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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계속 도망가 보시던지

  • “엄마,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 온지민은 한참이나 보이지 않는 엄마를 찾았다. 그리고 화가 잔뜩 난 엄마를 본 온지민도 인상을 쓰며 물었다.
  • 또 그 나쁜 사람인 게 틀림없어. 엄마를 이렇게 화내게 하다니!
  • “아니야 괜찮아 지민아. 저기…… 엄마가 할 말이 있는데, 지민이랑 지윤이랑 먼저 할머니 집에 가 있을래?”
  • 온주주는 아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더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연이를 구하러 꼭 그의 앞에 나타나야만 했다.
  •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 당연히 함께 갈 수는 없을 것이고 또 이곳에 남겨두는 것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 나쁜 놈이라면 얼마든지 아이들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 그놈의 손아귀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국내로 돌려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 지민은 예쁜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 “할머니 집? 우리나라로 돌아가는 거에요? 좋아요. 그런데 엄마도 같이 가는 거죠?”
  • “응, 엄마도 가야지. 그런데 조금 늦게 갈 거야. 먼저 동생이랑 가면 안 될까?”
  • “그래요, 엄마도 빨리 오셔야 해요.”
  • 온지민은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편이었고 이번에도 엄마의 말을 따랐다.
  • 그래서 온주주는 빠르게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구에게 연락해 아이들을 마중 나가도록 했다.
  • 반 시간 후, 어느 강가.
  • 차를 거칠게 몰며 겨우 시간 맞춰 온 온주주는 드디어 배가에 매달린 정연이를 찾았다. 그녀는 그곳에 묶여 공포감에 눈물 흘리고 있었다.
  • 이런 빌어먹을 놈!
  • 온주주는 차에서 내려 곧장 배를 향해 달아갔다.
  • “하서준! 이 빌어먹을 놈! 당장 정연이를 풀어. 진짜 미친 거야? 왜 애먼 정연이를 묶어놓고 그래? 당장 풀라고!”
  • 온주주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주위에 칼이 있었다면 당장 칼로 그 녀석의 복부를 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른 끝에 개자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 추운 날씨, 바람을 에는 듯한 소리가 윙윙 들려오고, 배가에 묶인 여자의 처량한 울음소리도 그치지 않고 있는데 저 개자식은 여유롭게 와인 한 잔을 들고 나타났다.
  • 칼같이 다려진 슈트를 입은 그는 그 고고한 자태만큼 얄미웠다. 그리고 배에 다다라서는 사람을 시켜 의자를 옮겨왔고 여유만만하게 온주주를 쳐다보았다.
  • “드디어 얼굴을 들어내 주시는 거야?”
  • “……”
  • 온주주는 솟구치는 화를 억누르려 긴 숨을 들이마셨다.
  • “저 아이를 풀어주면 너를 따라갈게. 그게 네가 바라던 거 아니야?”
  • “뭐가 이렇게 시원시원해? 재미없게.”
  • “……”
  • 온주주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주먹을 쥐었다. 미친놈하고는 원래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법이다. 저런 놈에게 절대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 몇 분 뒤, 묶였던 정연이 풀려나고 온주주가 배에 올랐다.
  • “낸시야, 미안해……”
  • 정연은 온주주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미 풀려났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감이 미처 지워지지 않았고 그녀의 손목도 아직 빨갛게 부어있었다.
  • 온주주는 정연을 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 “괜찮아, 나한테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정말 미안한 건 나니까.”
  • “……”
  • 한참이나 벌벌 떨고 있던 정연은 온주주의 뒤에 선 사람들을 보며 그녀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 “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인 거야? 낸시야, 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널 데리고 어디를 가는 건데?”
  • 정연은 오랜 친구인 만큼 이 순간에도 그녀를 걱정했다.
  • 그런데 온주주가 어떻게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가 있겠는가?
  • 이 순간, 온주주가 바라는 건 저 악마들이 다시 자신의 친구와 엮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으니.
  • 온주주는 사람을 시켜 정연을 데려가도록 했고 차갑게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 그 차가운 눈,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 눈빛에서 하서준은 깊은 원망과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 나를 원망하고 증오해?
  • 와인을 든 남자는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 “그렇게 노려볼 필요 없어. 너는 네 죗값을 받으러 가는 거야. 혹시 죽게 된다면 시체는 다시 가져다 놓을게.”
  • “죗값? 하서준, 너 정말 예상의 틀을 넘어선다. 나를 해외로 힘들게 빼돌린 게 네 그 위대한 사랑 지키려고 했던 거 아니야? 벌써 잊었어? 너희가 힘들게 되찾은 눈물겨운 사랑을!”
  • 온주주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