤중에 남자가 욕실로 향했고 임세연은 지친 몸을 이끌고 일어나 옷을 걸치고 방문을 나갔다.
  • 호텔 아래층에는 그녀에게 이 거래를 소개한 중년 여자가 임세연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더니 검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 “이건 너의 보수야.”
  • 망설임 없이 바로 돈을 받아 든 임세연은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몸 아래쪽의 통증도 간과한 채 그저 병원에 빨리 가고 싶었다.
  • 날이 밝지 않아 복도는 조용했고 수술실 앞 바닥에 들것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돈을 내지 않아 수술실로 보내지지 않은 것이다.
  • 임세연은 가슴이 저려와 울먹이며 말했다.
  • “저 돈 있어요, 저 돈 있으니 빨리 제 엄마와 동생을 살려주세요.”
  • 그녀는 흐느끼며 손에 쥔 돈을 의사에게 건넸다. 의사는 한 번보고는 간호사에게 액수를 확인시키고 나서야 의료진을 불러 부상자를 수술실로 옮겨지게 했다.
  • 그들이 자신의 동생을 밀고 들어가지 않자 임세연은 바로 달려들어 의사를 붙잡고 간청했다.
  • “제 동생도 있어요,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 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 “죄송합니다. 동생분은 이미 늦었습니다….”
  • 늦었다니?!
  • 벼락이라도 친 듯 임세연의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에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 아팠다. 칼로 가슴을 쑤시는 것 같았다. 아파서 경련까지 일어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8년 전, 그녀가 열 살 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엄마를 버리고 임신한 엄마와 그녀를 낯선 외국으로 내보냈다.
  • 나중에 동생이 태어났는데 세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원래도 빠듯한 생활 형편이 동생이 아프자 더더욱 설상가상이었다. 그녀는 엄마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교통사고로 가족도, 돈도, 인정도 없는 외국에서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닿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자신을 팔았지만 동생을 구할 수 없었다.
  • 그런 아픔이 있다. 히스테리를 부릴 수조차 없고 단지 거북하다고만 느껴지는. 호흡이 곤란하고 하늘은 잿빛이다. 하지만 반드시 감당해야 한다, 또한 웃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 엄마는 그녀를 필요로 한다.
  • 치료를 받고 엄마의 몸은 호전되었지만 동생의 죽음을 듣고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 임세연이 그녀를 안고 울면서 말했다.
  • “엄마, 엄마한테 아직 내가 있잖아, 날 위해서라도 살아줘.”
  • 병원에 있는 한 달 동안 장자영은 자주 침대 옆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임세연은 안다. 그녀가 동생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는걸. 만약 자신이 아니라면 엄마는 동생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녀는 엄마를 돌봐야 해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하지만 다행히 엄마의 부상은 이미 호전됐다.
  • 임세연은 먹을 음식을 들고 병실 입구로 걸어갔다. 그녀가 손을 들어 문을 막 열려고 할 때 안쪽의 소리가 들렸다….
  • 익숙한 목소리였다. 8년이 지났는데도 그가 엄마에게 이혼을 강요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 그들을 이곳에 보내고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지 않았으면서 오늘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것은 무슨 의미인가?
  • “자영아, 네가 정 씨 가문 사모님과 절친한 사이라서 아이들끼리의 혼사를 정했잖아. 도리대로 한다면 네가 정한 일이니 네 딸이 시집가야지….”
  • “임국안 너 지금 무슨 뜻이야?”
  • 자영은 여윈 몸으로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을 일으켜 그를 때리려고 발버둥 쳤다. 그는 이러고도 사람이란 말인가?
  • 그녀와 딸을 사람도 설고 땅도 선 이 괴상한 곳에 안치하고 그들의 생사를 돌본 적도 없다가 오늘에 와서야 하는 말이 그녀의 딸더러 시집을 가라고?
  • “정 씨 가문의 큰 도련님은 네 절친의 아들이기도 하잖아. 잘 생겼고, 정 씨 가문의 문벌도 알잖아. 시집을 가면 호강만 할 거야….”
  • 그는 말끝을 흐렸다.
  • 정 씨 가문의 큰 도련님은 존귀하고 용모가 빼어났다. 하지만 한 달 전에 출국하여 일을 보다가 독사에 물려 신경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고 성 기능을 상실하였다.
  • 시집가면 생과부나 다름없었다.
  • “제가 시집갈게요.”
  • 임세연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문 앞에 섰다. 그녀는 도시락을 꼭 쥐고 말했다.
  • “시집은 가도 되지만 조건이 있어요.”
  • 임국안은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8년 만에 딸을 보고 순간적으로 몇 초 동안 얼떨떨해 있었다. 그녀를 보냈을 때 그녀는 열 살배기 아이였는데 지금은 어른이 되었다. 피부는 희지만 심하게 마른 편이고 얼굴은 손바닥보다도 작았다. 바짝 말라 생기가 전혀 없어 발육이 안 된 것 같았다.
  • 어떻게 그의 집의 딸처럼 환심을 사겠는가.
  •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 줄었다. 필경 그녀는 그렇게 예쁜 것이 아니니 설령 남자구실을 하지 못하는 남편과 결혼한다고 해도 그리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하니 임국안도 안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 되었다.
  • “무슨 조건인데, 말해봐.”
  • “전 엄마랑 귀국할 거예요. 엄마에게 속했던 것들을 다 돌려주시면 시집가겠다고 약속할게요.”
  • 임세연은 몇 번이고 손을 꼭 쥐면서 천천히 침착을 되찾았다.
  • 비록 장기간 국내에 있지 않았지만 어릴 적 그녀는 B 시의 정 씨 가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가문이 방대하고 몇 조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니 정 씨 가문의 도련님은 자연히 존귀한 사람일 것이다. 임세연은 이렇게 좋은 일이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정 씨 가문의 도련님은 얼굴이 괴물처럼 생겼거나 아니면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귀국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잘만 이용하면 엄마의 지참금도 되찾을 수 있었다.
  • “세연아….”
  • 장자영은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 혼인 대사는 소꿉장난이 아니라고.
  • 그녀는 자신을 따라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결혼마저 밑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러자 듣고 있던 임국안은 임세연이 장자영에게 설득 당해 시집가지 않겠다고 할까 봐 다급히 말했다.
  • “그래, 네가 시집을 가겠다면 귀국시킬게.”
  • “엄마의 지참금은요?”
  • 명목상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임세연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 처음에 장자영이 그에게 시집올 때 혼수가 꽤 많았는데 그것은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그걸 지금 임국안더러 뱉어내라 하자 대단히 아까웠다.
  • “제 여동생은 분명 예쁠 텐데 더 좋은 걸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몸이 성치 않은 남자와 결혼하면 일생이 망하잖아요. 하물며 우리 엄마와 이혼했으니 임 씨 가문으로 가져간 돈은 돌려주셔야죠.”
  • 임국안은 눈을 피하며 마음이 켕기어 그녀를 쳐다보지 못했다.
  • 그녀가 계속 외국에 있었는데 그 정 씨 가문의 도련님이 몸이 변변치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 임세연이 추측했다는 것을 임국안은 또 어떻게 알겠는가.
  • 그녀를 비정상적인 남자에게 시집보낸다는 생각에 임국안은 이를 악물었다.
  • “네가 시집을 가면, 줄게.”
  • 그의 어린 딸은 꽃처럼 아름다운데 어떻게 성 기능을 상실한 남자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는가?
  • 아무리 존귀해도 부부의 정사를 치를 수 없다면 폐인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 여기까지 생각하자 임국안도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 하지만 속으로는 임세연이 더 미워보였다. 오로지 그의 손에서 돈을 긁어낼 생각만 하다니.
  • 임국안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 “네 엄마가 너를 잘못 가르쳐서 예의라고는 없구나.”
  • 임세연은 아버지라는 사람은 책임이 없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를 여기에 버리고는 상관하지 않았으면서.
  •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손에 쥔 패가 너무 약해 임국안을 자극하는 건 득이 되지 않았다.
  • “준비해, 내일이면 돌아갈 거야.”
  • 임국안은 병실을 박차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