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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그 여자도 안씨였어

  • 윤사랑은 GK 그룹에서 나온 뒤 실망을 안고 하늘 높이 치솟은 건물을 바라봤다.
  • 그녀는 자신이 큰 문제 없이 앞으로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했었는데 뜻밖에도 결과가 좋지 않아 다른 곳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 세상에 회사가 GK 그룹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 그녀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혁수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왜 문혁수가 전화한 건지 의문이 들었던 그녀는 미간을 구긴 채로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문 실장님.”
  • “안녕하세요, 윤사랑씨.”
  • 문혁수는 인사에 응하며 떠보듯 물었다.
  • “윤사랑씨, 저희 회사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죠?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라면 다시 얘기를 나눠보죠. 저희 구 대표님께서 윤사랑씨의 재능을 매우 높게 사셔서 다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윤사랑은 문혁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잠깐 넋을 놓았다.
  •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그들이 아직 자신이 그 여자에게 쫓겨난 사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구 대표님의 약혼자분이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심한 말을 하시면서 저를 내쫓으셨죠. 그러니 저도 굳이 귀사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다른 곳을 알아보려고요.”
  • 문혁수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 “혹시 미스 안 말씀이십니까?”
  • ‘미스 안?’
  • 윤사랑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 이름은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있던 원한을 삽시간에 불러일으켰다.
  • 문혁수가 말한 그 사람이 과연 그 여자일까? 아니면 그냥 성이 같은 다른 사람일까?
  • 그녀는 그 미스 안이 왜 자신의 아이를 빼앗아 간 건지 알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거니와 아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다른 이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폐건물 안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다.
  • 처음에 그녀는 범인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모든 게 다 의심스러웠다.
  • 그 암울했던 나날들을 그녀는 절대 잊을 수 없었고 그 여자 또한 반드시 찾아내 그때의 복수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자신의 아이를 찾는 것이었다.
  • “윤사랑씨?”
  • 문혁수는 그녀에게서 대답이 없자 그녀를 몇 번이나 불렀고 윤사랑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 “아, 네!”
  • “윤사랑씨, 그러니까 윤사랑씨께서는 저희 구 대표님과 합의를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미스 안에 의해 쫓겨났다는 말씀이신가요?”
  • 문혁수는 경악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윤사랑이 대표님과 원만한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떠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안미영이 중간에 끼어든 것이었다.
  • “전 구 대표님하고 만난 적도 없습니다. 만나기 전에 쫓겨났죠. 미스 안께서 그러시더군요. 자기 눈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이 구 대표님 눈에 들 리가 없다고 말이죠.”
  • 윤사랑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전의 추측으로 인해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문혁수에게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 “귀사는 저 같은 사람이 다니기엔 너무 과분한 것 같네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 걸까?’
  • 안미영의 목소리는 5년 전 그 여자의 목소리와 사뭇 달랐다. 그녀의 아이를 빼앗아 간 여자는 목소리가 좀 더 허스키했었다.
  • 윤사랑은 조금 전 만났던 그 여자의 모습을 다시 한번 자세히 되돌이켜봤다. 안미영은 그녀를 봤을 때 아주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윤사랑은 당시 그녀가 구현승의 사무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자신을 봐서 놀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되짚어보니 분명 자신의 얼굴을 아는 듯했다.
  • 그리고 그 여자는 이어 오만한 자태를 보이며 자신에게 영문 모를 적의를 품고는 자신을 빨리 내쫓으려 했었다.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발끝에서부터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 구현승의 사무실 앞에서 만났던 그 여자가 몇 년 전의 그 여자가 맞을까?
  • 만약 맞다면 자신의 아이는 그 여자의 곁에 있는 걸까?
  • 윤사랑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인터넷 검색창에 구현승의 약혼녀를 검색했다. 만약 그 여자가 진짜 구현승의 약혼녀라면 기사가 났을 게 분명했지만 윤사랑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그래서 그녀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 설마 구현승이 자신의 사적인 정보들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전부 차단한 걸까?
  • 하긴, 구현승은 신분이 특별했으니 기자들이 기사를 내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그 여자도 안씨라니, 문혁수에게 묻는다면 그녀의 이름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조사하기 쉬워질 것이었다.
  •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윤사랑은 얼른 문혁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문혁수는 핸드폰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문혁수는 구현승의 사무실에 가서 조심스레 구현승의 안색을 살폈지만 그의 기분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 “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냥 나가서 일해.”
  • 구현승의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문혁수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 “대표님, 조금 전에... 윤사랑씨께 연락해봤습니다.”
  • 문혁수는 구현승의 눈빛을 받았음에도 눈 딱 감고 말했다.
  • “윤사랑씨께서 말씀하시길 대표님의 약혼녀께서 자신을 쫓아냈다고 하셨어요.”
  • 정적이 일었고 문혁수는 감히 구현승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 “내 약혼녀가?”
  • 구현승은 냉소를 흘렸다. 그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조소는 안미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윤사랑을 향한 것이었다.
  • 문혁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 안미영이 그를 홀리기라도 한 건지 문혁수는 연신 그녀를 변호하고 있었다.
  • “핑계는 잘 대네. 쫓아냈는데 뭐? 그런 사람은 쓰면 안 돼. 너한테 확인하지도 않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어?”
  • 구현승은 문혁수에게 경고를 날렸다.
  • “그 여자한테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사람 알아봐. 그 여자가 없다고 해도 GK 그룹은 잘 돌아갈 거니까. 나가!”
  • 구현승은 기분이 좋지 않은지 문혁수를 단단히 혼냈고 문혁수는 코를 쓱 만지더니 몸을 돌려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 문혁수는 윤사랑이 굉장한 인재라고 느꼈고 대표님이 그녀의 사정을 조금 봐주길 원했다. 따로 사람을 찾는 일도 그렇게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 그들이 찾으려는 사람은 그냥 평범한 엔지니어가 아니라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였다.
  • 다른 한 편, 안미영은 지하 차고에 도착해서 잔혹한 눈빛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전전긍긍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 “안, 안미영씨!”
  • “날 기억하네?”
  • 안미영은 표독스러운 눈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구현승의 옆에 있을 때 온화한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 “기억하죠. 안미영씨가 아니었다면 저도 지금 같은 생활을 누리지는 못했을 거니깐요.”
  • 여인네는 두려우면서도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안미영씨,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죠?”
  • 몇 년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해오니 여인네는 안미영이 절대 좋은 일로 자신을 찾아온 게 아니라 직감했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 안미영은 코웃음을 치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 “당신 그때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나 조금 전에 그 여자 살아있는 걸 봤다고! 멍청하긴.”
  • “살아있다고요? 그럴 리가요? 저들은 분명 들짐승에게 먹혔을 텐데요.”
  • 여인네는 경악했다.
  • 죽지 않았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 “그 여자가 먹히는 거 직접 확인했어?”
  • 안미영은 그녀를 추궁하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려 했다.
  • 윤사랑이 죽었다면 조금 전 만났던 그 여자는 윤사랑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었다. 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 “저희는... 그때 늑대무리가 쫓아와서 저들을 덮쳤고 찢어발기는 건 봤어요. 그 뒤로는... 계속 보고 있을 용기가 없어서 그냥 갔... 갔어요.”
  • 여인네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직접 그 여자와 아이들이 먹히는 걸 보지 못했다. 수십 마리의 늑대가 있었으니 무서울 만도 했다.
  • 만약 늑대무리가 달려든다면 그들이 차 안에 있다고 해도 도망치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그들은 저 멀리 늑대무리가 여자와 아이들을 공격하는 걸 보고는 그대로 도망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