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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구현승이 화를 내다

  • 윤시후는 몸을 떨고 있었고 집사는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안미영씨, 꼬마 도련님께서 많이 놀라신 것 같습니다.”
  • “집사님, 저것 좀 보세요. 며칠 안 봤다고 그사이에 성질머리가 더 더러워진 것 같아요. 좋은 건 안 배우고 거짓말해서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오늘 단단히 혼을 내야겠어요.”
  • 안미영은 자신의 우아함을 미처 지키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아이를 빼앗아 오려 했고 윤시후는 집사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눈을 부릅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절 꼬집었으면서 안 꼬집었다고 하는 거예요?”
  • 안미영은 순간 아이의 말에 찔렸지만 금방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위엄있는 목소리로 아이를 교육하려 했다.
  • “또 거짓말이야. 조금 이따 아빠가 와서 네가 거짓말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빠가 얼마나 실망하시겠니?”
  • 윤시후는 불쑥 화가 치밀어 옷소매를 거두면서 팔뚝을 보여주며 말했다.
  • “집사 할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저 사람이 저 꼬집었어요.”
  • 아이의 흰 팔뚝 위에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는데 딱 봐도 꼬집혀서 생긴 멍이었다.
  • 집사는 어두운 얼굴로 안미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 “안미영씨, 이 일로 대표님을 불러야겠군요.”
  • 임재순은 단단히 화가 났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안미영이 남몰래 꼬마 도련님을 꼬집었다니, 구씨 일가의 사람들이 괴롭힘을 받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안미영이 아무리 꼬마 도련님의 어머니라고 할지언정 꼬마 도련님을 체벌할 자격은 없었다.
  • 대표님이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아이를 아끼고 있었다.
  • “집사님, 아니, 이건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저 애 스스로가 꼬집은 거겠죠. 준호야, 너 이런 비열한 짓도 하다니, 아빠가 돌아오면 너 단단히 혼내실 거야.”
  • 안미영은 굉장히 불안했다. 아이가 감히 자신한테 반항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그녀는 모든 것을 아이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 “정말 뻔뻔하군요. 분명 당신이 꼬집은 건데. 흑흑... 집사 할아버지, 이 여자 정말 못됐어요. 저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 윤시후는 엉엉 울면서 구현승이 자신을 아끼는지 아끼지 않는지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만약 그가 이 나쁜 여자의 편을 들어준다면 그를 버릴 생각이었다.
  • 집사는 마음이 아려와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 “꼬마 도련님, 울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지금 당장 도련님 불러 드릴게요.”
  • 안미영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잠깐 스쳤다.
  • 만약 자기가 구준호를 꼬집은 사실을 구현승이 알게 된다면 구현승은 그녀를 더 멀리할 것이었다.
  • 어제 이 잡것의 솜사탕을 버렸다는 이유로 이미 그에게 경고받은 뒤였으니 말이다.
  • “집사님, 현승씨는 지금 일하는 중이잖아요. 이깟 일로 현승씨를 방해하지는 마세요.”
  • “안미영씨, 저희 꼬마 도련님한테 이런 짓을 하다니, 안미영씨께서 직접 도련님한테 말씀드리세요.”
  • 임재순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그는 안미영의 행위에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 자신들은 꼬마 도련님이 행여나 다칠까 조심조심하는데 안미영은 감히 남몰래 꼬마 도련님을 꼬집었고 만약 사람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 안미영이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꼬마 도련님이 목욕 시중을 들지 말라고 하면서 스스로 몸을 씻었던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 어쩌면 꼬마 도련님은 줄곧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집사는 얼른 구현승에게 연락했고 자신의 아이가 안미영에게 손찌검당했다는 소식에 구현승의 얼굴 위로 짙게 어둠이 깔렸다. 그는 얼른 집으로 돌아갔다.
  • 안미영은 도망칠 수가 없었다. 지금 도망간다면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니 말이다.
  • 거실 소파에 앉아서 구현승을 기다리는데 심장이 벌렁댔다.
  • 구현승이 아직 그녀를 신경 쓴다면 크게 화내지 않아야 했다. 그녀는 구준호의 어머니였으니 말이다.
  • 아이는 아직 울고 있었고 안미영은 몰래 아이를 째려보았다.
  • ‘예전에는 감히 소리 내지도 못했으면서 왜 오늘, 아니, 어제부터 이렇게 적대적으로 나오는 건지.’
  • 너무 달랐다.
  • GK 그룹에서 윤사랑을 마주쳤던 일이 떠오른 안미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 ‘혹시 윤사랑이 이 잡것과 만난 건 아닐까?’
  • 안미영은 놀라움, 분노와 당황을 한꺼번에 느꼈다.
  • 구현승이 전에 윤사랑과 마주친 적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 이제부터 제대로 대책을 세워서 윤사랑이 절대 살아있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 윤사랑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안미영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 윤사랑은 자신이 다시 한번 덫에 걸려들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 그녀는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하려 했고 네 아이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 “엄마, 저 엄청 많이 먹고 싶어요!”
  • 식탐이 많은 넷째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환호했다.
  • “엄마, 우리 뭐 먹어요?”
  • 둘째도 잔뜩 들떠있었다. 귀국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맛있는 음식 사진을 생각해보니 군침이 돌았다.
  • “너희가 먹고 싶은 거 먹자!”
  • 윤사랑은 눈을 깜빡이더니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웠다. 그러고 보니 셋째가 보이지 않았다.
  • “셋째야, 네 모자는?”
  • “엄마, 저 공항에서 다른 애한테 줬어요.”
  • 구준호는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윤시후의 표정을 따라 했고 윤사랑은 아이가 바뀌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 윤시형은 구준호를 흘깃 쳐다보면서 속으로 구준호가 윤시후를 잘 따라 한다고 생각했다.
  • 다행히도 자신이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 역시도 속아 넘어갈 뻔했다.
  • “내 모자 줄게.”
  • 아이는 자기 모자를 벗어 구준호의 머리 위에 씌워줬다.
  • “난 괜찮은데...”
  • 구준호는 거절했다. 윤시형의 모자였으니 자신과는 상관없는 물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말 들어, 착하지.”
  • 윤시형은 구준호에게 모자를 씌워주더니 싱긋 웃어 보였으나 맏이로서의 기세가 있었다.
  • 구준호는 잠시 당황했다.
  • ‘지금 날 동생으로 보는 건가?’
  • 안미영은 자신을 데려갔고 다른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으니 어쩌면 자신이 맏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자. 엄마가 조금 이따가 모자 하나 사줄게.”
  • 윤사랑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미소 띤 얼굴로 셋째에게 말했고 구준호는 신이 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 “고마워요, 엄마!”
  • 윤사랑은 네 아이를 데리고 쇼핑하고 밥을 먹었다.
  • 구현승은 십 분 내로 집에 도착했다.
  •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아이는 전화할 때부터 울고 있었다.
  • 구현승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그는 안색이 어두웠고 온몸에서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서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 “도련님!”
  • 집사는 구현승이 돌아온 걸 보고는 아이를 안고 다급히 그에게로 걸어갔다.
  • 아이는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은 상태였기에 두 눈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코끝도 빨개져서 집사는 마음이 아렸다.
  • “현승씨...”
  • 안미영은 앞에 나서려 했으나 구현승의 싸늘한 눈빛에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 “아빠, 아빠... 흑흑...”
  • 윤시후는 소리 내 울고 있었으나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드디어 구현승이 집에 돌아왔으니 아이는 울먹거리며 구현승의 품에 안기려 했다.
  • 구현승은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손바닥으로 아이의 등을 살살 두드렸다.
  • “울지 마.”
  • 어색한 위로였지만 목소리는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 윤시후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는데 아이의 눈에 한 줄기 빛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 구현승은 생각보다 자신을 아꼈다.
  • 아이는 자기 팔뚝을 내보이더니 구현승에게 멍을 보여주며 불쌍한 어투로 말했다.
  • “아빠, 저 여자가 절 꼬집었어요!”
  • 멍은 이미 파랗다 못해 보라색이 되어 있었는데 얼핏 핏줄도 보이는 것 같았다.
  • 구현승은 미간을 좁히더니 살기 어린 시선으로 안미영을 쳐다봤다.
  • 안미영은 단 한 번도 구현승에게 그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순간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 “현승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이건...”
  • “꺼져!”
  • 구현승은 분노 가득한 음성으로 싸늘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