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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른 여자랑 결혼한 아빠

  • 아들의 시선을 눈치챈 구현승은 선물을 달라는 줄로 생각했다. 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이렇게 말했다.
  • “아빠 이번에 시간이 없어서 선물 못 샀어. 다음에 사다 줄게, 응?”
  • 출장 갈 때마다 구현승은 늘 녀석에게 선물을 사다 주곤 하였다. 하지만 매번 좋은지 싫은지 표현이 없어 이번에는 사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이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걸 보니 구현승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윤시후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하여 솜사탕을 먹었다.
  • 그때 앞에 앉아있던 문혁수가 갑자기 한마디 했다.
  • “대표님, 저기 미영씨!”
  • 윤시후는 귀를 쫑긋 세웠다.
  • ‘미영씨는 누구야?’
  • 그러자 구현승의 두 눈에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여자와 옆에 앉아있는 녀석을 번갈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 ‘이 녀석 날 마중 나온 게 아니라 엄마 마중 나온 거였어?’
  • 안미영은 낯익은 차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밖에 있던 경호원은 그녀를 보자마자 정중하게 예의를 차렸다.
  • “안미영씨!”
  • “네, 현승씨 있죠?”
  • 그러더니 차 문을 덜컥 열었다. 차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본 순간 그녀는 심장이 빨리 뛰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 “현승씨!”
  • 하지만 구현승은 무덤덤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 “절 데리러 왔어요?”
  • 안미영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 “방금 출장 갔다 오는 길이야.”
  • 구현승의 말에 안미영은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 “이런 우연이, 저도 방금 스케줄 마치고 오는 길이에요.”
  • 그녀는 차에 올라타 윤시후의 옆에 앉더니 윤시후를 번쩍 안아 들었다.
  • “우리 준호 엄마 마중 나와서 너무 기뻐! 엄마 보고 싶었어?”
  • ‘엄마?’
  • 윤시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순식간에 굳어진 얼굴로 안미영을 노려보았다.
  • ‘보고 싶긴, 이 여잔 누구야? 아빠가 다른 여자랑 결혼했어? 설마 이 여자 때문에 엄마랑 우릴 버린 거야?’
  • 윤시후는 화난 나머지 입을 삐죽거렸다.
  • ‘우리 친엄마도 아니면서 엄마는 무슨 엄마. 향수 냄새도 너무 지독해.’
  • “에취!”
  • 냄새가 너무 지독해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윤시후는 안미영을 향해 재채기했다.
  • 자신의 몸에 뭔가가 튄 걸 느낀 안미영은 굳은 얼굴로 윤시후를 내팽개치더니 휴지를 꺼내 닦았다. 그러고는 큰소리로 혼을 내려 하였다.
  • “너...”
  • 하지만 구현승이 옆에 있어 치밀어 오른 분노를 가까스로 누르더니 다시 환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고는 윤시후를 걱정하는 척 이마를 만지면서 물었다.
  • “준호야, 감기 걸렸어?”
  • ‘어린 녀석이 감히 나한테 침을 뱉어?’
  • 윤시후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가 자신을 만지는 것조차 싫어 구현승한테 몸을 기댔다.
  • ‘이 여자 아까 분명히 날 욕할 뻔했는데 인제 와서 가식을 떨며 걱정하는 척하고 있네. 흥, 그딴 관심 필요 없어.’
  • 윤시후가 자신을 멀리하자 안미영은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 ‘빌어먹을 자식, 이따가 집에 가서 다시 보자. 감히 내 체면을 구기다니!’
  • 안미영은 윤시후가 애지중지하며 들고 있는 솜사탕을 보자마자 아이를 위하는 척하며 솜사탕을 빼앗아 차 안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 “이런 불량 식품 먹어선 안 돼. 충치 생겨.”
  • ‘내가 먹게 하나 봐라.’
  • “어떻게 내 걸 함부로 버릴 수 있어요? 이 못생긴 아줌마!”
  • 일부러 버린 걸 눈치챈 윤시후도 화를 버럭 내며 안미영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에는 자신이 구준호를 대신하고 있다는 걸 깜빡 잊었다.
  • 윤시후는 화난 얼굴로 안미영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 단 한 번도 아이가 이렇게까지 자신한테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안미영은 순간 멍해졌다.
  • ‘구준호 이 자식 감히 나한테 화를 내? 버르장머리 없이.’
  • “엄마는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지. 엄마한테 못생긴 아줌마라니, 누가 그렇게 가르쳤어? 현승씨, 준호 왜 이렇게 됐어요? 전 그저 얘를 위해서...”
  • 그러자 안미영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마치 아들한테 큰 상처라도 받은 것처럼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 윤시후는 그런 그녀를 째려보았다.
  • ‘연기 참 잘하네.’
  • 구현승도 이렇게 화를 내는 아들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화나면 기껏해야 한마디 정도 하고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는데 며칠 못 본 사이에 성격이 약간 변한 것 같다.
  • “구준호, 엄마한테 사과해.”
  • 구현승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안미영이 아무리 싫어도 구준호의 엄마이다. 가까운 사이에 서로 혐오해서 싫어하면 되겠는가! 게다가 조금 전 녀석은 홧김에 한 말이었다.
  • “사과하라고요? 싫어요! 일부러 저의 물건을 던졌는데 제가 왜 사과해요?”
  • 윤시후는 자신의 고집불통인 성격대로 안미영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 ‘이 못생긴 아줌마 때문에 우리가 아빠한테 버림받았어.’
  • 윤시후는 힘들게 형제들을 키우고 있는 윤사랑을 떠올렸다. 그들은 태어날 때 하마터면 다른 이한테 죽임을 당할 뻔했다. 그 생각에 윤시후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고 너무도 억울하고 화가 났다.
  • 그러다 보니 구현승도 미워져 차 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 “차 세워주세요. 저 내릴래요!”
  • ‘아빠는 뭔 아빠야, 나보고 이 못생긴 아줌마한테 사과하라고? 아빠 필요 없어.’
  • 그러자 구현승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가려는 녀석을 덥석 잡아 품에 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 어린아이가 어른한테 버릇없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구현승도 더는 참지 않았다.
  • 자신의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무섭게 노려보며 싸늘한 얼굴로 화를 내는 구현승을 보자 윤시후는 억울하다는 듯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너무도 마음이 아프게 들려왔다.
  • “당신은 저의 아빠가 아니라 나쁜 사람이에요!”
  • 구현승은 굳은 얼굴로 품에서 큰 소리로 울고 있는 윤시후를 쳐다보았다.
  • “엉엉...”
  • 녀석의 울음소리는 어찌나 쨍쨍한지 귀청이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 “현승씨, 애를 혼내지 말아요. 준호야, 엄마한테 와.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먹고 싶으면 엄마가 새로 사줄게, 응?”
  • 안미영은 윤시후한테 다가가 안으려 했다. 하지만 윤시후는 구준호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를 싫어하기도 모자랄 판인데 말을 들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윤시후는 이 여자 때문에 자신이 구현승한테 혼이 났다고 생각했다.
  • “저랑 말 섞지 말아요. 저 싫어하면서 왜 계속 가식을 떨어요?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라 가짜예요!”
  • 윤시후는 안미영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차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 안미영은 놀라움과 당혹감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 ‘이 자식 어떻게 알았지?’
  • 그녀는 찔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구현승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구현승은 그저 차가운 얼굴로 품에 안은 녀석을 쳐다만 볼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현승씨, 준호...”
  • 순간 그녀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아이한테 버림을 받아 속상해하는 척 윤시후를 쳐다보고는 달래주었다.
  • “준호야, 엄마가 왜 우리 준호를 싫어해? 넌 엄마가 10개월을 뱃속에 품어서 낳은 아들이야. 하마터면 난산 때문에... 엄마가 전화하지 않아서 화나서 그래? 너무 바빠서 연락 못 했어. 이제부터는 자주 전화할게, 응? 화내지 마. 화내면 엄마 속상하단 말이야...”
  • 윤시후는 모성애가 넘치는 엄마인 척 연기하는 안미영을 째려보았다. 그는 구현승의 반응도 몰래 살펴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구현승과 눈이 마주친 순간 윤시후는 또다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 “다 절 싫어하잖아요. 제가 짐이 돼서 싫어하는 거죠?”
  • 윤시후는 지금 이 상황에 경솔하게 행동해서 안미영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들키지 않아야만 나중에 이 여자의 뒤통수를 칠 수 있으니까.
  • 윤시후는 무척이나 억울한 얼굴로 어깨까지 들썩이며 훌쩍거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